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만복 국가정보원장(왼쪽 두번째)과 김양건 북한 노동당 통일전선부장이 지난 5일 평양에서 남북정상회담에 합의한 뒤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청와대 제공
제안서 성사까지 ‘뒷이야기’
극비리 추진…보도 와전되자 발표 이틀 앞당겨
인질사태로 “8월정상회담 없다” 한때 전망도 극도의 보안 속에서 추진됐던 2차 남북 정상회담이 8일 발표되기까지는 숱한 우여곡절을 겪었다. 2차 정상회담 일정이 최종 확정된 것은 지난 3일이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남북은 이때 일정에 최종 합의하고, 10일 이를 발표하기로 합의했다고 한다. 하지만 일각에서 ‘8월28일 4자 정상회담 추진설’로 잘못 알려져 보도되자 정부는 보안 유지가 어렵다고 판단하고 발표 일정을 앞당겼다는 것이다. 공식 발표 전까지 청와대는 보안에 극도의 신경을 썼던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 노무현 대통령의 핵심 참모를 자임하던 인사들조차 이날 오전 7시 노 대통령 주재로 열린 국가안전보장회의 전까지 이 사실을 까맣게 모르고 있었다고 한다. 노 대통령은 통일·외교·안보정책실과 국정상황실의 극소수 핵심 인사들을 제외하곤 정상회담 추진 사실 자체를 극비에 부쳤다. 청와대는 지난해 7월 북한의 미사일 발사와 10월 핵실험을 계기로 남북 정상회담의 필요성을 절감하고 그 가능성을 타진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대략 1년여의 보이지 않는 물밑 교섭 끝에 정상회담이 결실을 맺은 것이다. 협상이 급진전된 것은 지난 7월 초였다. 남쪽에서 김만복 국가정보원장과 북쪽의 김양건 통일전선부장 사이의 고위급 접촉을 제안했고, 북이 이를 받아들인 것이다. 8월2일부터 이틀간 평양을 찾은 김만복 원장에게 북쪽의 김양건 부장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8월 하순 평양에서 수뇌상봉을 개최하자’고 제의하셨다”고 말했다. 3일 서울로 돌아온 김만복 원장은 ‘수용한다’는 노무현 대통령의 친서를 가지고 다음날 바로 재방북한다. 김만복 원장과 김양건 부장 사이에 ‘8월28일부터 사흘간 평양에서 제2차 정상회담을 실시한다’는 합의서에 서명이 이뤄진 것이 5일이었다. 본격 접촉 한 달 만에 합의가 된 셈이다. 남북 간의 접촉이 본격화된 7월 초는 방코델타아시아 문제가 풀리고 2·13 합의 초기단계 이행에 긍정적 징후가 보이기 시작한 때다. 당시 안보실 몇몇 핵심 인사는 “8월이면 청와대 기자들이 정말 바빠질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노 대통령은 당시 김만복 원장을 통해 북한에 고위급 접촉을 제안한 뒤 북한의 답을 기다리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상당수 청와대 관계자들은 7월19일 발생한 아프가니스탄 무장단체의 한국인 인질 사태에 안보실의 인력이 집중되고, 백종천 안보실장이 특사로 아프간에 파견되자 “8월 정상회담은 없다”는 섣부른 전망을 내놓기도 했다. 아프간 사태로 예정됐던 휴가를 포기한 노무현 대통령과 안보실 핵심 참모들은 아프간 인질 사태와 남북 정상회담이라는 두개의 의제를 놓고 골머리를 싸맸다고 한다. 노 대통령의 한 핵심참모는 “노 대통령이 7일 몸살 때문에 국무회의에 불참한 것은 남북 정상회담과 아프간 문제를 은밀하게 처리하는 과정에서 너무 에너지를 소진했기 때문”이라고 전했다. 정부가 미국과 일본 등 우방국에 남북 정상회담 가능성을 통보한 것은 지난 2~3일 필리핀 마닐라에서 열린 아세안지역안보포럼(ARF) 자리에서였다. 회담에 참가한 송민순 외교부장관에게 ‘남북 정상회담이 성사될 가능성이 높다’는 메시지가 전해진 것이다. 2일(현지시각) 존 네그로폰테 국무부 부장관을 만난 송 장관은 “8월 말부터 (9월 초에 있는) 아시아-태평양 경제협력체(APEC) 회의 전 사이에 북한과 정상회담이 이뤄질 것”이라고 전달한다. 미국 등에 최종통보가 간 것은 이날 공식발표 3시간 전이었다. 신승근 이태희 기자 skshin@hani.co.kr
인질사태로 “8월정상회담 없다” 한때 전망도 극도의 보안 속에서 추진됐던 2차 남북 정상회담이 8일 발표되기까지는 숱한 우여곡절을 겪었다. 2차 정상회담 일정이 최종 확정된 것은 지난 3일이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남북은 이때 일정에 최종 합의하고, 10일 이를 발표하기로 합의했다고 한다. 하지만 일각에서 ‘8월28일 4자 정상회담 추진설’로 잘못 알려져 보도되자 정부는 보안 유지가 어렵다고 판단하고 발표 일정을 앞당겼다는 것이다. 공식 발표 전까지 청와대는 보안에 극도의 신경을 썼던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 노무현 대통령의 핵심 참모를 자임하던 인사들조차 이날 오전 7시 노 대통령 주재로 열린 국가안전보장회의 전까지 이 사실을 까맣게 모르고 있었다고 한다. 노 대통령은 통일·외교·안보정책실과 국정상황실의 극소수 핵심 인사들을 제외하곤 정상회담 추진 사실 자체를 극비에 부쳤다. 청와대는 지난해 7월 북한의 미사일 발사와 10월 핵실험을 계기로 남북 정상회담의 필요성을 절감하고 그 가능성을 타진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대략 1년여의 보이지 않는 물밑 교섭 끝에 정상회담이 결실을 맺은 것이다. 협상이 급진전된 것은 지난 7월 초였다. 남쪽에서 김만복 국가정보원장과 북쪽의 김양건 통일전선부장 사이의 고위급 접촉을 제안했고, 북이 이를 받아들인 것이다. 8월2일부터 이틀간 평양을 찾은 김만복 원장에게 북쪽의 김양건 부장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8월 하순 평양에서 수뇌상봉을 개최하자’고 제의하셨다”고 말했다. 3일 서울로 돌아온 김만복 원장은 ‘수용한다’는 노무현 대통령의 친서를 가지고 다음날 바로 재방북한다. 김만복 원장과 김양건 부장 사이에 ‘8월28일부터 사흘간 평양에서 제2차 정상회담을 실시한다’는 합의서에 서명이 이뤄진 것이 5일이었다. 본격 접촉 한 달 만에 합의가 된 셈이다. 남북 간의 접촉이 본격화된 7월 초는 방코델타아시아 문제가 풀리고 2·13 합의 초기단계 이행에 긍정적 징후가 보이기 시작한 때다. 당시 안보실 몇몇 핵심 인사는 “8월이면 청와대 기자들이 정말 바빠질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노 대통령은 당시 김만복 원장을 통해 북한에 고위급 접촉을 제안한 뒤 북한의 답을 기다리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상당수 청와대 관계자들은 7월19일 발생한 아프가니스탄 무장단체의 한국인 인질 사태에 안보실의 인력이 집중되고, 백종천 안보실장이 특사로 아프간에 파견되자 “8월 정상회담은 없다”는 섣부른 전망을 내놓기도 했다. 아프간 사태로 예정됐던 휴가를 포기한 노무현 대통령과 안보실 핵심 참모들은 아프간 인질 사태와 남북 정상회담이라는 두개의 의제를 놓고 골머리를 싸맸다고 한다. 노 대통령의 한 핵심참모는 “노 대통령이 7일 몸살 때문에 국무회의에 불참한 것은 남북 정상회담과 아프간 문제를 은밀하게 처리하는 과정에서 너무 에너지를 소진했기 때문”이라고 전했다. 정부가 미국과 일본 등 우방국에 남북 정상회담 가능성을 통보한 것은 지난 2~3일 필리핀 마닐라에서 열린 아세안지역안보포럼(ARF) 자리에서였다. 회담에 참가한 송민순 외교부장관에게 ‘남북 정상회담이 성사될 가능성이 높다’는 메시지가 전해진 것이다. 2일(현지시각) 존 네그로폰테 국무부 부장관을 만난 송 장관은 “8월 말부터 (9월 초에 있는) 아시아-태평양 경제협력체(APEC) 회의 전 사이에 북한과 정상회담이 이뤄질 것”이라고 전달한다. 미국 등에 최종통보가 간 것은 이날 공식발표 3시간 전이었다. 신승근 이태희 기자 skshi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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