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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국방·북한

북녘 어린이 품에 안길 공책 차곡차곡 ‘와~’

등록 2007-05-15 21:28수정 2007-05-17 16:12

평양 제4 소학교 학생들이 15일 오전 학교 공연장에서 남쪽에서 온 <한겨레> 참관단을 위해 공연을 한 뒤 손을 흔들어 인사하고 있다. 평양/이종근 기자 root2@hani.co.kr
평양 제4 소학교 학생들이 15일 오전 학교 공연장에서 남쪽에서 온 <한겨레> 참관단을 위해 공연을 한 뒤 손을 흔들어 인사하고 있다. 평양/이종근 기자 root2@hani.co.kr
새 길 여는 ‘남북 경협’ = 학습장 공장 힘찬 시동

‘한겨레’ 원로들 “19년전 창간호 나올때 감회”
시간당 25000장 인쇄…매학기 200만권 분량

15일 오전 10시15분께 굉음을 내며 인쇄기가 돌아갔다. 1만500m짜리 신문용지가 10여m 길이의 해리스 그래픽스 4색 인쇄기를 거치더니, 이윽고 8절지 크기의 학습장(공책)으로 접혀 차곡차곡 쌓이기 시작했다. ‘와’ 하는 탄성과 함께 박수가 터져나왔다. 한겨레통일문화재단이 북쪽에 지어 기증한 ‘평양 학습장 공장’이 공식적으로 첫 제품을 만들어내는 순간이었다.

공책을 집어든 하객들의 입가로 어느새 흐뭇한 미소가 번져갔다. 지긋이 눈을 감은 채 뭔가를 돌이키는 듯한 모습도 보였다. 임재경 전 부사장, 김명걸 전 사장, 성유보 전편집국장, 김효순 대기자 등 <한겨레> 창간 원로들이 그랬다. <한겨레> 창간호를 펼쳐보던 옛 기억을 겹쳐 떠올리는 듯 했다. 이들은 창간 19돌 기념일에 맞춰 열린 ‘학습장 공장’ 준공식에 참석하기 위해 130여명의 남쪽 인사들과 함께 평양을 찾았다. 김명걸 전 한겨레신문사 사장은 “<한겨레>도 19년전 인쇄·윤전 설비가 낙후돼 고생을 많이 했다”며 “지금 이 시설이야 별게 아니지만 교육사업을 지원하는 것은 앞날을 얻는 일인만큼 어떤 지원보다 뜻깊은 사업”이라고 말했다.

‘학습장 공장’은 평양 대동구역 령북동 평양고등도서인쇄공장 안에 마련됐다. 한겨레통일문화재단이 기금을 모아 컬러 인쇄가 가능한 자동 인쇄기와 제본기를 남쪽에서 들여와 설치했다. 그동안은 학습장과 교과서를 찍으려면 종이를 일일이 4절 또는 8절 크기로 잘라 한 장씩 인쇄한 뒤 다시 모아 손으로 제본해야 했다. 이제는 긴 신문용지 덩어리를 걸어놓기만 하면, 인쇄기가 알아서 찍고 잘라주고 접어주기까지 한다. 공장 노동자 정익철(기대공)씨는 “그동안 시간당 8000장이 최대였지만, 이젠 시간당 2만5000장 이상 가능하다”고 말했다.

준공까진 우여곡절도 있었다. 지난해 11월께 남쪽 기술진이 인쇄기를 설치했지만, 전압 변동이 심해 시험인쇄엔 실패했다. 다시 10만달러를 들여 정압기를 들여와서야 12월께 오선지가 선명히 새겨진 음악학습장을 시험 생산할 수 있었다. 이젠 매 학기마다 200만권씩의 학습장을 북녘 어린이들에게 나눠줄 수 있다. 백일남 공장 지배인은 “올 7월까지 다음 학기 학습장을 만들어내는 일정이 잡혀 있다”며 “인쇄기 설치로 어려움이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겨레통일문화재단은 올해 분 학습장을 생산할 만큼의 종이도 추가로 지원할 계획이다.

학습장 공장 준공엔 일방적 대북지원의 틀을 벗어나 남북 두루 도움이 되는 협력 방식을 개발한 것이라는 의미도 따른다. 남쪽이 유휴설비와 기술을 제공하고, 북쪽이 터와 노동력을 댔다. 생산물은 지속적으로 어린이들의 교육에 쓰인다. 정세현 민족화해협력범국민협의회장은 “남는 설비를 뜻있는 사업에 지원하는 민간의 활동이 매우 중요하다”고 말했다. 권태선 <한겨레> 편집인은 “학습장 준공은 자라나는 미래세대에게 지식과 덕성을 갖출 토양을 제공하는 일”이라며 “<한겨레>가 창간 이래 펼친 남북협력 사업 가운데 가장 의미있는 일로 기록될 것”이라고 말했다.

평양/특별취재단



평양을 방문 중인 남쪽 해운·항만 분야 경제인들(왼쪽)이 15일 평양 양각도국제호텔 면담실에서 열린 경협토론회에서 북쪽의 차선모 육해운성 국장(오른쪽 이야기하고 있는 이) 등 북쪽 대표단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평양/김종수 기자 jongsoo@hani.co.kr
평양을 방문 중인 남쪽 해운·항만 분야 경제인들(왼쪽)이 15일 평양 양각도국제호텔 면담실에서 열린 경협토론회에서 북쪽의 차선모 육해운성 국장(오른쪽 이야기하고 있는 이) 등 북쪽 대표단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평양/김종수 기자 jongsoo@hani.co.kr

조선·항만 토론 ‘화합 뱃노래’

남 “북 투자가 중국 진출보다 낫다”
북 “배수리 공장 보고 진행해 보자”

“조선업체들이 중국으로 진출하는 것보다 가능한 말이 통하고 우수한 인력이 있는 북쪽에 투자하는 것이 남북간 공동 발전의 차원에서도 낫다.”(남상태 대우조선해양 사장)

“남포항과 배수리 공장을 현장에 가서 보고, 어떻게 할 계획인지 이후에 좀 더 구체적이고 실무적인 논의에 들어가자.”(차선모 북쪽 육해운성 국장)

15일 오전 평양 양각도 호텔에서 열린 남쪽 국책 연구기관 전문가들과 남북의 해당 기업인들의 경협 토론회는 조선·항만 분과가 단연 앞서 나갔다. 남상태 사장은 이날 토론회에서 올해 76억달러의 매출을 목표로 하고 있다며, 북쪽의 남포항 근처에 있는 영남배수리공장과의 협력의지를 보였다. 이에 대해 북쪽의 차선모 국장은 적극적인 자세로 화답했다. 남북해운협력협의회 북쪽 단장을 맡고 있는 차 국장은 16일로 예정된 영남 배수리공장 참관 일정에 직접 안내를 맡겠다고 즉석에서 약속했다

이봉조 통일연구원 원장의 사회로 진행된 이 토론회는 당초 1시간으로 예정됐으나, 깊이 있는 협의가 진행되면서 2시간 가까이 이어졌다. 토론회엔 남 사장을 비롯해 김용만·이창하 전무 등 대우조선 쪽의 핵심적인 인사들이 참가했다. 특히 대우조선해양은 토론회 도중 28쪽으로 된 회사 현황과 전망뿐만 아니라, 영업보고서까지 북쪽에 전달하기도 했다. 북쪽에서도 차 국장 이외에 허영준 육해운성 관계자, 김룡길 민족경제협력위원회 관계자 등 세 명의 관계자가 함께 나와 조선 산업에 대한 높은 관심을 보여줬다.

북쪽에는 수리 조선소를 포함한 40여개의 조선소가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영남배수리공장은 지난 2005년 완공됐으며, 최대 3만톤짜리 선박의 수리가 가능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북쪽의 또다른 관심사안인 남포항 등 북쪽의 항만 및 시설물의 개선 사업에 대해선 한국항만기술단(회장 심재금)의 심형보 기획조정실장이 구체적인 제안을 내놓았다. 그는 △남포항 컨테이너부두 개선사업 △남포항 갑문시설 관찰 및 개선사업 △대안항·나진항 개선 및 사업, 개성 인근에 있는 개풍선착장 건설 등을 설명했다.

철도·도로 분과 토론회에선 경의선·동해선 열차 시험운행 이후의 철도 협력 방안이 논의됐다. 안병민 한국교통연구원 북한교통정보센터장은 “남북간 교통언어가 달라 협력 사업에 장애가 되고 있다”며 3년 동안 10만달러 규모의 남북 철도 용어 표준화 사업을 제안했다. 그는 또 개성공단이 내년 상반기쯤 400여개 기업이 새로 들어서면 출퇴근 문제가 심각해진다며, 개성-손하-판문역으로 이어지는 단선 구간을 복선화하는 사업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박정성 철도성 국장의 말은 원론에 그쳤다. 그는 “철도 수송 문제는 남북 경제사업에서 매우 핵심적인 사안”이라며, “남북 경제협력의 틀에서 구체적으로 토론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날 토론회에선 북쪽의 도로망을 개선하는 방안에 대해서도 논의가 이뤄졌다. 이세홍 한국도로공사 신사업팀장은 “북쪽의 교통망이 철도 중심으로 돼 있어 도로 밀도가 낮다”며, 북쪽의 간선도로를 구축할 필요성을 강조했다. 특히 그는 평양-남포간 고속도로 개보수가 필요하다며, 이를 위한 구체적인 사업 타당성 분석이 앞서야 한다고 설명했다.

평양/특별취재단


“나진항, 물류 중계지 함께 개발 좋다”
차선모 북 육해운성 국장

차선모 북 육해운성 국장
차선모 북 육해운성 국장
북쪽의 차선모 육해운성 국장은 15일 토론회가 끝난 뒤 〈한겨레〉와 한 인터뷰에서 ‘나진항과 관련해 남쪽이 참여할 만한 사업이 어떤 게 있는가’라는 묻자, “북남이 함께 개발하는 것은 아주 좋은 생각”이라고 말했다. 나진항은 육상으로는 중국의 훈춘과 투먼, 철도로는 러시아의 핫산과 블라디보스톡으로 이어지는 “황금의 삼각지대”로 불릴 만큼 동북아 물류의 중심지 중 하나다.

-나진항에 대한 남·북·중·러 4자의 공동 개발 가능성은?

=아직 어떤 업체도 들어와 크게 (사업을) 벌인 게 없다. 남쪽과는 실무적으로 만나면서 얘기도 나눴다, 나진항을 북남이 함께 개발하는 것은 아주 좋은 생각이다. 나진항은 중계지로서 아주 좋은 역할을 할 것이다.

-남포항 확장과 대동강 유역의 항구 추가 개발은?

=대동강을 거대한 운하로 개발할 계획이다. 서해에서부터 순천까지 배가 들어갈 수 있도록 할 것이다. 물동량이 증가하면 계획에 따라 하나씩 항구를 건설해 나가겠다.

-서해갑문으로는 5만t 이상의 배들이 드나들지 못하는데?

=물동량이 많아지면 앞으로 송림항이나 남포항, 대안항 등을 확장할 계획이다. 그러나 지금의 조건에선 충분하다.

그는 삼성, 진양해운, 세븐마운틴, KC라인 등 남쪽 기업들이 다녀갔다면서 영남배수리공장 사업에 대한 남쪽의 관심을 언급했다. 지난해 하나로조선공업주식회사는 7천t급 바지선을 건조하기로 계약했으나, 미사일발사 핵실험 등으로 무산된 바 있다.

평양/특별취재단


“제품 국적 안가려…한국산 제약 없어”
호주서 온 사업가 이웅기씨

호주서 온 사업가 이웅기씨
호주서 온 사업가 이웅기씨
북쪽의 김명철 무역성 산하 조선국제전람사 과장은 14일 제10차 평양 봄철 국제상품전람회를 둘러보고 있는 130여명의 남쪽 경협 대표단 앞에 나와 자랑하듯 참가국들을 하나씩 불렀다. “도이치, 중국, 이딸리, 인도네시아, 오스트레일리아….” 김 과장이 맨 끝에 말한 오스트레일리아에선 어떤 기업을 대표해 누가 왔을까?

2200평 되는 전시장엔 100여개 전람회 참가 업체들이 빽빽이 자리를 잡았다. 그중 오스트레일리아에서 온 이웅기(56) 사장이 전시장 한켠에 ‘동서 인터내셔날사’라고 쓰인 매장을 내고 ‘살림집, 축사 지붕재’를 평양 시민들에게 열심히 설명하고 있었다. 그의 말씨는 북쪽 말씨가 아니었다. “올 해 북쪽의 시책 중 하나가 인민들이 잘 먹고 잘 살 게 한다는 것이다. 그러면 축산, 양돈, 양계에 신경을 쓸 수밖에 없다. 좋은 축사를 지으려면 우리 제품이 필요하다. 북쪽에서 새마을운동 같은 게 일어날 것으로 기대하고, ‘새마을운동 상품’을 갖고 나왔다.”

부인과 함께 평양을 찾은 이씨는 11년 전 오스트레일리아로 간 시민권자다. 중국 단둥에 지사를 둔 그는 2년 전 북쪽 시장에 대한 사전조사도 마쳤다. 이번에 처음으로 전람회에 참가했는데, 제약이 없었다고 한다. 그가 전시한 제품은 모두 남쪽에서 생산된 것들이다. 그는 “북쪽이라고 제품의 국적을 가리진 않는다. 상품의 질이 좋으면 된다”고 말했다.

평양/특별취재단

평양 특별취재단

단장=강태호 남북관계전문기자

취재=유강문 베이징 특파원

이용인 손원제 류이근 기자

사진=김종수 이종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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