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부탁합니다” / 김희범 국정홍보처 정책홍보관리실장(왼쪽)이 3일 오전 서울 삼청동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대회의실에서 부처 업무보고를 하기에 앞서 맹형규 인수위 기획조정분과 간사에게 인사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새정부서 할일 지금 하라니…곤혹스럽다” 불만
타당성 검토없이 입맛 맞춘 업무보고 준비도
타당성 검토없이 입맛 맞춘 업무보고 준비도
대통령직 인수위원회가 각 부처에 기존 정책에 대한 ‘자기 배반’적인 보고를 요구하면서 공무원 사회가 몸살을 앓고 있다. 특히, 참여정부와 이명박 대통령 당선인의 정책 기조가 완전히 달라 그 사이에 낀 부처나, 폐지 얘기가 나오는 부처의 공무원들은 업무보고를 치르면서 큰 마음 고생을 하고 있다.
대입 업무를 대학교육협의회에 이양하겠다고 보고한 교육인적자원부는 이제까지 정책과 전혀 다른 보고를 한 경위에 대해 아예 입을 다물었다. 다만 보고서를 만들 때 교육을 담당한 이주호 한나라당 의원이 여러 차례 밝힌 ‘대입 업무의 자율 협의체 이양’을 염두에 둘 수밖에 없었다고 한 교육부 간부는 털어놨다. 또 다른 교육부의 한 국장은 “새 정부가 해야 할 일을 지금부터 처리하라고 해 곤혹스럽다. 당선인의 공약을 뒷받침하는 논리를 보고한다면 현 정부에서 일하는 처지로선 난처할 수밖에 없지 않으냐”고 푸념했다.
교육부는 지난 2일 인수위 업무보고에서 ‘수능 등급제 보완책’을 3월까지 보고하겠다고 밝혔다가 인수위로부터 2월 초에 제출하라는 질타를 받았다. 3일 교육부에선 “현 정부 아래서 어떻게 전혀 다른 대책을 만들겠느냐. 현 정부도 국민이 선택했다”는 불만의 목소리와, “인수위는 교육부가 안이하다며 관치 관행을 거론했는데, 인수위야말로 예전 관치 시대처럼 ‘지시’하는 것 아니냐”는 불만이 쏟아졌다.
지난해 대운하의 경제성이 낮다고 내부적으로 평가했던 건설교통부는 괘씸죄에 걸릴까봐 정교한 검토 작업을 거치지 않은 채 인수위 입맛에 맞는 보고서를 준비하고 있다. 건교부 관계자는 “인수위는 한반도 대운하 사업의 타당성 같은 것은 놔두고 사업 착수를 전제로 실무적이고 기술적인 내용만을 보고하도록 요구했다. 인수위에서 요구하는 형식대로 보고할 수밖에 없는 입장”이라고 말했다. 건교부가 타당성 재검토 등의 절차를 밟지 않고 울며겨자먹기로 실무 추진계획부터 보고할 수밖에 없게 된 셈이다.
부처 존폐 이야기가 나오는 통일부는 7일 업무보고에서 인수위가 국정홍보처 때 지적한 ‘자화자찬식 보고’라는 비난을 피해보려고 애를 쓰고 있다. 이를 위해 통일부는 지난 10년 동안 대북 화해협력 정책의 공과를 사실관계 위주로만 보고한다는 방침이다. 또 통일부는 남북관계 정책에 대한 평가는 가급적 하지 않기로 했다. 인수위원들이 물으면 답변형식을 통해 원칙적 의견을 밝힐 예정이다. 안 그래도 미운 털이 박혀 있는데, 되도록 인수위를 자극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통일부는 이 당선인의 남북관계 공약이 뚜렷하지 않는데다 비핵화에 치우쳐 남북관계에 대한 정책 우선순위가 떨어져 업무보고 준비에 애를 먹고 있다.
종부세·법인세·금산분리 등 기존의 정책기조를 완전히 뒤집어야 하는 재경부 공무원들은 밤새 보고서를 준비하면서 곤혹스런 모습을 감추지 않았다. 재정경제부의 한 고위공무원은 “인수위 쪽에서 종부세·법인세 등을 뜯어고치라고 하니 검토는 하지만 …”이라고 풀죽은 목소리로 뒷말을 흐렸다. 한 팀장은 “공무원들이 지금까지 하던 말들을 뒤집어야 하는데 …. 그러나 어쩌겠나. 공무원들은 원래 그런 사람들인데 …”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 정리/정치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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