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 “차분대응 납북 신뢰 쌓는게 우선”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의 신병과 관련한 정부와 여당의 대처가 부적절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극도로 예민해져 있을 북한을 배려하기보다는 안보태세 강화만 강조한 것은 북한을 자극하는 사려깊지 않은 태도라는 것이다.
박희태 한나라당 대표는 11일 최고위원회의에서 김 위원장 유고에 따른 북한의 정세변화 가능성에 대해 “언젠가 그날이 올 것”이라며 “그날에 대비해 만반의 준비를 갖추는 것은 당연하다”고 말했다. 공성진 최고위원도 “김 위원장의 유고가 가장 우려되는 시나리오인데 다행히 병세가 호전됐다고 한다”며 “그럼에도 우리는 ‘모닝콜’이란 신호로 받아들여 대비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는 여당 내부에서는 논의하고 걱정할 만한 사안이지만, 이런 논의 내용과 특히 ‘유고’라는 용어를 외부에 그대로 알린 것은 남북관계의 민감성에 비춰볼 때 사려깊지 못한 발언으로 보인다.
한나라당 의원들은 또 이날 국회 국방위원회에서 북한의 급변사태에 대비한 ‘개념계획 5029’를 ‘작전계획 5029’로 전환해야 한다고 주장했는데, 이 역시 북한을 강하게 자극하는 행동이다. ‘작전계획 5029’는 군의 구체적 이동 등 전투계획을 포괄하는 개념으로, ‘개념계획 5029’와 달리 전쟁 상황을 사실상 가정하는 것이다.
이에 앞서 이명박 대통령도 지난 10일 청와대에서 연 긴급 안보관계장관회의에서 “어떤 상황이 닥치더라도 혼란 없이 대응할 수 있도록 사전에 치밀하고 철저한 준비를 갖추라”고 지시했다. 이 역시 안보태세 강화에만 초점을 맞춘 것이다. 이 대통령이 이날 예정과 달리 아침 수석회의를 주재하고, 밤에는 긴급 안보관계장관회의를 열면서 이를 외부에 알린 것도 적절치 않다는 지적이 있다. 통일 전문가들은 이른바 ‘플랜비(B)’(급변사태 대비전략)는 공개적으로 거론하지 않고, 소리 소문 없이 준비·점검해야 하는데 정부의 대응은 지나치게 부산했다는 것이다.
정부와 한나라당의 이런 대응은 남북관계의 민감성에 대한 이해부족, 평소 반북 대결적 인식의 연장선에서 나온 것으로 보인다. 특히 이명박 정부가 여러 차례 초기대응 미숙으로 어려움을 겪은 뒤라, 정부가 발빠르게 잘 대처하고 있다는 모습을 국민에게 보여주려는 ‘전시용’ 성격도 엿보인다.
양무진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는 “예민한 상황에선 무심코 한 발언도 북한이 오해할 수 있다”며 “지금처럼 남북관계 경색 국면에서 ‘급변상황’, ‘붕괴’, ‘작전계획 변경’ 등을 언급하는 건 적절치 않다. 또 청와대는 이런 상황일수록 남북관계에 이상이 없다는 점을 강조해 신뢰를 쌓아야 한다”고 말했다. 권태호 기자 h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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