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엔 예산 융통성, 한국엔 분담금 증액…‘다목적 벨소리’
버웰 벨 주한미군사령관의 압박이 거세다. 벨 사령관은 24일(현지시각) 미국 상원 군사위원회 청문회에 출석하며 낸 서면자료에서 한-미동맹 현안과 관련한 다양한 불만과 요구를 쏟아냈다. 한국 정부와 미국 정부·의회를 두루 겨냥한 것이다. 한국 정부엔 직접적 양보를, 미국 정부·의회엔 예산 책정의 융통성 발휘를 요구했다.
한국 정부에 대한 압박이 가장 명시적으로 나타난 건 ‘미사일방어’(엠디)와 관련한 대목이다. 그는 지난해 북한의 미사일 발사 시험으로 한반도 방위를 위한 전역미사일방어시스템(TMD)의 중요성이 강조되고 있다며, “한국은 미국 시스템과 완전히 통합 가능한 시스템을 구매해야만 한다”고 주장했다. 이는 주한미군이 보유하고 있는 최신형 패트리엇미사일(팩-3) 도입을 뜻하는 것으로 풀이된다. 그는 “팩-3는 우리의 준비태세를 한단계 끌어올리고 향상시킨 무기체계”라고 덧붙였다.
벨 사령관은 나아가 “전역 고공 방어와 조기경보 시스템, 이지스함 방어체제 등과 함께 하는 팩-3의 지속적 공급은 미래에 우리가 필요로 하는 다층적 미사일 방어 능력을 제공해 줄 것”이라고 말했다. 이런 발언은 한국이 추진하는 독자적 방공체제 구축에 대한 노골적 ‘견제구’의 성격이 짙다. 한국은 현재 노후된 나이키 방공 미사일을 대체하려고 팩-3보다 한단계 구형인 팩-2 48기를 2008년부터 독일에서 도입하는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다만 독일에서 판매하지 않는 지상 대대통제 시스템은 미국에서 팩-3급으로 구입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팩-2는 팩-3보다 값이 싼 데다, 미군의 전역미사일방어시스템과의 호응성이 제한된다. 한국 정부는 ‘미사일 도달 거리가 짧은 한국 상황에선 전역미사일방어시스템이 효과를 발휘하기 어렵다’고 보고 불참 의사를 밝히고 있다. ‘팩-2냐, 팩-3냐’로 한국의 미사일방어 참여 여부가 가늠되는 상황에서, 벨 사령관은 팩-3 구매를 강력하게 요구한 셈이다.
벨 사령관은 주한미군 기지 재배치의 재고(review) 가능성도 언급했다. 한국엔 방위비 분담금 증액을 강하게 압박하고, 동시에 미국 정부·의회에는 미흡한 방위비분담금을 대체할 수 있는 예산 증액의 필요성을 제시한 것이다.
그러나 그의 발언은 미군기지 이전 계획이 실행을 앞둔 상황에서 나와, 오히려 방위비분담금 산정과 집행 과정에 대한 한국 내부의 반발 강도만 높일 가능성이 크다. 송민순 외교통상부 장관은 25일 그의 발언과 관련해 “방위비 분담 문제에 대해 지금보다 더 합리적이고 투명하고 책임성 있게 집행될 수 있는 방식을 협의하자고 미국에 제의해놓은 상태”라며 “미국이 답을 해야 할 차례”라고 말했다. 미국이 일방적으로 방위비 분담금을 집행하는 현재 상태를 개선해야 한다는 문제의식을 담은 것으로 이해된다. 손원제 기자 wonje@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