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이후 남북관계
김대중·노무현 정부를 거치며 진전을 거듭해온 남북관계는 이명박 정부의 ‘비핵·개방·3000’이라는 사실상의 ‘대북 압박·붕괴’ 정책과 북한의 연이은 도발이 맞물리면서 ‘위기를 위기로 대체’하는 악순환을 반복해 왔다.
2008년 6월27일 북한 핵 위협을 상징하던 영변 원자로 냉각탑이 폭파됐다. 청와대는 “북한 당국의 핵 불능화 의지를 보여주는 조처”라고 환영했다. 그러나 7월11일 금강산 관광을 나섰던 박왕자씨가 북한군이 쏜 총을 맞고 숨지는 사고가 발생하면서 남북관계는 꽁꽁 얼어붙었다. 이후 남북이 대립하면서 중단된 금강산 관광은 재개되지 못했다. 북한은 그해 12월1일 개성공단 체류인원 등을 제한하는 ‘12·1 조치’에 들어갔다.
2009년 북한의 미사일·핵 실험으로 남북관계는 더욱 악화됐다. 그해 4월5일 북한은 함경북도 무수단리에서 장거리 미사일을 발사한 데 이어,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이틀 뒤인 5월25일 2차 핵실험을 한다. 유엔 안보리에서 대북제재 결의안(제1874호)이 채택되자 북 외무성은 “핵포기 불가 입장”으로 맞받았다.
잠깐의 대화 국면도 있었다. 그해 8월 김대중 전 대통령이 서거하자 북한의 특사조의방문단이 서울을 방문한 데 이어 이명박 대통령과의 면담도 이뤄졌다. 추석을 계기로 9월에는 이산가족 상봉 행사가 진행되기도 했다.
그러나 대화는 지속되지 못했다. 2010년 2~3월, 북한은 한-미 합동군사연습을 “핵전쟁 연습”이라고 비난하며 강력한 군사적 대응을 거듭 밝혔다. 그리고 3월26일 천안함 사건이 발생하면서 이명박 정부에서의 남북관계는 사실상 파국을 맞았다. 5월20일 천안함 사건이 북한 소행이라는 조사결과가 발표되자, 북한은 “북침전쟁 구실을 위한 날조극”이라고 비난했다. 그리고 11월23일 연평도 포격 도발로 돌이킬 수 없는 적대 국면이 조성됐다.
2011년 5월20일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중국을 방문하면서 북한의 개혁개방 가능성에 대한 낙관적 전망이 나오기도 했다. 그러나 김 위원장은 해를 넘기지 못하고 12월17일 사망한다. 이어 12월30일 북한은 국방위원회 성명을 통해 “이명박 역적 패당과는 영원히 상종하지 않을 것”이라고 발표했다.
김일성 주석 100회 생일을 이틀 앞둔 2012년 4월13일 북한은 장거리 미사일(광명성 3호)을 발사하지만 궤도 진입에 실패했다. 대선을 일주일 앞둔 12월12일에는 또다시 장거리 미사일을 쐈다. 박근혜 정부 출범을 앞둔 지난 2월12일 북한은 제3차 핵실험을 감행했다. 3월5일 한-미 합동군사연습을 이유로 정전협정 백지화를 발표한 데 이어, 4월9일 지난 10년간 남북 대화의 끈을 이어주던 개성공단마저 폐쇄했다.
김남일 기자 namfic@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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