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일각 정서 인정…법적 강제 못해”
노무현 대통령은 19일 한반도 평화협정을 체결하기 위해서는 북한이 한국전쟁 때 남침한 것을 사과해야 한다는 일부 보수세력의 주장에 대해 “북한의 도발에 대해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생각은 타당하지만, 화해협력의 전제로 상대의 사과를 요구하는 것은 법적으로 현실성이 없다”고 말했다.
노 대통령은 이날 오후 청와대에서 열린 남북 정상회담 관련 외신기자 간담회에서 “전쟁 종식 때 사과나 배상은 패전국에 부과되는 것인데, 북한은 법적으로 패전 당사자가 아니지 않으냐”며 이렇게 말했다. 노 대통령은 “우리가 북한의 사과를 받기 어렵고, 또 받지 못했다고 정전체제를 그대로 가져가는 것은 현실적이지 않다”며 “‘사죄를 받지 못하면 평화체제로 가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냐, 당신은 사죄를 받을 방법이 있느냐’고 묻고 싶다”고 말했다.
노 대통령의 발언은 북한의 6·25 남침에 대한 사과를 요구하는 사회 일각의 정서는 인정하지만 국제법이나 남북관계의 현실을 고려할 때 이를 강제할 수 없다는 현실 인식을 드러낸 것으로 보인다. 아울러 ‘2007 남북 정상회담’ 이후 급물살을 타고 있는 종전선언을 비롯한 한반도 평화체제 정착 구상을 계획대로 추진하겠다는 의지를 밝힌 것으로 읽힌다.
노 대통령은 차기 정부에서 ‘남북 정상 선언’의 합의가 이행될지를 묻는 질문에 “다음 정부가 하기 싫은 일, 하고 싶지 않은 일이 있을지 모르지만 다음 정부에 부담이 되는 일은 없다”며 “단지 하기 싫은 사람에겐 부담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합의 이행을 담보하기 위해선 합의 내용에 대한 국민적 동의 수준을 최대한 높이는 게 가장 중요하다”며 “내용이 조금 불분명한 것은 (남북) 총리 회담이든 후속 회담을 통해 정확히 정리할 것”이라고 밝혔다.
노 대통령은 또 남북 경제협력 추진에 천문학적 비용이 들 것이라는 비판에 대해서도 “대부분 사업은 기업적 투자 방식으로 될 것이며, 우리가 협의한 것 가운데 차관 또는 지원 방식으로 투자되는 곳은 (남북)물자교류에 꼭 필요한 개성~평양 고속도로 개선”이라며 “합의 내용을 꼼꼼히 보지 않고 막연히 얘기하는 것”이라고 반박했다.
한편, 노 대통령은 이날 회견에서 “남북 정상회담에서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북-일 관계개선이 필요하다’며 ‘(후쿠다 일본) 총리의 (대북)대화 의지를 기대한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신승근 기자 skshi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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