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병수 정치부 선임기자
어릴 적 ‘유엔 데이’라는 게 있었다. 유엔 창설일(10월24일)이다. 이날을 기억하는 이유는 단순하다. 빨간 날이었기 때문이다. 인터넷을 검색해 보니 1976년 법정 공휴일에서 제외됐다고 나오는 걸 보면, 초등학생 때였던 것 같다. 노는 날이 사라지는 게 아쉬웠던 모양이다. 선생님 말씀이 기억난다. “6·25 때 도와준 유엔에 고마움을 전하는 날인데, 회원국도 아닌 우리가 공휴일로 기념하는 것은 지나치다고 한다.”(남북은 91년 유엔에 가입했다.)
유엔 데이 기억이 되살아난 건 27일 6·25전쟁 정전협정일 행사 때문이다. 며칠 전 국가보훈처의 보도자료를 보고, 이날이 ‘유엔군 참전의 날’로 기념된다는 걸 알았다. 유엔의 ‘재조지은’(再造之恩)을 삼십 몇 년 만에 다시 되새기다니, 묘했다. 기념일이 지난해 제정됐으니 이번 27일은 두번째 유엔군 참전의 날인 셈이다. 정부는 이번에도 ‘61주년 정전협정 및 유엔군 참전의 날’ 기념행사를 성대히 치렀다.
한국전쟁은 오랫동안 전쟁 발발일로 기억됐다. 정부는 해마다 6·25 기념식을 치렀다. 90년대 민주화 이후 달라졌지만 7·80년대까지는 학교에서도 6·25 행사가 제법 열렸다. 당시 배운 ‘6·25 노래’는 지금도 대충 흥얼거릴 수 있다. 그날이 다가오면 “아아 잊으랴, 어찌 우리 이날을…”로 시작되는 노래를 몇번이고 부르고 또 들었는데, 어찌 잊을 수 있으랴. 그러나 남북간 총성이 멈춘 7·27 정전협정은 공식 기억에 없다. 한미연합사가 기념행사를 하곤 했고, 몇몇 시민단체가 조촐한 모임을 가졌을 뿐이다.
이런 기억 방식은 대체로 종전일을 기념하는 전통과 사뭇 다르다. 유럽과 미국에서는 1차 세계대전이 막을 내린 11월11일이나, 나치 독일이 항복문서에 서명한 5월8일, 일제가 항복한 8월15일에 기념행사가 치러진다. 평화를 되찾은 날을 소중하게 기억한다. 참혹한 전화의 시작을 기념하는 나라는 거의 없다.
이승만 정부가 53년 정전협정에 반대했고 협정 체결에 당사자로 서명하지 않았던 사정을 고려하면, 정부가 7·27을 무시해온 사정을 이해 못할 일만도 아니다. 그러나 전쟁발발일 기념이 반북 의식을 재생하고 증폭하는 기억기제로 악용된 것도 사실이다. ‘동족상잔의 비극’을 일으킨 날은 자연스럽게 남침을 자행한 ‘북괴’에 대한 증오와 경계로 이어진다. 전쟁 이후의 새로운 전망보다 남북 대결의식과 분단 고착화 등 전쟁의 부정적 유산을 끊임없이 상기시키는 구실을 한 셈이다.
그래서 정전협정일의 공식화는 눈길을 끈다. 이 일은 지난해 정전 60돌을 맞아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한국전쟁은 잊혀진 전쟁이 아니라 승리한 전쟁’이라며 나선 게 기폭제가 됐다. 정부가 이에 호응해 종전일을 기념하는 전통을 받아들인 것이다. 그래도 행사가 주로 유엔 참전군인이나 참전국 대표들을 초청해 감사 메시지를 전하고 정전협정과 한-미 동맹이 지난 60여년 발전과 평화의 토대가 됐음을 기억하는 내용에서 한 걸음 더 못 나간 것은 유감이다.
정전협정은 잠시 전쟁을 멈춘 것이지 끝낸 게 아니다. 남북 대치를 보도할 때 외신이 늘 ‘원칙적으로 전쟁상태’(technically at war)라는 표현을 꼬리표처럼 붙이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정전체제가 그동안 전면전 재발을 억제해온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여전히 한반도의 평화는 살얼음판이고 불안하다. 7·27 행사에 불안정한 정전체제 이후의 대안, 온전한 전쟁 종식과 평화 모색이 없다면 ‘변형된 6·25 행사’와 얼마나 다를까.
박병수 정치부 선임기자 su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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