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일 이명박 대통령과 정세균 민주당 대표의 만남은 대체로 무난하게 끝이 났다.
이 대통령은 야당과도 대화하는 모양새를 취함으로써 정치적 명분과 소통의 이미지를 얻게 됐고, ‘대안야당론’을 강조해온 정세균 대표는 할말을 하고 국정 동반자로 자리매김하는 ‘소득’이 있었다. 또 두 사람이 국정 현안을 놓고 수시로 만나 대화하기로 한 것은 ‘촛불정국’ 이후 거의 끊어지다시피 했던 정부와 야당의 관계가 정상화된 의미도 있다. 서로 견해차만 확인하고 냉랭하게 헤어진, 지난 5월 이명박-손학규 회담에 비하면 결과가 사뭇 다르다.
특히 대권 도전의 은근한 뜻을 품고 있는 정 대표는 이 대통령과 회담을 통해 자신의 위상을 높이는 부수적 효과를 기대하게 됐다. 또 자신의 전공 분야인 경제를 화두로, 경제 전문가를 자처하는 대통령과 긴 시간 ‘토론’을 했다는 점에서 상당한 자부심을 갖는 분위기다.
최재성 민주당 대변인은 7개항 합의를 두고 “(대통령이) 야당에 대해 충분한 예우를 했고, 국정 동반자로서 인정했다. 여야 노선 차이가 있는데, 역대 어느 회담보다도 성과물을 가져온 게 다행”이라며 후한 점수를 매겼다. 비록 추상적·원론적 수준이긴 하지만 경제 위기 돌파, 남북 화해 협력, 민생국회 등 그동안 민주당이 주장해온 정책 방향에 이 대통령이 큰 틀에서 긍정적 반응을 보인 점을 반기는 의미다. 사전 조율의 결과이긴 하지만, 주로 정 대표가 제안하고 이 대통령이 받아들이는 형식을 취한 것도 민주당의 회담 만족도를 높이는 요소가 됐다.
그러나 회담 내용을 자세히 뜯어보면, 외견상 커 보이는 합의사항들의 실효성과 무게에 의문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무엇보다 최대 정책현안으로 떠오른 종합부동산세 완화, 법인세 감세 등과 관련해 두 사람은 의견 접근을 보지 못했다. 정 대표는 민주당의 입장을 열심히 설명한 반면, 이 대통령은 “추후에 야당 안도 세심하게 보고받고 검토하겠다고 말했다”고 한다. 회담 하루 전 종부세 완화 방침을 거듭 확인한 이 대통령은 한 치의 양보도 하지 않았다. 경제 상황에 대한 근본적 인식차가 여전한 가운데 ‘초당적인 경제 살리기 협력’이 어떻게 가능한지 궁금해지는 대목이다.
이 밖에도 정 대표는 이 대통령에게 △‘강만수 경제팀’에 대한 시장의 불신 △‘유모차 엄마’들에 대한 경찰 수사, 촛불 시위자에 대한 보복성 수사 중단과 수배자 해제 △교과서 이념 갈등 중단 △민영 미디어렙 등 언론 문제 전반에 대한 우려 △종교편향 논란 △공기업 민영화 등에 대해 충분한 입장 설명을 했다고 한다.
그러나 이 대통령의 반응은 지극히 원론적인 수준에 머물렀다. 이 대통령은 “공정하게 처리하겠다”거나 “국민이 납득하도록 하겠다”, “국민이 걱정 않도록 하겠다”고 넘겼다. 하나같이 뜨거운 국정 현안들이지만, 문제를 보는 시각이나 해결 방안의 모색 등에서 진전이 없었다.
최재성 대변인은 “할말은 다 했다. 국정 운영 기조에 대해 야당이 제기한 지적이 합의되면 사실 놀라운 일 아니냐”고 자체 평가했다. 이날 회담은 정 대표가 취임 이래 표방해 온 ‘대안야당론’ 노선에 충실한 결과로도 볼 수 있다.
그러나 정 대표 쪽의 평가가 민주당 안팎에서 공감대를 확보할지는 알 수 없다. 강한 야당성을 발휘하지 못하는 게 당지지율 부진의 원인이라고 보는 시각도 적지 않기 때문이다.
강희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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