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렉산더 버시바우 주한 미국 대사가 남북 정상회담 결과에 대한 우리 정부의 설명을 듣기 위해 5일 오후 서울 도렴동 외교부 청사에서 들어서고 있다. 이종근 기자 root2@hani.co.kr
미국…공식 논평 않고 신중
조지 부시 미국 행정부의 남북 정상회담에 대한 대응은 신중하고 냉정하다. 이번 공동선언과 회담 전반에 대한 공개적 평가나 견해 표명은 자제하고 있다. 이런 태도는 남북대화를 지지하지만 6자 회담에서 논의되고 있는 북한의 비핵화가 최우선이라는 부시 행정부의 정책적 기조에서 나온 것이다. 북핵 폐기를 위한 2단계 조처를 명시한 9·30 공동성명에 대해 부시 대통령이 별도 성명까지 내며 적극적 환영을 표명한 것과도 크게 대비된다.
숀 매코맥 국무부 대변인은 “남북대화를 고무해 온 것은 우리의 오래된 방침이며, 특정 정상회담에 대한 평가는 두 당사국에 남겨두고자 한다”며 “남북 관계 진전 능력이 6자 회담 메커니즘의 진전에 상당부분 의존하고 있다는 점을 남한 쪽이 북한 쪽에 분명히 했다는 게 흥미롭다”고 밝혔다. 미국은 언제나 남북대화를 권장해 왔지만 6자 회담의 맥락에서 이뤄지는 게 바람직하다는 기존 견해를 재확인하고 있다.
평화체제 구축 문제에 대한 반응도 같은 맥락이다. 매코맥 대변인은 “(종전체제 종식과 평화체제 구축에 관한 합의는) 9·19 공동성명을 되돌아본다면 6자 회담의 맥락에서 한반도 평화협정을 얘기하는 것”이라며 “6자 회담의 진전 필요와 한반도 비핵화라는 6자 회담의 핵심의제에 대해 언급한 것”이라고 논평했다. 평화체제 구축 또한 6자 회담의 맥락에서 이해한다는 것이다. 이런 차원에서 미국은 휴전협정의 당사국으로서 비핵화 진전 이후의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에 관한 논의에 참여하겠다는 뜻을 분명히하고 있다.
부시 행정부는 최대 관심사인 북한의 비핵화 문제에 대해 남북 정상이 분명히 확인해줄 것을 희망했다. 그러나 이 문제가 공동선언에서 남북 경협 등 다른 주제에 비해 다소 미흡하게 다뤄졌다고 부시 행정부는 보고 있다. 그렇지만 알렉산더 버시바우 주한 미국대사는 5일 국회에서 한나라당 의원들과 오찬간담회를 하기 전 기자들과 만나 “남북관계에서 중요한 진전이 많이 있었고, 우리(미국)는 당연히 이를 지지한다. 특히 북한이 완전 비핵화를 담은 9·19 공동성명, 6자 회담(합의)의 이행을 약속한 점을 기쁘게 받아들인다”며 환영의 뜻을 나타냈다. 그는 “남북 정상회담이 비핵화에서 중요한 모멘텀(추진력)을 줬다”고 긍정적 평가를 내놓으면서도, 평화체제 선언은 완전한 북핵 불능화가 전제돼야만 한다는 기존 방침을 재확인했다.
워싱턴/류재훈 특파원, 연합뉴스 hoonie@hani.co.kr
중국…동북아 평화.안정 기대
중국은 이번 남북정상회담이 한반도는 물론 동북아 평화와 안정에 도움을 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류젠차오 외교부 대변인이 4일 인터넷 홈페이지에 올린 논평을 통해 “중국은 남북의 대화를 통한 관계 개선과 화해, 협력을 일관되게 지지해왔다”고 밝혔다. <신화통신> 등 관영 매체들의 분석과 평가도 온통 환영 일색이다.
중국은 이른바 ‘샤오캉 사회’(모두가 그럭저럭 잘 사는 사회) 건설과 내년 베이징 올림픽의 성공적 개최를 위해 한반도 정세가 안정적으로 관리되기를 바라고 있다. 미얀마의 불안한 정세와 대만의 독립 움직임으로 주변 정세가 흔들리는 상황에서 한반도마저 요동치면, 중국의 ‘현상유지 전략’에 심각한 타격이 된다. 중국으로선 결코 바라지 않는 상황이다.
중국은 특히 남북 경제협력 가속화에 만족감을 표시하고 있다. 상대적으로 낙후한 동북3성 개발에 전력투구하고 있는 중국은 개성~신의주 철도 개·보수를 통한 경의선 시대의 개막이 이 지역 개발을 촉진할 것으로 기대하는 눈치가 역력하다. 중국의 눈으로 보면, 경의선 철도 연결은 중국이 한국과 육로로 연결됨을 뜻한다. 중국은 이를 통해 남북 경제협력의 폭발력이 동북3성으로 확대되기를 바라고 있다.
경의선 철도가 중국과 연결되면 동북아 물류에 일대 혁명이 일어난다. 중국으로선 그간 배편에 의존해왔던 화물 수송을 육로로 대체하거나 보완함으로써 물류 비용과 시간을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게 된다. 나아가 한반도를 가로질러 일본까지 연결되는 새로운 물류 통로를 확보할 수 있게 된다. 중국은 최근 북한의 나진·선봉을 통한 동해 진출을 구상하는 등 이 지역에 새로운 물류 출구를 확보하려 애쓰고 있다.
남북관계 발전이 중국에 청신호 만은 아니다. 남북이 한반도 정세의 주도권을 강화할수록 중국의 영향력이 줄어들 수 있기 때문이다. 중국은 특히 남북 정상이 종전선언을 위한 당사자 회의를 ‘3자 또는 4자’로 규정한 데 내심 긴장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3자가 남북과 미국으로 정해지면, 중국은 한반도의 핵심적인 평화 프로세스에서 배제되는 함정에 빠진다. 이 역시 중국이 결코 바라지 않는 상황이다.
이 때문에 종전선언의 당사자 지위를 확인받기 위한 치열한 외교전이 예상된다. 베이징의 한 소식통은 “정전협정의 당사자인 중국이 종전선언에서 빠지는 상황을 받아들이겠느냐”며 “한국의 기본 방침이 4자라는 점에서 북한 설득을 위한 중국의 공세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중국이 자체 정보망과 남북 양쪽의 설명을 통해 이번 정상회담의 전모를 파악한 뒤, 한층 냉정하게 득실을 따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베이징/유강문 특파원 moon@hani.co.kr
일본…‘새질서’ 소외될까 경계
“‘일본 배제하기’로 연결되지 않았으면 좋겠는데….”
일본 외무성 소식통은 4일 노무현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공동선언문에서 “3개국 또는 4개국 정상이 한반도에서 만나 한국전쟁 종전선언을 추진한다”고 합의한 데 대해 경계심을 나타냈다고 <요미우리신문>이 전했다. <마이니치신문>도 “4자 회담이 진전되면 미-북 접근은 한층 진전될 가능성이 있어 일본 정부로서는 마냥 환영할 수만은 없다”며 속내를 드러냈다.
“남북 간에 긴장이 없어지는 것은 매우 좋은 일”이라는 후쿠다 야스오 총리의 공식 환영 논평과는 달리 일본 정부 안팎에서는 소외감을 감추지 못하는 모습이다.
그렇지 않아도 6자 회담에서 납치문제를 둘러싸고 남북한, 미국, 중국 등 4자로부터 ‘눈총’을 한몸에 받은 일본 정부는 4자 회담 추진 소식에 “일본 배제가 심화되는 것 아니냐”고 우려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일단 일본 정부는 한반도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동북아 새질서 형성 움직임에 대해 6자 회담의 틀 속에서 수용하고 대처하겠다는 자세를 보이고 있다. 고무라 마사히코 외상도 4일 저녁 4자 회담에 대해 “애초 그 내용도 6자 회담에서 피드백(수렴)하게 돼 있다”고 언급했다. 올 2월13일 6자 회담 합의문서에서 ‘직접 당사자가 적당한 대화의 장소’에서 한반도의 평화 문제를 협의할 것을 명기하고 있는 점을 겨냥한 것이다.
그러나 일본의 한반도 전문가들은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과 종전선언을 위한 3~4자 회담에 일본이 끼어들 여지가 없다고 잘라 말한다. 다나카 히토시 전 외무성 심의관은 <마이니치신문>에서 마련한 전문가 대담에서 “한국전쟁의 휴전협정은 당사국의 휴전협정으로, 전쟁을 끝내고 항구적 평화를 구축하기 위해서는 당사국이 핵이 되는 것은 당연하다고 말했다. 스즈키 노리유키 <라디오프레스> 이사도 “오히려 일본은 부자연스런 상태가 끝나는 것을 환영해야 한다”며 “일본은 동북아시아의 안전보장체제 구축에 대해 적극적으로 제안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편 일본 정부는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이 납치문제에 대해 “일본은 후쿠다 정권으로 바뀌어서 일본의 상황을 지켜보고 있다”고 유보적인 태도를 보인 것에 대해 진의파악에 부심하고 있다. 심윤조 외교통상부 차관보는 5일 저녁 외무성을 방문해 야부나카 미토리 외무심의관에게 김 위원장의 발언내용을 공식 설명하고 “납치문제에 대해 북-일 간에 인식의 차이가 있음을 알게 됐다”고 밝혔다. 김 위원장의 발언은 납치문제에서 돌파구가 필요한 후쿠다 정부를 상대로 많은 양보를 얻어내려는 계산된 발언으로 보인다.
6자 회담 일본 수석대표인 사사에 겐이치로 외무성 아시아대양주국장은 5일 자민당 외교관계회의에 참석해 북-일 국교정상화 문제 등을 협의할 북-일 실무그룹 회의를 가능한 한 연내 이른 시일에 열 수 있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도쿄/김도형 특파원 aip209@hani.co.kr
중국…동북아 평화.안정 기대
닝푸쿠이 주한 중국 대사가 남북 정상회담 결과에 대한 우리 정부의 설명을 듣기 위해 5일 오후 서울 도렴동 외교부 청사에서 악수하며 웃고 있다. 이종근 기자 root2@hani.co.kr
일본…‘새질서’ 소외될까 경계
시게이에 도시노리 주한 일본 대사가 남북 정상회담 결과에 대한 우리 정부의 설명을 듣기 위해 5일 오후 서울 도렴동 외교부 청사에서 들어서고 있다. 이종근 기자 root2@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