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을 계기로 금강산 면회소에서 이산가족 상봉 행사를 개최하기로 남북이 합의한 8일 오전 판문점 평화의 집에서 남쪽 수석대표인 이덕행 대한적십자사 실행위원(오른쪽 둘째)과 북쪽 수석대표인 박용일 조선적십자회 중앙위원회 중앙위원(왼쪽 둘째)이 종결회의를 하고 있다. 판문점/통일부 제공
남북 적십자 대표들이 7~8일 이례적으로 ‘무박 2일’의 마라톤 실무접촉을 벌였다. 이산가족 전면 명단 교환과 정례화, 상봉 시기 등을 두고 남북이 치열한 신경전을 벌였기 때문이다.
이번 실무접촉에서 남북은 전체회의와 11차례의 수석대표 접촉을 거듭하며 24시간 동안 협상을 벌였다. 2013년 8월 실무접촉에서 11시간, 2014년 2월 실무접촉에서 4시간22분 동안 협상을 벌인 것에 비하면 적어도 2배 이상 시간이 걸린 것이다.
우선 상봉 시기를 정하는 데 시간이 걸렸던 것으로 전해졌다. 남쪽은 10월10일 북한이 노동당 창건일에 장거리 로켓을 발사하면 국제적 대북 제재 분위기 속에 이산가족 상봉 행사도 악영향을 받을 수 있다고 봐, 이보다 앞서거나 가까운 시점을 제안했다. 이번 접촉 남쪽 수석대표인 이덕행 대한적십자사 실행위원은 8일 “(북쪽에 제안한 상봉 시기는 10월10일) 이전도 있고 이후도 있다”며 일부 이를 인정했다. 하지만 이 문제는 결국 창건일 행사 준비와 추석 연휴로 더 많은 준비 기간이 필요하다고 한 북쪽 뜻대로 됐다.
남쪽에선 또 박근혜 대통령이 광복절 경축사에서 북에 제안한 이산가족 전면 생사 확인을 위한 명단 교환과 정례화 등 근본적인 해결 방안을 논의하길 원했지만 북에선 소극적이었다. 이 실행위원은 “우리는 이런 문제를 합의서에 담자고 주장을 했고, 북한은 이번 회담에 나온 대표단이 실무 대표단이기 때문에 실무적 논의에 집중하고, 이러한 심도 있는 문제 협의를 위해서는 적십자 본회담을 개최하자는 주장을 해왔다”고 설명했다.
그동안 이런 의제 논의가 실무접촉에서 실제 성사된 적이 없다는 점에서, 남쪽의 태도가 실무접촉이 이례적으로 길어지게 된 주요 원인인 것으로 보인다. 남쪽이 박근혜 대통령의 주요 관심사인 전면 명단 교환 등에 최선을 다하고 있다는 점을 보여주려다 보니 빚어진 일이 아니냐는 지적이다.
근본적인 해결 방안을 논의하기 위한 적십자 회담 시기를 확정하는 것을 두고도 팽팽한 신경전이 벌어진 것으로 전해졌다. 실무접촉 합의서에선 “가까운 시일 안에 남북 적십자 회담을 연다”며 구체적으로 시기를 확정하지 못했다. 통일부 당국자는 “이 문장을 만드는 데 (협상을) 많이 했지만, 남과 북이 생각이 달랐다”고 말했다.
북쪽에서 남쪽이 요구하는 이산가족 상봉 정례화 등과 자신들이 원하는 금강산 관광 재개나 5·24조치 해제를 한 테이블에 올려놓고 논의하자는 식의 제안을 이번 접촉에서 언급하지는 않았다고 이 실행위원은 밝혔다. 그는 ‘박 대통령의 통일 외교 등 발언에 대한 북쪽의 불만 제기가 있었느냐’는 질문에는 “전혀 없었다”고 말했다.
김지훈 기자
watchdog@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