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변인 성추행 의혹’이라는 초유의 사태를 맞은 청와대는 10일 당혹스러움을 감추지 못했다. 방미단이 돌아온 저녁 7시30분 전까지 청와대에 남아 있던 인사들은 극도로 말을 아꼈다. 허태열 비서실장 주재로 수석비서관회의가 열리는 등 참모들은 숙의를 거듭했고, 민정수석실은 전날 귀국한 윤창중 대변인을 조사했는데도 사건 경위에 관한 설명을 내놓지 않았다.
청와대의 분위기는 박근혜 대통령이 귀국한 지 4시간 만에 급반전했다. 이남기 청와대 홍보수석은 밤 10시40분께 긴급 브리핑을 열어 사과문을 발표했다. 일파만파로 커지는 성추행 의혹을 어떻게든 해명하지 않고서는 부정적인 여론을 감당하기 어렵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 수석은 발표한 사과문에서 윤 대변인의 성추행 의혹을 ‘개인적인 잘못’으로 돌리며 분명하게 선을 그었다. 분량도 달랑 4문장에 불과한데다, 청와대 인사권자로 이번 사태의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박 대통령에게까지 사과를 했다. 그래서 이 사과문의 내용이 알려지자 인터넷 등에선 곧바로 ‘셀프사과’라는 비판이 올라왔다. 반면 사과문은 대통령 방미라는 중대한 공무수행 중에 대통령의 핵심 참모가 새벽까지 만취하도록 술을 마시고 성추행을 저지른 혐의까지 받는데도 사건의 경위는 물론, 관리·감독이 되지 않았던 이유 등은 전혀 설명하지 않았다.
오히려 이 수석은 “이번 사건은 개인이, 개인적인 시간에 저지른 개인적인 사건”이라고 못박으면서 “(박 대통령에게 경질 지시를 받았을 때) 제 느낌은, 한 개인이 잘못한 게 우리 방미에 상당히 오점이 되겠구나 하는 두려움이었다”고 말했다. ‘윤 대변인이 순방 수행을 했으니 공무규칙을 따라야 하는 것 아니냐’는 기자들의 질문엔 “윤 대변인은 (공무규칙을 따라야 하는) 공식 수행원이 아니라 (그와 무관한) 일반 수행원이다. 이 문제를 그렇게 다루는 건 적절치 않다”고 답했다. 윤 대변인이 ‘공식’ 수행원도 아닌 ‘일반’ 수행원인데 왜 청와대에서 전담 지원요원까지 붙여줬는지는 설명하지 않았다. 사과문과 별도의 추가 조치와 관련해서도 “지금으로선 알 수가 없다”고 했다.
앞서 국내에 남아 있던 청와대 인사들은 불똥이 박 대통령과 청와대까지 튀지 않도록 막는 데만 급급했다. 여러 청와대 인사들은 “박 대통령은 윤 대변인이 출국할 때까지 이 사건을 전혀 몰랐다. 보고를 받고는 즉각 해임을 지시했다”고 강조했다. 청와대가 윤 대변인의 귀국을 묵인하거나 도왔을 수 있다는 의혹을 차단하고 나선 것이다.
청와대는 밤늦게까지 백브리핑을 하며 해명에 나섰지만, 앞뒤가 맞지 않는 설명으로 거짓말 의혹도 자초했다. 가령 청와대는, 이 수석이 8일 오전 9시40분(현지시각)께 윤 대변인의 성추행 혐의 사실을 알게 됐고 윤 대변인과 출국 여부에 관해 대화를 나눴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다른 핵심 관계자는 이 수석이 이런 보고를 받기 전에 윤 대변인으로부터 ‘집안일로 먼저 귀국하겠다’는 얘기를 듣고 묵인했다고 전했다. 또 청와대는, 윤 대변인이 귀국을 결정한 뒤 여권을 갖다 달라고 해 주미 한국문화원장으로부터 전달받아 바로 출국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긴박한 사정이 없었는데도 왜 윤 대변인이 숙소에 있는 짐을 내팽개친 채 황급히 귀국길에 올랐는지는 설명이 되지 않는다.
청와대의 ‘셀프사과’와 부실 해명은 그렇지 않아도 부정적인 여론을 더욱 악화시킬 가능성이 높다. 이 때문에 일부 청와대 인사들은, 최소한 윤 대변인의 상급자인 이남기 수석이 여론을 진정시키기 위해 거취를 고심하고 있다는 관측도 내놓고 있다.
조혜정 기자 zest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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