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 적십자회담 합의서
남북적십자회담 성과와 한계
상봉재개 성과…납북자·국군포로 문제등 해결난항
합의문엔 ‘6·15 공동선언’ ‘우리민족끼리’ 표현 빠져
북쪽, 남쪽에 표현방식 양보·관계개선 의지 ‘맥락’
상봉재개 성과…납북자·국군포로 문제등 해결난항
합의문엔 ‘6·15 공동선언’ ‘우리민족끼리’ 표현 빠져
북쪽, 남쪽에 표현방식 양보·관계개선 의지 ‘맥락’
이명박 정부 들어 처음으로 열린 남북 적십자회담이 28일 끝났다. 2년 만에 추석 이전에 이산가족 상봉을 열기로 하고 규모와 시기, 장소 등 실무적 사안들에 대한 합의를 이뤘다.
■ 의미와 한계 이명박 정부 들어 끊겼던 이산가족 상봉을 다시 열게 됐다는 점은 의미있는 성과다. 그러나 과거엔 적십자회담의 하위 성격인 실무접촉에서 다뤘던 수준의 쟁점 조율에 그쳤다는 점에선 한계 또한 뚜렷하다. 실무접촉 수준의 조율에 그친 건 북쪽이 이번 회담을 추석 상봉과 관련한 일정 조율 차원에서 접근했기 때문이다. 북쪽은 남쪽이 제기한 납북자·국군포로 문제 해결이나 이산가족 상봉 정례화 등에 전혀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정부 관계자는 “북쪽은 처음부터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의 방북 때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허용해 준 추석 이산가족 상봉을 실현하기 위한 실무협의 차원에서 나왔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고 말했다.
이에 비해 남쪽은 이번 회담을 과거 국민의 정부·참여정부와의 차별성이 구현되는 회담으로 끌고가고자 했다. 이에 따라 남쪽은 국군포로·납북자 문제 해결을 위한 별도의 틀을 마련하는 방안을 논의하자고 요구했다. 이전 정부까지 납북자·국군포로를 ‘특수 이산가족’ 형식으로 일반 이산가족 상봉에 10%가량 포함해 가족 만남을 이뤄왔던 것과는 다른 근본적 해결의 틀을 마련해야 한다는 것이다. 남쪽은 또 이번 회담을 1차 적십자회담으로 규정해, 지난 정부에서 열린 1~9차 적십자회담과 단절된 새 회담으로 삼겠다는 뜻을 분명히 드러냈다.
그러나 남쪽은 과거와의 단절·차별을 강조하면서도 이를 이루기 위한 실질적 지렛대 제공엔 소극적이었다. 그동안 남쪽은 이산가족 상봉에 대한 북쪽의 호응을 끌어내기 위해 식량·비료 등 대북 지원을 지렛대로 활용해 왔다. 게다가 북쪽의 미사일 발사와 1차 핵실험으로 막히기는 했지만, 지난 2006년 이미 국군포로·납북자 문제를 별도의 당국 채널로 논의하기로 합의했다. 과거 정부와의 차별화라기보다는 ‘따라 하기’인 셈이다.
보상없이 원칙만을 취하겠다는 남쪽의 태도는 북쪽의 거부에 부닥쳐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결국 ‘주고받기’라는 기존의 남북관계 구도를 벗어나는 데는 실패한 셈이다. 이번 회담을 지켜본 한 대북 전문가는 “정부는 북쪽이 굽히고 들어왔다고 자만해선 안되고, 이후 이뤄질 금강산·개성 관광 등 여러 남북관계 현안을 다룰 실무협의의 성공을 위해 이번 회담의 의미를 되새겨 봐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 합의문에 6·15선언 빠져 국민의 정부·참여정부에서 남북 간 맺은 합의문의 서문에 항상 등장했던 ‘6·15공동선언’이나 ‘우리민족끼리’ 등의 표현이 이번에는 빠졌다. 그동안 북쪽이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6·15 공동선언과 10·4 정상선언의 지지·이행’을 촉구해온 점에 비춰, 다소 의외로 받아들여진다. 북쪽이 이번 합의문 서문의 표현 방식을 남쪽에 ‘양보’한 것 아니냐는 해석도 가능한 대목이다.
이번 적십자회담 합의문 서문은 “금강산에서 남북적십자회담을 갖고 다음과 같이 합의했다”로 건조하게 시작했다. 그러나 최근 적십자회담 합의문을 보면 “우리민족끼리의 정신에 맞게(7차), “6.15 공동선언의 기본정신에 맞게”(8차), “‘남북관계 발전과 평화번영을 위한 선언’(10·4 정상선언)에 따라”는 식으로 남북 정상회담의 정신을 서문에서 꼭 밝혔다. 그간의 관례가 깨진 것은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과 김정일 위원장의 면담, 북쪽 ‘특사 조의방문단’의 서울 방문과 청와대 예방 등의 연장선에서, 북쪽의 최근 적극적인 남북관계 개선 행보와 무관하지 않은 것으로 풀이된다. 북쪽 사정에 밝은 한 남북관계 전문가는 “북쪽이 두 공동선언의 표현보다는 정신과 내용을 이행하는 쪽으로 정책기조를 잡은 것 같다”며 “그러나 올해 말까지도 남쪽이 강경한 대북 기조를 바꾸지 않을 경우 북쪽은 유화적인 태도를 언제든 접을 수 있다”고 내다봤다.
손원제 이용인 기자 wonj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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