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당선 이전 문재인 대통령의 페이스북 게시글 빈도분석.
“정치, 문재인, 후보, 경제, 여러분” (대선 전) VS “일자리, 광주, 대한민국, 국가, 정부” (대선 후)
문재인 대통령의 페이스북이 달라졌다. 가장 많이 언급된 다섯 단어만 뽑아봐도 차이가 뚜렷했다. 대통령 선거 전에는 상대 후보를 꺾고 당선을 거머쥐기 위해 자신을 내세웠다. 전 정부의 실정을 지적하면서 자신의 공약을 강조하는 내용이 많았다. 당선 후에 문 대통령은 행정 수반으로서 개인을 언급하기 보다는 공동체와 관련된 단어를 많이 사용했다. 특히 실무 현장에서 느끼는 내용들을 구체적인 사례를 들어 설명하는데 페이스북을 활용했다. 대선 전에 강조했던 복지와 같은 추상적 개념이 대선 후에는 ‘소방관, 건강보험, 치매, 희귀질환, 상황판’ 등의 구체적인 단어로 대체됐다.
문 대통령의 페이스북에 8월 말까지 업로드 된 모든 게시글 1995개를 ‘긁어오기’(크롤링) 해서 사용한 단어의 빈도를 분석했다. 게시글에서 명사를 추출한 뒤 사용 빈도에 따라 크기를 다르게 표현하는 ‘워드 클라우드(word cloud)’ 방식으로 시각화했다. 분석을 위해 통계 프로그램 ‘R’을 활용했고, 한국어 형태소 분석 패키지(KoNLP)를 썼다.
대통령 당선 이후 문재인 대통령의 페이스북 게시글 빈도분석.
#구체적 사례 조곤조곤 말하기…오바마 전 대통령 벤치마킹?
“어제 다섯 살 다인이를 만났습니다. 다인이는 너무도 희귀한 병을 앓고 있는 탓에 희귀질환, 중증질환, 만성질환 중 그 어디에도 등록되지 못하고 있습니다. 현재 ‘희귀질환’으로 인정하는 법적 기준이 지나치게 엄격해서 도움이 반드시 필요한데도 받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고 합니다. 누락과 사각지대를 없애서 다인이와 같은 극도의 희귀질환도 지원을 받을 수 있도록 개선하겠습니다.”
문 대통령이 지난달 10일, 전날 만났던 유다인(5)양과의 만남을 회상하며 페이스북에 쓴 글이다. 그는 난치병으로 고생하고 있지만 음악가의 꿈을 이루기 위해 공부하는 이경엽(18)군에 대한 언급도 잊지 않았다. 이렇게 구체적인 사례를 이웃 이야기처럼 설명하는 것은 공감을 얻는데 좋은 화법으로 인정받고 있다. 추상적인 개념을 나열하는 것 보다 주변에서 있을법한 구체적인 이야기가 더욱 와닿는다.
문 대통령은 제67주기 6·25전쟁을 이틀 앞둔 23일에는 전쟁에 참전했던 최영섭 어르신과 제임스 길리스 유엔참전용사 대표의 사례를 자세하게 소개했다. 7월23일 위안부 피해자 김군자 할머니가 세상을 떠났을 때는 ‘강인한 생존자, 용감한 증언자’였다며 영면을 빌었다. 문 대통령은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청와대 반려동물인 토리, 찡찡이, 마루에 대한 소식도 수시로 전하고 있다.
문 대통령의 이러한 화법은 미국의 오바마 전 대통령 연설을 연상케 한다. 오바마 전 대통령은 정책을 설명할 때나 각종 재난 이후 추도사에서 구체적인 사례와 사건을 이웃의 이야기를 열정적으로 설명하는 화법으로 큰 반향을 일으켰다.
엄경영 데이터앤리서치 소장은 “친근하고 서민적인 이미지를 살리기에 좋은 화법”이라며 “대통령이 된 후에 대선 전보다 훨씬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다”고 말했다.
#당선 이후 전 정부 언급은 ‘뚝’…국민통합 염두에 둔 듯
대선 전 문 대통령의 페이스북은 선거 승리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정치(1567번), 문재인(1385번), 후보(1103번), 여러분(928번) 등의 단어가 많이 사용됐는데 대통령 후보로서 자신을 내세우려 한 의도였다. 또 의외로 ‘경제’(1102번)를 많이 언급했다. 상대적으로 진보 진영이 경제 분야에서 취약하다는 인식을 뒤집기 위한 시도로 풀이된다.
문 대통령은 후보자 시절 박근혜 정부를 ‘헌 경제’로 정의 내리고 ‘새 경제’로 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가 경제정책에 우선 순위를 뒀음은 노동(500번), 혁신(477번), 산업(319번), 정규직(316번), 일자리(267번) 등의 단어가 자주 등장하는 데서도 엿 볼 수 있다. 문 대통령은 대선 전에 ’노무현’ 전 대통령을 210번 언급했는데 9년 동안 이어졌던 이명박·박근혜 정부와 비교하기 위해 인용하는 경우가 많았다. ‘박근혜(576번)’와 ‘이명박(255번)’은 주로 비판의 대상이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지난달 23일 왼쪽 옷깃에 수인번호 '503번'을 달고 서울중앙지법 417호 대법정에서 재판 시작을 기다리고 있는 모습. 사진공동취재단
하지만 대통령이 된 이후에는 이명박·박근혜 전 대통령에 대한 언급은 각각 1번 밖에 하지 않았다. 정치와 관련된 언급도 사라졌다. 취임 초기에 강조했던 ‘통합’을 염두에 둔 것으로 분석된다. 대선 전 지지층 결집을 위해 상대방의 네거티브 공세에도 적극 대응했지만 취임 뒤에는 보수층의 반감을 우려해 절제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윤희웅 오피니언라이브 여론분석센터장은 “적폐청산을 기치로 내걸로 있는 상황에서 갈라치기 하면서 국면을 이끌 수도 있지만, 반대세력을 자극하지 않고 통합하겠다는 의지가 보인다”며 “대선 전에 비해 국가, 대한민국, 애국, 헌신, 조국 등을 많이 사용하는 것도 비슷한 맥락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북한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이 중장거리전략탄도미사일 화성-12형 발사 훈련을 참관하는 모습. 연합뉴스
#살충제 달걀, 부동산 정책, 북한 문제 언급엔 소극적…부담스러운 사안
문 대통령 페이스북에서 두드러진 또 하나의 특징은 취임 뒤 사회적 문제로 떠오른 살충제 달걀, 부동산, 북한 문제에 대해 언급을 피하고 있는 것이다. 취임 뒤 그의 페이스북에서 북한은 단 두번, 부동산은 한번만 언급했고, 살충에 달걀은 아예 찾아 볼 수 없다. 당선 이전 북한(373번), 미사일(34번), 부동산(16번) 등을 적극적으로 언급한 것과 뚜렷이 대비된다.
대선을 사흘 앞두고 문 대통령이 페이스북에 올린 게시글에서는 “저에게는 부동산 거품을 일으키지도 않으면서도, 서민주거를 보호하고, 부동산 가격을 안정시킬 확실한 방법이 있다”며 “누구나 집 걱정 없이 안심하고 살 수 있는 사회를 실현하겠다”고 강조했다. 해당글에서 문 대통령은 △5만호의 민간주택을 매입하여 임대주택으로 △2013년말까지 취득세 감면과 생애최초 구입자금 지원 △공공임대 확대와 전월세 상한제 실시 △청년주거 등 집중지원 등을 공약했다.
‘피난민의 아들’인 그는 대북문제에 대해서도 강한 자신감을 보였다. 그는 특히 2007년 남북 정상회담 준비원장으로서의 경험을 내세웠다. 지난 4월26일 페이스북에 올린 방송 연설문에서 문 대통령은 “햇볕정책과 대북포용정책을 발전적으로 계승해 주도적으로 북한의 변화를 이끌어 내겠다”며 “우리의 주도로 핵 없는 한반도를 만들겠다”고 포부를 나타냈다.
하지만 북한이 핵실험까지 강행하면서 문 대통령의 한반도 운전대론이 집중 공격을 받고 있는 상황에서 북한 문제를 직접 언급하는 것은 쉽지 않을 것이란 분석이다. 엄 소장은 “부동산도 총론에선 찬성여론이 높지만 각론으로 들어가면 국정운영에 걸림돌이 될 수 있다는 고민이 있을 것 같다”며 “대북 문제도 해당 부처에서 강하게 추진하고 있는 상황에서 대통령까지 나서서 언급하기에는 부담스러울 것”이라고 말했다.
이재호 기자
ph@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