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판] 커버스토리 MB가 사라졌다?
▶ “정치인은 자신의 부고 빼고는 언론에 오르내리는 게 좋다”는 얘기가 있습니다. 요새 신문에서 부쩍 보기 힘들어진 이명박 대통령의 기분은 어떨까요. 언론들이 박근혜·문재인·안철수 등 ‘미래권력’들을 따라다니느라 바빠, 외국 순방길에도 잘 따라나서지 않잖아요. 아, 차라리 언론의 무관심이 반가울까요? 임기 말 집권당에서 떠밀리듯 탈당하면서 언론에 들볶인 전임 대통령들에 비하면 행복한 처지잖아요. 이명박 대통령님, 요즘 어떻게 지내시나요?
박근혜, 엠비와 정책적 차별화로
‘한지붕 두가족’ 이미지 굳혀
문재인과 안철수 후보쪽도
정권심판론 내세우기보다는
박 후보 역사 인식 등 집중난타 유권자들, 정권교체 요구 높아
야권 후보단일화 성사되고
본격적인 여-야 대결로 가면
정부 실정 부각될 거란 시각도 “이명박(대통령)은 레임덕도 안 오네요.” 9월27일, 한 인터넷 커뮤니티 게시판에 ‘먹자지껄’이란 닉네임을 쓰는 누리꾼이 올린 글의 제목이다. 글은 이렇게 이어진다. “(임기) 초·중반에는 욕을 많이 먹었지만 임기 끝물이 되니 뉴스에서도 사라지고…이제는 (대통령이) 뭐하고 다니는지도 잘 모르겠네요. 말년을 이리 편하게 보내는 대통령이 민주화 이후 또 있었던가요?…참 대단한 대통령입니다.” 뉴스에서 사라진 이 대통령의 ‘행방’이 지난달 7일 누리꾼들에게 포착됐다. 선글라스를 낀 이 대통령이 부인 김윤옥씨와 함께 서울 삼청동의 한 카페에 앉아 있는 사진이 한 인터넷 게시판에 올라온 것이다. 이 대통령은 자신들을 알아본 시민들에게 손을 흔들거나 브이(V) 자, 하트 모양을 만드는 제스처를 취해주면서 ‘커피 한잔의 여유’를 즐기고 있었다. 이 대통령은 카페에 몰려든 시민들을 찍은 ‘인증샷’을 페이스북에 올려 시민들에게 ‘답장’을 보냈다. 임기 말, 평화롭게 국정 운영을 마무리하는 대통령의 모습으로 손색이 없는 장면이다.
청와대 일각에선 안철수 지지한다?
최근 이 대통령은 ‘대선과는 거리를 둔 채, 안보와 경제 문제에 방점을 찍고 국정 운영에 전념하고 있다’는 게 청와대 관계자들의 얘기다. 지난달 29일 비상경제대책회의를 주재한 자리에서 이 대통령은 “성장률이 떨어지면 일자리도 준다. 정부와 정치권은 기업이 어려워도 한번 해봐야 한다는 마음을 가지도록 도와줘야 한다”고 밝혔다. ‘엠비노믹스’를 일관되게 추진하겠다는 말이다. 하지만 여론과 여야 정치권의 관심은 이미 ‘경제민주화’ 쪽으로 떠난 지 오래다.
미국산 쇠고기 수입, 4대강 사업 강행, 언론관련법·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비준안 강행 처리 등으로 정국을 뒤흔들며 임기 초반부터 ‘탄핵’ 대상으로 거론됐다는 점을 떠올리면 이 대통령에 대한 이런 ‘무플’ 현상은 이상할 정도다. 이 대통령의 현재 지지율을 생각해보면 더욱 그렇다. 한국갤럽이 지난 7월 실시한 집권 5년차 3분기 대통령의 직무수행평가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이 대통령이 직무수행을 ‘잘하고 있다’고 응답한 비율은 23%에 지나지 않았다. 이 대통령이 ‘잃어버린 10년’이라고 불렀던 시기를 이끌어온 전임 대통령(김대중 28%, 노무현 27%)들에 비해서도 낮은 수치다. 1987년 민주화 이후 전임 대통령들은 모두 측근 비리 등으로 뭇매를 맞으며 집권당에서 불명예스런 탈당을 해야 했다. 정권의 실정이 부각되면서 여권에선 ‘차별화’ 주장에, 야권에선 정권 심판론에 시달려야 했다. 그런데도 이 대통령은 전임 대통령들과는 달리 대선 국면임에도 비판의 중심에서 벗어나 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가장 큰 이유는 이 대통령을 비판하는 게 큰 ‘실익’이 없기 때문이다. 쉽게 말해 ‘박근혜=이명박’이라는 공식을 성립시키기 어렵다는 얘기다. 이준한 인천대 교수(정치학)는 “박 후보가 이미 지난 5년 동안 이 대통령과 치밀하고 견고하게 차별화를 해왔기 때문에 박 후보가 당선된다고 해도 이를 ‘정권 재창출’이라기보다 ‘정권 교체’로 받아들이는 이들이 적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2007년 대선 경선에 패배한 뒤 박 후보는 지난 5년간 ‘여당 내 야당’으로 지내오면서, 정책적 차별화를 시도해온 점을 지적한 것이다. 박 후보는 세종시 수정안에 대한 반대를 비롯해 정부의 추가 감세는 물론 차세대 전투기(FX) 선정, 인천국제공항 지분매각 시도에 제동을 걸어왔다. 또한 경제민주화를 강조하는 공약을 통해 성장 위주의 경제 정책을 펴는 이 대통령과 명백히 다른 입장을 보이고 있다. 청와대 안에서도 박 후보의 당선을 정권 교체에 버금가는 상황으로 보는 시선이 많다. 18대 국회에서 친이-친박 싸움이 워낙 드셌던데다, 지난 4월 19대 총선에선 친이계가 공천 과정에서 대거 몰락한 바 있기 때문이다. 이런 까닭에 청와대 친이계 일각에선 안철수 무소속 대선 후보의 당선이 더 낫다는 정서도 없지 않다.
‘8면 대통령’ 이라는 농담
새누리당 안에서 이미 이 대통령과의 ‘차별화’ 논란이 일단락된 것도 이 대통령에 대한 주목 효과를 낮췄다. 새누리당에선 4·11 총선을 앞둔 지난 1월, 정권 심판론을 피하기 위해 ‘엠비 정부와의 단절’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제기된 바 있다. 당시 김종인 비상대책위원은 “대통령도 당원이기 때문에 억지로 퇴출시킬 순 없지만, 한나라당(2월 새누리당으로 개명)의 재집권을 위해 대통령이 어떻게 해야 할지 스스로 판단해야 한다”며 이 대통령의 ‘자진 탈당’을 요구했다. 이어 권영진 의원 등 쇄신파 의원들도 “한나라당이 새롭게 태어나는 데 도움이 된다면 대통령이 자리를 비켜주는 게 맞다고 본다”고 호응했다. 하지만 박 후보는 3월7일 관훈클럽 초청 토론회에서 “대통령의 탈당은 해법이 아니다”라며 선을 그었다. “정책적 차별화는 해도 인위적인 정치적 차별화는 하지 않겠다”는 얘기였다. 홍형식 한길리서치 소장은 이에 대해 “정책적 차별화만 한다는 박 후보의 입장은 ‘배신의 정치’에 신물이 난 유권자들로부터 후한 점수를 받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야권이) 이 대통령만 비판해봤자 큰 효과를 보지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임상렬 리서치플러스 대표는 “박 후보가 현 정권과 정책적 차별화를 해나가는 동안 야권은 안철수 후보의 등장 등으로 외연만 확대했을 뿐 여권과의 큰 차별화는 만들어내지 못했다”며 “이런 상황에서 이 대통령을 때리는 것만으론 거의 효과를 보기 힘들다”고 말했다.
4·11 총선 때 ‘이명박근혜’라는 프레임으로 ‘정권 심판론’을 외쳤던 야권도 엠비를 전면에 내세워 박 후보를 공격할 뜻은 없어 보인다. 문재인 후보 쪽은 지난 5년의 실정에 대해 이 대통령과 박 후보의 ‘공동 책임론’을 묻겠지만, 박 후보 비판에 집중하는 전략을 쓴다는 계획이다. 문 후보 캠프의 한 관계자는 “총선과는 달리 대선에서 유권자들은 정권의 과거 잘못보다는 앞으로의 전망에 더 관심을 기울이게 마련”이라며 “박 후보가 갖고 있는 퇴행적 역사 인식이 대한민국의 미래에 미칠 악영향에 대해 집중 부각시킬 계획”이라고 밝혔다.
‘과거 대 미래’의 대결을 외치며 ‘새누리당의 정치적 확장성을 거부’하는 안 후보 쪽에서 문제삼는 ‘과거’는 이명박 정부가 아니다. 안 후보 캠프의 김성식 선대본부장은 최근 “만일 박근혜·문재인 두 후보의 대결이 된다면 박정희·노무현의 ‘분신’의 싸움이 될 것”이라고 얘기한 바 있다. 야권 단일화에서 안 후보의 경쟁력을 강조하기 위해, 박-문 두 후보의 싸움을 ‘과거 대 과거’의 대결 구도로 만든 것이다.
분위기가 이렇다 보니 이 대통령과 관련된 이슈는 크게 부각되지 못한다. 지난달 15일 시작된 특검 수사에서 이 대통령의 내곡동 사저터 매입 과정에서 불법이 자행됐다는 것이 속속 드러나고 있는데도, 정치권에서 이 문제를 전면에 부각시키지 않는 게 대표적이다. <한겨레> 등 몇 곳을 제외하면 언론들도 이 문제에 큰 관심을 보이지 않고 있다. 유력 보수 언론이 내곡동 수사 관련 보도를 8면(종합면)에 작게 처리하고 있는 것을 빗대 ‘8면 대통령’이란 우스갯소리까지 나올 정도다.
4년 전 ‘비비케이(BBK) 주가 조작설’을 수사한 정호영 특검팀이 “(이 대통령이 실소유주란 논란이 있던) 다스의 100억대 비자금을 알고도 덮었다”는 보도가 나왔음에도 정치권에서 즉각적인 비판이 잇따르지 않은 것도 한 예다. 이 보도가 나온 9일 아침 열린 여야 각당 선거대책본부 회의의 주요 화두는 문 후보와 안 후보의 단일화 문제, 그리고 김재철 <문화방송> 사장 해임안의 부결과 이를 둘러싼 박근혜 후보 쪽의 외압 여부였다. 특히 김재철 사장 해임안 부결과 관련해 하금열 대통령 비서실장의 이름이 거론되고 있는데도, 이 대통령의 관련성 여부엔 관심이 집중되지 않았다.
“여당 후보와 대통령의 결별은 불가피”
그렇다면 이 대통령은 이대로 대선 국면에서 그냥 조용히 퇴장하게 되는 것일까? 새누리당은 이 대통령을 둘러싼 문제가 대선 국면에서 박 후보의 발목을 잡는 문제로 부각될 가능성이 크지 않다고 보지만 야권의 후보 단일화 이후 상황에 대비해 긴장의 끈을 놓지 않고 있다. 안형환 새누리당 선대위 대변인은 “특별한 변수가 없는 한 이 대통령이 대선 국면의 악재로 작용할 것 같지는 않다”면서도 “야권 후보 단일화 문제가 정리돼 전선이 분명해지면, 이 대통령의 실정을 문제삼아 박 후보에게 ‘후계자’ 이미지를 덧씌우려 하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이와 관련해 4대강 공사를 둘러싼 각종 비리와 내곡동 사저터에 대한 특검 수사, 또다시 불거진 비비케이 수사 등은 이 대통령과 반드시 선거에서 이겨야 하는 박 후보의 ‘조용한 동거’를 깨는 돌발변수로 떠오를 가능성도 있다는 얘기가 나온다. 신율 명지대 교수(정치학)는 “우리나라 유권자들은 현 정부의 책임을 여권 후보에게 묻는 습관이 있다”며 “시간과 계기의 문제일 뿐, 여당 후보와 대통령의 결별은 불가피하다”고 말했다.
현 정권에 대한 불만이 높다는 점은 여전히 불안 요소다. 한겨레가 리서치플러스와 지난달 5~6일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유권자 10명 중 6명(63.7%)이 정권 교체를 요구하고 있다. 정권 재창출을 원한다(31.8%)는 답변보다 2배나 높은 것이다. 정권 교체를 바라는 비율은 2주 전(56.7% 대 35.9%)보다 오히려 더 높아졌다. 정당 지지율에서 새누리당(37.9%)이 민주당(41.3%)에 역전당한 것도 박 후보 지지율을 끌어올리는 데 걸림돌로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임상렬 리서치플러스 대표는 “박 후보가 아무리 이 대통령과의 차별화에 성공했다고 해도, 기득권 세력과의 연결 고리에서 완전히 벗어나긴 힘들다”고 말했다. 결국 야권 대선 후보가 정해지고 본격적인 여야 대결 구도가 펼쳐지면 박 후보 쪽에서도 이 대통령에 대한 ‘부정’의 목소리를 낼 가능성도 있다는 얘기다. “살아남는 게 중요하다”(2007년 10월23일, 경선팀 실무진과의 오찬에서)며 훗날을 도모했던 박 후보 아닌가.
이 대통령과 박 후보의 좋지 않은 ‘과거사’를 떠올리면 이런 가능성은 더욱 높아진다. 박 후보는 2007년 8월20일, 한나라당 대선 후보 경선에서 이 대통령에게 불과 2452표 차로 패배했다. “경선 과정의 모든 일을 이젠 잊어버리자”며 결과에 승복했지만, 그렇다고 흔쾌히 이 대통령(당시 후보)의 선거 지원에 나선 것도 아니었다. 10월8일, 이 대통령의 선대위 고문직을 수락할 때 “전직 대표로서 당연직처럼 맡는 것 아니냐”고 말한 데선 불편함마저 읽힌다. 그가 이 대통령을 위해 선거 유세에 나선 것은 대선을 19일 앞둔 11월30일이 돼서였다. “주가조작 공모-증거 없음, 비비케이 실소유-증거 없음, 다스 실소유-증거 못 찾음”으로 ‘비비케이 주가조작 사건’에 대해 검찰이 수사 결과를 발표한 뒤인 12월6일 박 후보는 “검찰의 수사 결과를 납득하기 어렵다. 국민이 검찰 수사를 신뢰하지 못하는 것 같은데 유세를 계속할지 며칠을 지켜봐야 하는 것 아니냐”고 얘기한 것으로 전해지기도 했다. 그리고 2008년 4월 공천 ‘친박 학살’ 직후, 박 후보는 말했다. “국민도 속았고, 나도 속았다”고.
정치는 생물이다. 앞으로 어떤 일이 벌어질지 생각하면, 이 대통령의 임기말도 썩 그리 편할 것만은 같지 않다.
이정애 안창현 기자 hongbyu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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