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정치 국방·북한

[한겨레 프리즘] 집단사고와 외부 견제 / 박병수

등록 2014-08-24 18:34수정 2014-08-24 20:49

박병수 정치부 선임기자
박병수 정치부 선임기자
부끄러운 고백부터 해야겠다. 지난달 말 한 인권단체가 ‘윤 일병 구타 사망 사건’을 거의 넉달 만에 폭로했을 때 <한겨레>를 포함한 ‘오프라인 언론’ 대부분의 첫 반응은 뜨뜻미지근했다. 그저그런 단순 사건으로 처리하거나 아예 다루지 않은 언론도 있었다.

민감하게 반응한 건 사이버 공간이었다. 대부분의 신문·방송은 온라인이 들끓으면서 한발 늦게 사안의 심각성을 인식했다. 그 끔찍함에 많은 이가 몸서리쳤던 군 폭력 사건의 보도는 그렇게 시작됐다. 누리꾼들의 공분과 질타가 없었다면 어쩌면 윤 일병의 죽음은 일과성 사건으로 묻혀버리고 말았을지 모른다. 국방 담당 기자로서 어찌 그리 둔감했을까, 뼈아프게 반성한다.

사건의 파장은 컸다. 한민구 국방부 장관이 직접 사과를 해야 했고, ‘민·관·군 병영문화혁신위원회’도 출범시켰다. 김요환 육군 참모총장은 “반인권적이고 엽기적인 행위가 지속되는 부대는 해체를 불사하겠다”고까지 결의를 다졌다. 그만큼 심각하게 받아들인다는 뜻일 거다.

그렇지만 “이제 모든 게 잘될 것”이라고 믿는 이는 많지 않다. 군은 과거에도 사건·사고가 일어날 때마다 이런저런 대책을 내놓았다. 그래도 구타나 집단 따돌림이 끊이지 않으니 “이번이라고 다를까” 생각하는 게 무리는 아니다. 실제 군은 13일 박근혜 대통령에게 ‘병영혁신안’을 보고했으나, 여론의 반응은 “재탕·삼탕 대책”이라며 냉소적이다.

어떻게 해야 할까? 남은 해법은 “이젠 ‘셀프 개혁’이 못미덥다고 하니 그럼 직접 와서 보라”가 아닐까 싶다. 외부의 견제와 감시를 받아들이는 것이다. 외부 통제는 오래전부터 시민사회가 제기해 왔고, 국회에도 법안이 상정돼 있다. 안규백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이 대표 발의한 ‘군인지위향상에 관한 기본법안’은 국회 산하에 군사옴부즈맨을 두고 진정 사건과 국회 국방위의 요청 사안 등을 조사하는 권한을 부여하고 있다. 옴부즈맨 제도는 노무현 정부 시절에도 논의됐으나 군의 반대로 독립기구도 아니고 조사권도 제약된 군사소위원회를 권익위원회에 두는 것으로 매듭지어졌다.

유감스럽게도 옴부즈맨에 대한 국방부의 거부감은 여전하다. 불시 부대 방문권이나 자료 접근권 등이 ‘보안상 우려된다’는 것이다. 인권위와 권익위가 옴부즈맨과 비슷한 기능을 하고 있다는 이유도 들이댄다. 그러나 군 인권 문제가 국가 기밀과 어떤 연관성이 있을지는 의문이다. 또 인권위와 권익위는 조직 역량의 부족과 제한된 조사권 등으로 이미 한계를 드러내지 않았던가.

1985년 288명이던 ‘군기사고’ 사망자는 2000년대 70~90명 선까지 떨어졌다. 민주화의 진전에 따라 과거 굳게 닫혔던 군에도 언론의 조명이 비치기 시작한 게 군의 경각심을 자극했다고 봐야 할 것이다. 그러나 최근 군기사고 사망자는 2011년 110명, 2012년 73명, 2013년 80명으로 감소 추세가 멈췄다. 과거와 전혀 다른 새로운 접근법이 필요한 시점이라는 뜻 아닐까.

누구도 집단사고의 함정에서 자유롭지 않다. 같은 직업적 배경과 사고방식을 갖기 쉬운 군인사들이 못 보고 놓치는 문제가 외부인의 눈에는 또렷할 수 있지 않을까. 애초 대부분의 언론이 윤 일병 사건을 가볍게 다룬 것도 비슷한 직업적 경험에서 비롯한 집단사고의 흔적일지 모른다. 그 잘못을 외부의 누리꾼이 일깨운 거고.

어떤 지휘관인들 외부의 견제와 감시를 기꺼워할까. 그러나 더 물러설 곳이 있던가. 이순신 장군은 ‘명량해전’의 결전을 앞두고 “살려고 하지 말라”고 했다. 죽어야 살고, 버려야 얻는다.

박병수 정치부 선임기자 suh@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평화를 위해 당당한 목소리가 필요합니다
한겨레와 함께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정치 많이 보는 기사

‘부정선거 전도사’ 황교안, 윤 대리인으로 헌재서 또 ‘형상기억종이’ 1.

‘부정선거 전도사’ 황교안, 윤 대리인으로 헌재서 또 ‘형상기억종이’

선관위 “선거망 처음부터 외부와 분리” 국정원 전 차장 주장 반박 2.

선관위 “선거망 처음부터 외부와 분리” 국정원 전 차장 주장 반박

오세훈, ‘명태균 특검법’ 수사대상 거론되자 ‘검찰 수사’ 재촉 3.

오세훈, ‘명태균 특검법’ 수사대상 거론되자 ‘검찰 수사’ 재촉

이재명 “국힘, 어떻게 하면 야당 헐뜯을까 생각밖에 없어” 4.

이재명 “국힘, 어떻게 하면 야당 헐뜯을까 생각밖에 없어”

이재명, 내일 김경수 만난다…김부겸·임종석도 곧 만날 듯 5.

이재명, 내일 김경수 만난다…김부겸·임종석도 곧 만날 듯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