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정부는 지원 부정적 입장
이르면 10월말께 북-미 대화가 시작될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미국 정부가 북한에 식량 지원 재개를 적극 검토하고 있다. 이에 비해 한국 정부는 식량 지원에 여전히 소극적인 자세를 취하고 있어 대조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다.
미국 의회조사국(CRS)의 마크 매닌 박사는 24일(현지시각) 자유아시아방송(RFA)과 인터뷰에서 “오바마 행정부가 대북 식량 지원 재개를 검토하기 위해 실무대책반을 만들어 이미 활동에 들어갔다”고 밝혔다. 특히, 매닌 박사는 “북한이 식량 위기가 심각하다는 점을 미국 정부에 암시해오거나 직접 식량 지원을 요청할 경우 오바마 정부는 그에 대한 생각이 있을 것”이라고 말해, 실무대책반 활동이 꽤 진전돼 있음을 내비쳤다. 북한은 지난 3월 미국 정부가 6자회담과 관련없이 세계식량계획(WFP)과 비정부단체 등을 통해 인도적 차원에서 제공하던 식량지원을 거부했다.
앞서 커트 캠벨 미 국무부 차관보도 21일 한-미 외교장관 회담 직후 브리핑에서 “북한이 인도적 지원을 요청하면, 인도적 지원과 경제적 지원을 분리해 대응할 것”이라고 분명히 밝혔다. 다만, 캠벨 차관보는 “식량과 의약품 등의 분배와 관련해 다양한 가이드라인을 충족시켜야 한다”고 말해 북한과 분배 투명성에 대한 협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해 한국의 한 외교전문가도 “미국 정부는 빌 클린턴 전 미 대통령의 방북 직후인 8월 중순께부터 식량 지원을 검토하기 시작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전했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는 여전히 대북 식량지원에 부정적인 입장을 보이고 있다. 현인택 통일부 장관은 지난 23일 국회에서 국내 쌀 재고분을 대북지원에 사용해야 한다는 일각의 주장과 관련해 “대규모 쌀지원 문제는 전반적인 남북관계를 고려해서 하겠다”며 “쌀지원은 국내 쌀수급과 별도로 판단해 결정할 문제”라고 잘라 말했다. 또한 세계식량기구(WFP)가 올해 들어 네차례에 걸쳐 대북식량지원을 요청했지만, 한국 정부는 결정을 미루고 있다.
전문가들은 미국과 한국 정부의 상반되는 태도를, 현재의 한반도 상황에 대한 인식과 상황 타개 노력의 차이로 설명했다. 김연철 한겨레평화연구소 소장은 미국의 식량 지원 검토에 대해 “북-미 대화의 여건을 조성하기 위한 것”이라고 풀이했다. 식량 등 인도적 지원은 유엔결의 1874호의 대북 제재 조항에 위배되지 않기 때문에 미국 정부 입장에선 협상 수단으로 활용하는 데 부담이 적은 편이다. 게다가 미국 민주당 정부는 전통적으로 인도적 지원과 정치적 사안을 분리하려는 등 생존과 관련된 식량 지원에 비교적 유연한 입장을 보여왔다.
이에 비해 이명박 정부는 지난 정부와의 차별성을 강조하며 북한의 근본적 입장 변화가 없는 한 대규모 식량 지원은 어렵다는 태도를 줄곧 견지해왔다. 특히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면담, 북한 특사 조의 방문단의 청와대 방문, 북-미 대화 재개 조짐 이후에도 이명박 정부는 북한의 태도가 전술적 변화에 불과하다며, 인도적 대북 지원단체들의 방북마저 선별적으로 허용하고 있다.
이용인 기자 yy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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