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순혁 기자
현장에서
3일 오전 국방부 브리핑실. 이튿날 있을 국가보훈처의 대통령 새해 업무보고에 관한 사전 설명회가 열렸다. 그런데 이 자리에서 엉뚱하게도 대북정책을 둘러싼 여러 질문과 답변이 오갔다.
보훈처가 배포한 자료에서 “2040세대를 중심으로 햇볕정책과 남북화해가 현 정부의 원칙 있는 대북정책 및 한-미 동맹 강화보다 안보에 유리하다고 잘못 인식”하고 있다고 밝힌 대목이 문제가 됐다.
기자들의 질문이 쏟아졌다. ‘원칙 있는 대북정책’에서 말하는 원칙이 구체적으로 무엇인지, 2040세대가 남북화해가 안보에 유리하다고 생각하는 게 왜 잘못된 인식인지, 대북정책을 평가하고 특정 정책을 옹호하는 게 보훈처 업무와 무슨 관련이 있는지…. 하지만 보훈처 관계자들은 뚜렷한 답변을 내놓지 못했다.
보훈처의 새해 중점 추진 업무들도 주목을 끌 만했다. 제2 연평해전 10주기 행사를 전국 시·군 단위별로 대규모로 거행하고, 인천상륙작전 기념일에는 퍼레이드를 실시하겠단다. “한-미 동맹의 중요성을 상기하는 행사”로 추진하겠다는 것이다.
설명을 듣던 기자들은 물론 국방부 관계자들도 “왜 이런 내용을 넣어 분란을 일으키지”라며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보훈처장과 딱 어울리는 발상들”이라는 촌평도 나왔다.
박승춘 보훈처장이 누군가? 2004년 국방부 정보본부장 시절 몇몇 기자를 불러 북한 경비정의 교신내용 등을 흘렸다가 보직해임된 예비역 육군 중장이다. 이후 강연 등을 통해 참여정부의 전시작전통제권 전환 정책 등을 비난하는 일에 앞장섰다. “한일합방보다 더 심각한 문제가 한미연합사 해체”라며 강조하기도 했다. 그런 덕분인지 이명박 정부에서 보훈처장으로 발탁됐다.
지금 세상은 하루가 다르게 변하고 있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 혁명이 얘기되고, 그런 변화에 뒤처진 여야 정치권은 빅뱅을 맞고 있다. 이 대통령도 신년사를 통해 북한에 화해 메시지를 전했다. ‘원칙 있는 대북정책’을 옹호하겠다며 2040세대의 남북관계 인식이 잘못됐다고 지적하고, 퍼레이드 등을 통해서 뭔가를 해보겠다는 보훈처를 국민이 어떻게 바라볼지 궁금하다.
이순혁 기자
hyu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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