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이 당선인 시절인 2월22일 오후 서울 종로구 삼청동 대통령직인수위원회에서 해단식을 마치고 당시 인수위 부위원장이었던 진영 보건복지부 장관과 함께 건물을 나서고 있다. 인수위사진기자단
장관이 책임지고 물러나면
공약 심각한 후퇴 인정하는 셈
청와대, 부담 피하려 반려한듯
후임 인선 어려움도 고려
공약 심각한 후퇴 인정하는 셈
청와대, 부담 피하려 반려한듯
후임 인선 어려움도 고려
27일 오전, 진영 보건복지부 장관이 사의를 밝히는 보도자료를 기자들에게 뿌리자, 청와대는 당혹스러움을 감추지 못했다. 청와대와 총리실에 미리 알리지 않은 ‘기습적’ 행동이었기 때문이다. 청와대는 급히 진 장관과 연락을 시도했으나 닿지 않았다. 박근혜 대통령이 정홍원 총리를 통해 “사표 반려”를 공식 발표하는 순간까지도 청와대는 진 장관과 연락이 되지 않아 그의 ‘속내’를 알지 못했다.
이날 상황은 ‘좀처럼 돌출 행동을 하지 않는 모범생’ 이미지의 진 장관이 박 대통령의 뜻을 정면으로 거스른 것이라는 게 청와대 안팎의 대체적인 평가다. 대통령의 최측근 정치인이 대통령에게 ‘반기’를 드는 모양새가 된 것에 대해서도 청와대는 불편해하는 기색이 역력하다.
청와대와 진 장관 사이에선 거취를 둘러싼 몇 차례 ‘핑퐁게임’이 있었다. 진 장관은 사우디아라비아 출장 중 불거져 나온 자신의 사퇴설을 부인하지 않았다. 진 장관에게 곧바로 확인을 했을 텐데도, 청와대는 무슨 이유에선지 “본인한테 들은 바 없다”며 말을 아꼈다. 진 장관이 귀국한 뒤 정 총리가 그를 불러 “없던 일로 하겠다”며 유임을 공식화하고, 청와대도 “사퇴할 만한 사안이 아니다”라고 밝혀 사태는 정리되는 듯 보였다. 하지만 진 장관은 당일 아무런 발언도 하지 않았다. 27일 진 장관의 공개 사의표명 이후 총리실이 다시 이를 반려했지만, 진 장관은 역시나 아무런 의사 표시 없이 침묵하고 있다.
청와대의 사표 반려는 진 장관을 대체할 대안이 마땅치 않다는 현실적인 이유가 작용한 결과로 보인다. 청와대 관계자는 “국정감사, 예산안 심사 등이 줄줄이 있는데, 어떻게 장관이 자리를 비울 수 있느냐”고 말했다. 떠나더라도 일단 하반기 남은 국회 일정은 책임지라는 뜻이다. 공석이 돼 있는 감사원장에 검찰총장까지 사퇴해 가뜩이나 인사가 부담스러운 마당에, 복지부 장관 인선까지 겹쳐선 곤란하니 시간적 여유를 좀 갖겠다는 포석도 엿보인다.
하지만 정치권이나 복지부에선 진 장관이 다시 복귀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관측이 많다. 복지부의 한 관계자는 장관의 스타일을 들어 그가 돌아오지 않을 것으로 예상하며 “장관 없이 국정감사를 치르게 될 것 같다”고 했다. 여당의 한 중진 의원은 “진 장관이 은근히 고집이 있고 자존심도 세다. 뜻을 꺾기가 쉽지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진 장관의 사퇴 결심은 몇가지 이유가 복합적으로 작용한 듯하다. 취임 몇달 뒤부터 진 장관은 사석에서 무력감을 토로하며 장관 업무에 열의를 갖기 어렵다는 말을 자주 해왔다. 특히 이번 기초연금 공약 후퇴에 책임을 져야겠다고 마음을 먹었을 가능성이 크다. 국민연금과 연계해 기초연금을 지급하려는 청와대 방침에 진 장관이 반대하면서 갈등이 빚어지기도 했다.
하지만 진 장관이 이렇게 강경하게 나오는 직접적인 배경에는 사퇴설이 불거진 뒤 청와대가 대응하는 과정에서 양쪽의 갈등이 증폭됐다는 분석이 나온다. 사전상의 없이 사퇴설이 흘러나온 데 대해 청와대가 강한 질책을 했다는 것이다. 기초연금 축소에 장관이 책임지는 것 자체가 공약의 심각한 후퇴라는 점을 정부 스스로 인정하는 것이어서, ‘재정 현실에 따른 공약 수정’ 정도로 밀고 가려던 청와대와 다시 갈등을 빚었을 가능성도 있다. 진 장관이 “사퇴를 고려한 이유가 와전됐다”며 ‘기초연금 책임론’ 대신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힘든 ‘무력감’을 들고나온 것도 이런 사정 때문일 수 있다.
석진환 김양중 기자 soulfat@hani.co.kr
[시사게이트#12] 박대통령의 ‘후불제 공약장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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