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 조선노동당 총비서 겸 국무위원장이 “(평양) 중구역 경루동에 일떠선 보통강 강안 다락식 주택구를 돌아보셨다”며 <노동신문>이 3일 1~2면에 13장의 사진을 곁들여 펼쳐 보도했다. 조선중앙통신 연합뉴스
김여정 조선노동당 중앙위 부부장이 “남조선은 국방부장관이라는 자가 함부로 내뱉은 망언 때문에 심각한 위협에 직면하게 될 수도 있다”며 “우리는 남조선에 대한 많은 것을 재고할 것”이라고 밝혔다고 <노동신문>이 3일 보도했다.
김여정 부부장은 개인 명의 ‘담화’에서 “남조선 군부가 우리에 대한 심각한 수준의 도발적인 자극과 대결 의지를 드러낸 이상 나도 위임에 따라 엄중히 경고하겠다”며 이렇게 말했다. “위임에 따라”라는 표현은 공식적으론 ‘노동당 중앙위’의, 실질적으론 김정은 노동당 총비서 겸 국무위원장의 ‘위임’에 따른 담화라는 뜻이다.
김 부부장은 “지난 1일 남조선 국방부 장관은 우리 국가에 대한 ‘선제타격’ 망발을 내뱉으며 반공화국 대결 광기를 드러냈다”며, “미친놈” “쓰레기”라고 욕설을 퍼부었다. 그는 “핵보유국을 상대로 ‘선제타격’을 함부로 운운하며 저들에게도 결코 이롭지 않을 객기를 부린 것”이라며 “동족끼리 불질을 하지 못해 몸살을 앓는 대결광”이라고 비난했다.
앞서 서욱 국방부 장관은 1일 육군 미사일전략사령부와 공군 미사일방어사령부 개편식에 참석해 “(북한의) 미사일 발사 징후가 명확할 경우에는 발사 원점과 지휘·지원시설을 정밀 타격할 수 있는 능력과 태세도 갖추고 있다”고 밝혔다. 김 부부장은 이를 “‘선제타격’ 망발”이라 규정했다.
김여정 조선노동당 중앙위 부부장. 조선중앙통신 연합뉴스
박정천 노동당 중앙위 비서도 서욱 장관의 발언을 겨냥한 ‘담화’를 내어 “우리 군부를 대표하여 한가지만 명백히 경고하겠다”며 “만약 남조선군이 우리 국가를 상대로 선제타격과 같은 위험한 군사적 행동을 감행한다면 우리 군대는 가차없이 군사적 강력을 서울의 주요 표적들과 남조선군을 괴멸시키는 데 총집중할 것”이라고 밝혔다. 박정천 당 비서는 김여정 부부장의 담화와 함께 <노동신문> 4면에 실린 ‘담화’에서 “핵보유국에 대한 ‘선제타격’을 운운하는 것이 미친놈인가 천치바보인가. 대결의식에 환장한 미친자이다”라며 서 장관한테 욕설을 퍼부었다.
‘대남사업을 총괄’한다고 여겨지는 김 부부장과 ‘군 서열 1위’인 박 비서의 연쇄 담화는 2020년 6월 개성 남북 공동연락사무소 건물 폭파(2020년 6월16일)에 이른 이른바 ‘대북 전단 사태’를 연상케 한다. 김 부부장의 대남 비난 담화는 지난해 9월15일 문재인 대통령을 실명 비판한 ‘담화’ 이후 201일 만이다. ‘박정천 담화’는 “미국을 비롯한 적대세력들”을 겨냥해 인민군 총참모장 자격으로 2019년 12월14일 발표한 담화 이후 841일 만이다.
무엇보다 김 부부장과 박 비서의 담화가 노동당 중앙위 기관지로 ‘인민 필독서’인 <노동신문>에 실린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상황 전개에 따라선 2020년 6월 대북전단 사태 때처럼 ‘말’에 그치지 않고 ‘행동’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어서다. 더구나 김 부부장은 “위임에 따라”라며 자신의 담화가 ‘공식 견해’임을 강조했고, 박 비서는 “남조선 군부의 반공화국 대결 광기에 대해 우리 인민과 군대가 반드시 알아야 하겠기에 나는 이 담화를 공개한다”고 밝혔다. “인민과 군대”에 공표한 이상 어떤 형식으로든 ‘후속 조처’ 가능성이 높다.
다만 김 부부장과 박 비서가 담화의 표적을 “남조선국방부 장관 서욱의 위험한 망발”과 “남조선군부의 반공화국 대결광기”로 한정한 사실에 유의할 필요가 있다. 일단은 문 대통령을 포함한 문재인 정부 전체를 겨냥한 담화는 아니라는 정치적 선긋기로 읽히기 때문이다. 당장은 남북 사이 ‘실질 행동’을 포함한 군사적 충돌로 치닫기보다는 ‘예고성 경고’에 가까운 듯하다.
이와 관련해, 김정은 노동당 총비서 겸 국무위원장이 “(평양) 중구역 경루동에 일떠선 보통강 강안 다락식 주택구를 돌아보셨다”며 <노동신문>이 관련 소식을 이날치 1~2면에 13장의 사진을 곁들여 펼쳐 보도한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조국의 번영과 인민의 행복을 위해 불면불휴의 노고를 바치시는 경애하는 김정은 동지 애민헌신”이라는 <노동신문>의 표현처럼, 김 총비서의 최우선 관심사는 ‘민생’에 있다는 정치적 신호 발신으로 여겨져서다. 김정은 총비서의 보통강가 고급 주택단지 현지지도에 김여정 부부장도 함께했다.
아울러 김 부부장과 박 비서의 연쇄 담화가 전혀 거론하지는 않았지만, 윤석열 대통령 당선자가 대선 기간에 ‘대북 선제타격’ 관련 발언을 여러 차례 공개적으로 한 사실을 염두에 뒀을 수 있다. 두 담화가 겉으론 서욱 장관과 “남조선 군부”를 정조준했지만, 근본적으론 5월10일 출범할 ‘윤석열 정부’의 대북정책을 견제하려는 속내를 품었을 가능성이 있는 것이다.
무엇보다 김정은 총비서의 ‘민생 행보’를 1~2면에, 김여정·박정천 담화를 4면에 실은 <노동신문>의 기사 배치는 그 자체로 북 수뇌부의 안팎을 향한 ‘정치 신호’ 발신으로 볼 수 있다. 2020년 6월 대북전단 사태 때의 개성 남북공동연락사무소 폭파와 각 부문 궐기대회 등 대남 강경 기조를 김 부부장이 주도하고, 김 총비서가 “대남 군사행동 계획 보류”를 결정(2020년 6월24일 노동당 중앙군사위 7기5차 예비회의)해 남북관계의 긴장을 낮춘 선례를 떠올릴 필요가 있다.
양무진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는 일단 “4월의 긴장고조 시기를 앞두고 본격적인 명분 싸움을 위한 성명전의 시작”이자 “앞으로 남북관계 대결 구도를 본격화하려는 예고”로 볼 수 있다고 평가했다. 4월 중순 이후 김일성 주석 생일(태양절, 4월15일) 110돌과 한·미 연합군사연습이 맞물리며 ‘강 대 강’ 대치 우려가 높다는 정부 안팎의 전망이 많다.
최근의 한반도 정세 흐름을 볼 때 그 가능성이 높다 할 수는 없지만, <노동신문>이 김정은 총비서의 민생 행보를 도드라지게 강조한 사실에 비춰 한·미 양국 정부의 대응 방향에 따라선 북의 ‘행로 변경’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희망 섞인 관측도 있다.
이제훈 선임기자
nomad@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