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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국방·북한

“고엽제 매립, 한국 증언대 기꺼이 서겠다”

등록 2011-05-22 20:36

스티브 하우스가 지난 13일(현지시각) 미 현지언론에 고엽제 매립을 증언하고 있는 모습.  미 <케이피에이치오 티브이> 화면 갈무리
스티브 하우스가 지난 13일(현지시각) 미 현지언론에 고엽제 매립을 증언하고 있는 모습. 미 <케이피에이치오 티브이> 화면 갈무리
전 주한미군 하우스 인터뷰
아무런 보호장비도 없이
녹슨 드럼통 250개 묻어
이후 30~40개씩 추가 매립‘

’간기능 이상 등 평생 병마
“후유증 갈수록 심각해져
긴박한 위험 알리게 됐다”

1978년 어느 봄날, 경북 왜관의 미군기지 캠프 캐럴에서 중장비 기사로 일했던 미 육군 상병 스티브 하우스는 상관의 명령을 받고 굴착기로 땅을 팠다. 이어 그는 동료들과 함께 손수레로 창고에 있던 드럼통을 그 구덩이에 묻었다. 55갤런(208ℓ)들이 250개였다. 드럼통 겉면에는 ‘화학물질, 에이전트 오렌지. 1967 베트남 공화국’이라고 쓰여 있었다. 지금도 잊히지 않는 독극성 냄새가 코를 찔렀다. 그들은 옮기면서 드럼통에 고엽제가 들어있다는 걸 알게 됐지만, 심각성은 미처 몰랐다. 아무런 보호장비도 없이 맨몸으로 그들은 작업했다.

그날 이후, 하우스의 인생은 휘어졌다. <한겨레>는 20일(현지시각) 전화와 이메일을 통해 캠프 캐럴에 고엽제를 묻었다고 증언한 퇴역 주한미군 하우스(54)로부터 그의 호소를 직접 전해들었다. 그는 인터뷰에서 “한국에서 증언대에 기꺼이 설 용의가 있다”고 밝혔다.

하우스가 기억하는 기지 뒤쪽 헬기장 근처인 매립지는 한쪽 길이가 축구장 한쪽 라인에 해당할 정도의 엄청난 크기였다. 구덩이는 8m 안팎 깊이로 팠다.

그는 “이곳에 처음 2주일간 55갤런들이 드럼통 250개를 파묻었고, 이후에도 30~40개씩의 드럼통을 가을까지 계속 매립했다”고 말했다. 중장비 기사 4명, 트럭 운전사 2명 등 모두 6명의 병사가 그 일을 했다고 밝혔다.

얼마 뒤, 작업에 참가했던 동료 리처드 크차드 크레이머의 다리 감각이 마비돼, 서울의 미군병원으로 후송됐다. 또다른 병사인 로버트 트래비스는 온몸에 피부발진이 퍼졌다. 그리고 하우스는 마른기침이 끊이지 않고, 간기능이 약화돼 금세 피로를 느꼈다. 그때 그는 21살이었다. “군병원에서 엑스레이를 수도 없이 찍었지만, 의사들은 문제가 뭔지 말해주지 않았다.”

그는 또 “처음엔 매립지의 구덩이를 완전히 덮어버리지 않았는데, 한국을 떠나기(79년 2월) 직전 구덩이 빈칸에 새들이 죽어있는 걸 보고 상관에 보고하자 구덩이를 덮어버리라고 명령했다”고도 말했다.

1979년 12월 제대한 그는 고향 미시간으로 돌아가 직장을 잡고, 결혼도 했다. 그러나 잦은 기침과 간 비대증은 계속 따라다녔고, 여기에 당뇨, 신경장애, 각종 합병증이 더해졌다. 그는 평생 원인모를 병마와 싸워야 했다. 크레이머는 다리, 등, 목 관절염과 눈병이 낫지 않고, 트래비스의 피부발진도 아직 계속되고 있다.


하우스는 제대 이후에도 계속 보훈병원을 들락거렸다. 그리고 2008년 무렵, 건강악화로 더 이상 일을 할 수 없는 지경이 됐고, 해고됐다. 그는 따뜻한 곳을 찾아 애리조나로 이사했다. 어느 의사도 정확한 병의 원인을 말해주지 않았다. 그는 보훈처에 ‘고엽제 때문’이라고 주장했으나, 보훈처는 “미군 고엽제 피해자는 1968년 이후에는 없다”는 입장을 밝히며 이를 부인했다. 그러던 중, 그는 올해 보훈병원의 한 의사로부터 자신의 증상이 “고엽제 때문인 것 같다”는 말을 간접적으로 전해들었다.

하우스는 자신이 이 문제를 지금 밝히는 이유에 대해 자신의 후유증이 점점 심각해져 한국인들에게 긴박한 위험을 알려야 한다는 사명감에 의한 것이라며, “5년 전부터 계속 이야기했으나, 누구도 귀 기울이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는 “우리가 파묻은 드럼통이 녹슬고 삭아, 안에 있던 고엽제가 흘러나와 지하수로 스며들 수 있다. 지금이 1978년 그때보다 더 위험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자신의 행동에 대해 평생 죄책감에 시달렸다고 털어놓았다. 그는 “명령에 의한 것이었지만, 한국인들에게 진심으로 사과하는 길은 늦었지만 이 문제를 공개적으로 알리는 것이라고 생각했다”며 “내가 죽기 전에 이 문제를 분명히 확인하길 바란다”고 말했다. 하우스는 한국 국회 등이 진상조사를 원할 경우, “기꺼이 가서 증언대에 서겠다”고 다짐했다. 그는 구글 지도로 색칠까지 해가며 매립지점까지 구체적으로 밝히고 있다.

그는 “한국에 근무하면서 아름다운 나라인 한국과 한국인들을 사랑하게 됐다. 그런데 이런 일에 내가 관여된 것에 대해 한국인들에게 대단히 죄송하게 생각한다”며 거듭 사과했다.

워싱턴/권태호 특파원 h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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