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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국방·북한

[한겨레 프리즘] 총기사고의 정치학 / 박병수

등록 2014-06-29 18:34

박병수 선임기자
박병수 선임기자
강원도 고성 22사단 일반전초(지오피·GOP) 총기난사 사건을 접했을 때 문득 떠오른 건 3년 전 해병대 참사였다. 우선 시기적으로 비교적 최근 발생한 대형사고였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사건 경위가 드러나면서 희생자가 대부분 후임병이라는 점에 눈길이 갔다.

2011년 7월 강화도 해병2사단 해안초소 사건은 후임병이 선임병 대접을 해주지 않는 게 발단이 됐다. 당시 김아무개 상병은 이른바 ‘기수열외’에 불만을 품고 동료병사들에게 총을 쏴 4명이 숨지고 2명이 부상을 당했다. 지난 21일 참사는 아직 조사가 진행되고 있어서 단정하긴 이르지만, 사고를 일으킨 임아무개 병장이 남긴 메모에 ‘나 같은 상황이었으면 누구라도 힘들었을 것’이라는 내용이 들어 있는 점이나, 희생된 병사 5명 가운데 4명이 임 병장의 후임병이었던 사실에서 묘한 데자뷔가 느껴진다.

부실 늑장 대처는 훨씬 치명적이다. 2011년 해병대 사건 당시 숨진 박치헌 상병은 가슴에 총상을 입고도 2시간35분 동안 살아 있었다. 그러나 중증외상환자를 치료할 의료진과 시설이 갖춰진 병원으로의 이송이 늦어져 제대로 치료를 받지 못했다. 이번에도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다. 합참에 보고된 시간을 기준으로 보면, 최초 ‘2명 사망’ 보고에서 최종 ‘5명 사망 확인’ 보고까지 걸린 시간이 무려 1시간12분이었다. 의료 조처가 늦어져 사망자가 늘어났을 개연성이 있는 정황이다. 몇몇 유족은 실제 “사인이 총상에 의한 즉사가 아니라 과다출혈일 가능성이 크다”며 늑장 대처 의혹을 제기했다. 119 헬기로 중상자를 이송한 시각도 사건 발생 3시간35분이 지나서였다.

군대 내 자살이나 총기, 폭행 등에 의한 ‘군기사고’가 과거 1980~90년대에 견줘 크게 감소한 건 사실이다. 국방부 자료를 보면, 1985년 군기사고 사망자가 288명이었으나, 1990년 212명, 1995년 108명으로 꾸준히 줄어들었고, 2000년대 이후는 대체로 70~90명 수준이다. 군의 노력이 있었고 군의 분위기도 과거와 달라졌다는 걸로 읽힐 만하다. 그러나 군기사고 사망이 2005년 74명으로 바닥을 친 뒤 2010년 83명, 2013년 80명으로 최근 감소 추세가 멈춘 것은 뼈아프게 새겨야 할 대목이다. 국방부는 그동안 사건이 터질 때마다 병영문화 개선책을 내놓았다. 그럼에도 잊힐 만하면 터지는 것은 이제 새로운 접근법이 요구되는 상황이 됐다는 뜻 아닐까 생각해 본다.

외신들이 휴전선을 묘사할 때 빼놓지 않는 말이 ‘세계에서 가장 많은 병력과 무기가 배치된 경계선’(world’s most heavily armed border)이다. 과장이 아니다. 한반도의 허리를 동서로 가르는 휴전선을 따라 249㎞를 남북의 젊은이들이 1년 내내 두 줄로 점점이 틀어박혀 어둠을 응시하고 있는 장면을 떠올려 보라.

이런 지오피 근무는 긴장의 연속이다. 단절된 곳에서 밤낮이 뒤바뀐 채 실탄으로 무장한 경계근무로 늘 정신적·육체적 피로를 느낀다고들 한다. 이번 총기사건의 배경에 이런 스트레스로 병사들의 신경이 날카로워진 점도 있었을 것이라고 추측하는 건 무리가 아니다.

군 당국은 관심병사 관리를 위한 상담관 확충과 경계근무 부담을 줄일 과학화 경계시스템 도입 등을 대책으로 내놓고 있다. 그러나 남북간 군사적 긴장을 늦추는 것은 어떨까. 생각해볼 대안이 아닐까. 최근 몇년간 끝간데없이 이어진 남북 군사대결 국면이 대화와 화해 국면으로 바뀐다면 휴전선에도 좀더 숨쉴 틈이 생길 테니 말이다. 이제라도 정부가 나서야 하지 않을까. 더 나아가 그렇게 시작된 대화와 협력이 쌓인다면 남북간 군축이 논의될 환경이 조성되지 말란 법도 없지 않은가.

박병수 선임기자su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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