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순혁 기자
현장에서
꽃다운 청춘 4명의 생명을 앗아간 해병대 총기사고가 일어나고 어느새 열흘이 흘렀다.
이 안타까운 비극을 계기로 해병대 울타리 안에 남아 있던 구타와 가혹행위, 기수열외(왕따) 등 악습들이 낱낱이 밝혀지고 있다.
사건 수사도 순조로워 보인다. 범행을 일으킨 김 상병과 공범으로 지목된 정 이병 모두 솔직하게 진술하고 있어 대면조사가 필요 없을 정도라고 한다. 사건의 책임을 묻는 작업도 한창이다. 해당 부대 소초장(중위)과 상황부사관(하사)도 구속됐고, 연대장과 대대장은 보직해임을 당했다.
이렇듯 도주나 증거인멸 우려가 없음에도 구속될 정도로 아랫사람들은 가혹한 처벌을 받고 있는데, 해병대 수뇌부는 어떤가? 주요지휘관 회의를 열어 병영문화 혁신을 결의하는 ‘뻔한 일’을 한 게 전부다. 자신들은 아무런 잘못이 없다는 듯 아랫사람들에게만 호통을 치는 모양새다. 하지만 구타나 가혹행위는 해당 소초만이 아니라 해병대 전반에 걸쳐 광범하게 이뤄져 온 악습이다. 재수 없게 걸린 해당 부대 지휘관들에게만 책임을 물을 일이 아니란 얘기다.
물론, 높은 사람이라고 무조건 책임을 지라는 논리도 잘못된 것이다. 아랫사람의 잘못을 윗사람이 다 책임지는 것도 순리에 맞지 않다. 하지만 유낙준 사령관(중장)의 경우는 그렇지 않다. 지난 3월 국가인권위 조사를 통해 해병대에서 일반인의 상식을 초월하는 수준의 구타가 이뤄지고 있음이 밝혀졌고, 뒤이은 국방부 감사에서도 이런 사실이 확인됐다. 유 사령관은 이 사건과 관련해 국방부 장관과 해군참모총장으로부터 서면경고까지 받았다.
2005년 지피(GP: 전방 소초) 총기사고 때와 비교해도 유 사령관의 처신은 옹색해 보인다. 당시 송아무개 6군단장은 물론 국방장관까지 사건 직후 책임을 통감한다며 사의를 밝혔다.
유 사령관의 이런 처신을 두고서는 군 안에서도 뒷말이 나오고 있다. 국방부 관계자는 “해병대 수뇌부에 정상적인 논의 구조가 이뤄져 있다면 사령관으로 하여금 진즉에 사의 표명하도록 하고 이를 반려받은 뒤에 사건 처리나 병영문화 개선에 착수했을 것이다. 그게 본인도 사는 길인데, 이런 말을 해주는 참모진이 없는 것 같다”고 말했다. 장군의 책임열외가 언제까지 계속될지 궁금할 뿐이다.
이순혁 기자 hyu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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