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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국방·북한

[한겨레 프리즘] 8·25 합의 한달 / 박병수

등록 2015-10-04 18:48

남북간 ‘8·25 합의’가 이제 한달 조금 더 지났을 뿐인데 벌써 “그런 게 있었나” 하는 분위기다. 이산가족 상봉 한번 하고 끝났던 지난해 2월 1차 남북 고위급 접촉의 전철을 밟는 것이 아닌지 우려된다. 그때는 대북전단 살포 등이 문제였는데, 이번에는 북한의 장거리 로켓 발사 가능성이 8·25 합의를 짓누르고 있는 형국이다.

사실 북한이 로켓을 발사하겠다고 밝힌 적은 없다. 한·미가 발사 가능성을 미리 경고하고 나서니까, “위성발사는 주권 행사”라는 기존 입장을 거듭 밝혔을 뿐이다. 그렇다고 한·미가 북한의 로켓 발사 가능성에 대한 구체적인 근거를 제시한 적도 없다. 북한이 최근 동창리 발사장 시설을 증개축한데다 오는 10일이 노동당 창건 70돌이니 쏠 가능성이 높다는 정황에 기댄 측면이 크다. 그렇다고 잘못된 예측만은 아니다. 북한은 김정은 노동당 제1비서 집권 이후 한번은 2013년 4월 김일성 주석 탄생 100돌 즈음에, 또 한번은 같은 해 12월 김정일 국방위원장 기일에 맞춰 발사한 전력이 있다. 또 발사체 개량의 기술적 필요도 있을 터인데, 누가 안 쏠 것이라고 장담하겠는가. 북한이 안 쏘겠다고 한 적도 없다.

북한이 끝내 쏠지는 알 수 없다. 로켓을 발사할 경우 득보다는 실이 커 보인다. 발사 강행은 북한을 더욱 국제적 고립으로 몰고갈 것이다. 그래도 지도부의 권위 강화나 내부 결속 등 국내 정치적 필요도 있을 터이니 속단할 수 없다. 그러나 쏘든 안 쏘든 남북관계는 이미 살얼음판이다. 로켓 발사를 둘러싸고 주고받은 가시 돋친 설전은 또 한번 불신의 벽을 높였다.

남북관계 복원이 이번에도 물건너가면 언제 다시 기회가 올까. 기계적으로 따지면, 지난해 2월 합의가 박근혜 정부 출범 이후 대략 1년 만이었고 이번 합의는 그 이후 다시 1년6개월 만이었으니, 또 그만한 시간이 필요하지 않을까. 두 차례 합의가 제대로 성과를 내지 못하면 불신도 더 쌓일 테니, 더 걸릴 수도 있겠다. 그나마 이번처럼 남북간 일촉즉발의 군사적 긴장이 한껏 고조된 뒤에야 다시 남북대화의 문이 열릴 수 있게 된다면 그건 끔찍한 일이다.

요즘 들어 박 대통령은 통일 얘기를 유독 많이 한다. 외국에 나가서도 서슴지 않는다. 지난달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을 만나선 “통일에 대해 심도있는 논의를 했다”고 한다. 최근 유엔 총회 연설에서도 “통일된 한반도를 전세계가 축하해주는 날이 하루속히 오기를 간절히 꿈꾸고 있다”고 호소했다. 이른바 ‘통일 외교’다. 그러나 남북간 화해와 협력, 평화의 길도 아직 멀기만 한데 제대로 된 이정표도 없이 통일을 읊조리니 난데없는 느낌이고, 섣부른 ‘북한 붕괴론’의 변형쯤으로 들리는 건 그만두고라도 이명박 전 대통령의 임기말 통일 타령이 떠올라 불길한 느낌이다.

‘원칙’ 하면 박 대통령을 떠올리기 쉽지만, 실상 ‘원칙 있는 대북정책’은 이 전 대통령이 원조였다. 그러나 임기 후반 그 ‘원칙’으로 할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다는 것이 최종 판가름난 뒤 갑자기 “통일은 도둑처럼 온다”며 ‘통일세’니 ‘통일 항아리’니 하는 것들을 들고나오지 않았던가. 통일론이 대북정책 실패의 가림막으로 보였던 건 당연하다.

박병수 정치부 선임기자
박병수 정치부 선임기자
북한이 8·25 합의 사항인 이산가족 상봉 행사의 무산을 위협하긴 했어도 파기를 선언하진 않았다. 남북 노동자 통일축구대회와 금강산 소나무 병해충 방제 작업, 남북 종교인 행사 등 몇몇 남북 교류도 예정대로 추진되고 있는 모양이다. 아직 길이 열려 있는 셈이다. 이제 반환점을 돈 박 대통령의 임기를 생각하면 이번이 마지막 기회일지 모른다. 적극적인 의지와 사려깊은 지혜를 기대한다.

박병수 정치부 선임기자 su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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