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탈리 추르킨 유엔 주재 러시아 대사가 18일(현지시각) 뉴욕에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긴급 소집에 대한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추르킨 대사는 한반도 긴장 고조와 관련해 안보리 긴급 소집을 요구했다. 뉴욕/AP 연합뉴스
러 “긴장고조 심각 우려” 회의소집 요구
미, 훈련 지지하면서도 확전 가능성 경계
한국은 “합법 훈련에 안보리가 왜” 불만
미, 훈련 지지하면서도 확전 가능성 경계
한국은 “합법 훈련에 안보리가 왜” 불만
19일(현지시각) 유엔 안전보장이사회가 러시아의 요구로 소집된 것을 유엔 주변에서는 다소 의외로 여겼다. 러시아는 천안함 침몰 사건 때와는 달리 지난달 북한의 연평도 포격에 대해선 미국 등 다른 서방국가들과 마찬가지로 북한의 공격을 강하게 비판해왔기 때문이다. 안보리는 그동안 북한의 우라늄 농축, 연평도 공격 등과 관련한 회의 개최를 둘러싸고 물밑에서 조율해왔지만 미국·영국·프랑스와 중국간 견해차가 커 성사되지 못했는데, 예상치 못했던 계기로 회의가 열린 셈이다.
러시아는 안보리 소집 이유에 대해 “한반도에서 추가로 발생할 가능성이 있는 긴장고조에 관해 심각하게 우려하고 있다”고 말했는데, 안보리 회원국들은 이를 말 그대로 믿는 분위기다. 미국도 러시아와 마찬가지로 이번 사격훈련이 북한의 포격, 한국의 대응공격 등으로 인한 전면전 가능성에 대해 적지 않은 우려를 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미국은 한국이 결정한 사격훈련을 공식적으로는 지지한다는 입장을 내보이고 있지만, 내심 통제되지 않는 상황으로 발전할 가능성에 대한 우려가 크다. 이번 훈련은 한-미 연합훈련이 아닌, 한국의 단독훈련이지만, 미국이 교관 15명과 옵서버 6명 등을 훈련 현장에 파견한 것은 북한의 공격 등 상황 악화를 막으려는 의도로 보인다.
러시아의 유엔 안보리 긴급 소집에 대해 한국 정부는 공식반응을 내놓진 않았지만, 불만스런 기색이 역력하다. 청와대 고위관계자는 19일 “합법적인 군사훈련에 유엔 안보리가 뭐라고 할 게 있나”라고 말했다. 또 안보리 회의 소집의 직접적 이유가 북한의 연평도 포격이 아닌, 한국의 연평도 사격훈련이라는 점은 한국 정부로선 불편한 일이다.
이날 안보리 논의 내용이 19일 오전까진 정확하게 전해지지 않고 있지만, 러시아와 중국은 한국의 사격훈련 자제를 요청하고, 미국 등 서방국가들은 북한의 연평도 공격과 우라늄 농축 등이 한반도 긴장 고조의 원인이라는 입장을 펴면서 맞선 것으로 예상된다. 안보리 비회원국인 한국은 회의에 앞서 미국·영국·프랑스·일본 등과 공조를 폈고, 북한도 중국·러시아 등과 사전 접촉을 가진 것으로 알려져 이날 회의는 당사국인 한국과 북한이 빠진 가운데, 강대국들끼리 대리전을 펼치는 모양새로 전개된 셈이다.
최근 한반도 정세를 둘러싸고 한·미·일 대 북·중·러의 대립 구도가 형성된 만큼, 이날 유엔 안보리 회의는 회의 전부터 뚜렷한 결론을 내리지 못할 것으로 예상됐다. 정부 고위 당국자는 회의에 앞서 “한번에 논의를 끝내진 못하고 몇차례 더 만날 가능성이 있다”며 “결의안을 채택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말했다. 논의 결과를 집약한 ‘언론 발표문’을 의장이 설명하거나, 각국 유엔주재 대사들이 논의 내용을 각자 설명하는 방식이 될 가능성이 높다는 뜻이다.
앞으로 안보리 회의가 또 열릴지는 미지수다. 그러나 만일 한국이 이르면 20일로 예정된 사격훈련을 감행할 경우, 이날 안보리 회의는 결과적으로 구체적 실효성을 갖지 못하게 된다. 그렇다고 주권국가가 이미 실시한 사격훈련에 대해 안보리가 시비를 걸긴 힘들다. 그러나 한국으로선 안보리 회의 소집 이후에도 그대로 사격훈련을 하는 건 적지 않은 외교적 부담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높다. 더욱이 한반도 문제에서 앞으로 계속 중국, 특히 러시아의 협력을 필요로 하는 상황에서 이는 부정적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
워싱턴/권태호 특파원, 이제훈 기자 h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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