비서들 난색 표하자 “내가 쓰겠다”
첫 원고엔 “김근태 은퇴” 문구까지
첫 원고엔 “김근태 은퇴” 문구까지
노무현 대통령이 한동안 뜸했던 ‘편지정치’를 재개하게 된 배경은 뭘까?
노 대통령은 지난 2일 <청와대브리핑>에 ‘정치지도자, 결단과 투신이 중요합니다’, ‘정당 가치와 노선이 중요합니다’라는 2개의 글을 한꺼번에 올리면서 편지정치를 다시 시작했다. 두 글은 노 대통령이 지난달 23일과 27일 각각 작성했다고 한다.
이름을 밝히지 말 것을 요청한 복수의 청와대 관계자는 “정치지도자의 결단과 투신을 주문한 23일 글은 손학규 전 경기지사가 범여권 후보로 거론되는 데 대한 문제의식에서 출발했다”고 말했다. 노 대통령은 핵심 참모들에게 “손 전 지사가 어떻게 범여권 후보냐. 범여권 소리를 들으려면 열린우리당에 들어와야 하는 것 아니냐”며 글쓰기를 결심했다고 한다. 한나라당에서 혜택을 누리던 손 전 지사가 경선에 불리하다고 뛰쳐나온 것을 비판하지 않는 정치권과 언론의 행태를 지적했다는 것이다. 참모들은 이 글에 흔쾌히 수긍했다고 한다.
그러나 4·25 재보선 이후 열린우리당 해체론을 주창한 김근태 전 의장을 겨냥한 27일 글은 청와대 안에서조차 논란이 일었다고 한다. 노 대통령은 애초 비서실에 김 전 의장을 비판하는 글을 주문했으나, 비서들이 난색을 표하자 직접 글을 쓴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노 대통령이 처음 작성한 원고에는 ‘김 전 의장의 정계 은퇴’까지 촉구하는 강경한 내용이 포함됐으나, 참모들과의 토론을 거치면서 ‘열린우리당 해체’를 외치는 정치인들을 열린우리당 위기를 초래한 근원으로 지목하는 정도로 순화한 것으로 전해졌다.
더욱이 이런 순화 배경에는 지난달 27일 정동영 전 의장과의 면담 분위기가 반영됐다고 한다. 청와대 핵심 관계자는 “정 전 의장은 김 전 의장과 달리 ‘열린우리당으로는 대선 승리가 어렵다’고 말했을 뿐 ‘탈당’ 얘기를 꺼내지 않았다. 그래서 수위를 낮췄다”고 말했다.
3일 저녁 <청와대브리핑>에 실린 김 전 의장의 정계 은퇴를 촉구한 이강철 대통령 정무특보의 글은 청와대의 요청에 의해 작성된 것으로 알려졌다.
노 대통령은 이후 탈당파와 당 해체론자들이 자신의 글을 “영남신당론”으로 몰아가자 4일 추가로 해명 글을 썼다고 한다. 이 글은 영남신당을 만들려고 한다는 억측 등에 대한 오해를 불식하며, 당내 경선에서 당당하게 싸우라는 메시지를 담고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5일 정 전 의장과의 27일 비공개 회동 사실이 언론에 공개되자 강경하게 뒤바뀌었다. 노 대통령은 정 전 의장과의 만남에서 자신이 복당해서라도 열린우리당을 사수하겠다고 협박하고, 김대중 전 대통령의 방북 지원을 거부한 것처럼 언론에 보도된 데는 정 전 의장의 의도적인 언론플레이가 작용했다고 판단하고, 김 전 의장과 정 전 의장의 행태를 구태정치로 싸잡아 비판하며 ‘당 깨기 공작’으로 규정했다는 것이다. 신승근 기자 skshin@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