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대통령이 18일 오전 청와대에서 국무회의를 주재하던 중 생각에 잠겨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취임초 ‘20년집사 최도술 11억수수’ 이상의 충격
참모들 “사실이라면…배신…일도 손에 안잡혀”
“노대통령 일절 말 없어”…어떻게 대응할지 촉각
참모들 “사실이라면…배신…일도 손에 안잡혀”
“노대통령 일절 말 없어”…어떻게 대응할지 촉각
청와대가 깊은 시름과 충격에 휩싸였다.
정윤재 전 의전비서관이 수천만원의 부정한 돈을 받은 혐의로 구속영장이 청구될 것으로 알려지면서, 노무현 대통령의 이른바 ‘측근 비리’가 현실화할 가능성이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신정아-변양균 전 정책실장 파문에 이어 정 전 비서관의 수뢰 혐의까지 겹치면서 임기말 청와대에 난기류가 흐르고 있다.
정 전 비서관이 검찰에 출두한 18일 청와대의 공식 반응은 여전히 조심스러웠다. “검찰이 (혐의를) 확인해주지 않는 지금은 어떤 입장도 밝힐 단계가 아니다.” 천호선 청와대 대변인은 정 전 비서관의 수천만원 수수설에 대한 입장을 묻는 기자들의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그러나 청와대 내부는 거의 넋이 나간 분위기다. 변양균 전 실장에 대한 영장 청구 가능성이 커지는 가운데, 정 전 비서관이 건설업자한테 수천만원의 돈을, 그것도 노 대통령을 지근거리에서 보좌한 의전비서관 시절 받았다는 혐의 내용에 할 말을 잃고 있다. 노 대통령의 핵심 측근 인사는 “그동안 보수언론이 아무리 참여정부를 공격해도 ‘그래 너희는 떠들어라, 우린 떳떳하다. 버틸 수 있다’고 자신했다. 임기 초 대선자금 수사 때 검찰이 핵심 참모들과 그 친인척의 계좌를 뒤질 때도 우린 도덕성에는 자신감이 있었다. 그러나 요즘은 힘이 빠지고, 일도 손에 안 잡힌다. 참여정부 출범 뒤 지금처럼 힘든 때는 처음이다”라고 말했다.
당장 노 대통령의 대응이 초미의 관심사다. 노 대통령은 깊은 고뇌에 빠졌다. 그는 지난 11일 기자회견에서 “검찰 수사 결과 그(정 전 비서관)에게 심각한 불법행위가 있었다면 ‘측근 비리’라고 이름을 붙여도 변명하지 않겠다”고 말한 바 있다. 한 핵심 참모는 “대통령은 정 전 비서관 문제에 대해 일절 말씀이 없다”며 “스스로 ‘인연이 깊은 사람’이라고 말한 측근이 구속될 수도 있는 상황이니 대통령의 배신감과 분노가 오죽하겠느냐”고 말했다.
청와대 안팎에선 정 전 비서관의 혐의사실이 확인될 경우 노 대통령이 대국민 사과 등 구체적인 수습책을 내놓을 것이라는 얘기가 나온다. 천호선 대변인은 이날 브리핑에서 “대통령이 11일 기자회견에서 밝힌 말씀은 여전히 유효하다. 언론이나 국민 여론, 사건의 윤곽이 드러나는 것을 봐서 (노 대통령의 견해 표명 여부를) 결정하겠다”고 말했다.
노 대통령은 취임 초기인 2003년 10월 ‘대통령의 20년 집사’로 불려온 최도술 당시 총무비서관이 에스케이그룹으로부터 11억원을 받은 것으로 드러나자 “내가 모른다고 할 수 없다”며 국민들에게 재신임을 묻겠다는 ‘폭탄선언’을 한 바 있다. 그만큼 측근 비리에 관한 한 스스로도 매우 엄격하게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자신을 지근거리에서 보좌한 정 전 비서관이 구속될 경우 노 대통령이 어떻게 나올지는 감 잡기가 쉽지 않다.
청와대 안에서는 정 전 비서관의 부적절한 처신에 대한 분노와 원망의 목소리도 터져나온다. 노 대통령의 다른 한 측근 참모는 “어떻게 의전비서관을 하면서 건설업자의 돈을 받아먹을 수 있는가. 사실이라면 용서할 수 없는 배신이다”라고 비판했다. 청와대는 이날 오전 정 전 비서관에게 혐의 사실 여부를 직접 확인했으나 정 전 비서관은 침묵한 것으로 전해졌다.
신승근 기자 skshin@hani.co.kr
건설업자 김상진씨한테서 수천만원을 받아 피내사자로 소환된 정윤재 전 청와대 의전비서관이 18일 오전 굳은 표정으로 측근과 함께 부산지검 청사로 들어오고 있다. 부산/연합뉴스
신승근 기자 skshi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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