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관계 진전과 비핵화의 관계를 어떻게 설정할 것인가’라는 해묵은 고차 방정식이 부각되고, 정부 안에서도 남북관계 진전에 대한 추진력이 식어가면서, 연말연초 달아올랐던 남북관계 해빙 기대치가 점점 낮아지고 있다.
미국 국무부 공보국 관계자는 14일(현지시각) 남북대화에 대한 미 정부의 입장을 묻는 <한겨레> 질의에 “남북관계 진전을 위한 노력에 있어 서울과 워싱턴 사이에는 빛 샐 틈이 없다”며 “남북대화의 진전은 북한을 진실되고 신뢰할 만한 비핵화 협상에 복귀시키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이 관계자의 발언은 남북관계 진전을 지지하면서도, 남북대화에서 비핵화 문제가 중요한 의제가 돼야 함을 우회적으로 강조한 것으로 풀이된다.
아울러 남북관계 진전과 비핵화의 연계 문제와 관련해 한-미간에 일정한 입장 조율이 있었음을 시사하는 것이기도 하다. 지난달 29일 한국 정부의 대북 대화 제의 때만 해도 미국 정부는 ‘자세한 것은 한국 정부에 문의해 보라’는 식의 시큰둥한 반응을 보였다. 한국 정부가 미국의 핵심 관심사인 비핵화 문제를 뒷전으로 돌리려는 것 아니냐는 의구심이 깔려 있었기 때문으로 보인다.
박 대통령 신년 기자회견 머리발언에 ‘비핵화’문제가 언급된 것도 미국의 이런 기류가 어느 정도 반영된 것으로 알려졌다. 워싱턴 외교소식통도 “미국의 이런 태도는 박 대통령이 언급한 ‘남북관계와 비핵화의 선순환’과 같은 얘기라고 보면 된다”고 말했다. 이 소식통은 5·24 조치의 해제 문제와 관련해 “한국 정부가 독자적으로 취한 것인 만큼 한국 정부가 조건이 충족됐다고 판단되면 해제해도 미국이 이의를 제기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그는 “한국 정부의 자금이 지원되는 대규모 경제협력 사업을 하는 데는 한계가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한-미가 ‘남북관계와 비핵화의 선순환’이라는 기본 원칙엔 동의하고 있지만, 박근혜 정부가 이를 정책적으로 구현하려고 할 때는 적지 않은 어려움에 부딪힐 공산이 크다. 미국은 남북대화에서 비핵화 문제의 비중을 낮추는 ‘남북관계 주도형 비핵화’에 대해 북-일 납치피해자 협상 때처럼 견제구를 던질 가능성이 높다. 반면, 비핵화 의제를 중심에 놓는 남북관계 개선에 대해서는 북한이 수용하기가 쉽지 않다. 어느 경우든 남북관계 진전의 속도는 상당히 제한적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결국, 박근혜 정부의 돌파 의지가 중요할 수밖에 없지만, 정부 안에서도 남북관계를 속도조절하려는 분위기가 감지되고 있는데다 북한의 묵묵부답이 길어지면서 동력이 조금씩 사그라들고 있다. 이런 맥락에서 북-미 관계의 실질적 진전없이 남북간에 할 수 있는 최대치는 이산가족 상봉 정도가 아니겠냐는 비관적 전망마저 나오고 있다.
워싱턴/박현 특파원, 이용인 기자 hyun2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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