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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국방·북한

‘애수의 소야곡’ 부른 북 아버지…딸은 미소 띤채 눈물 주르륵

등록 2015-10-21 19:42수정 2015-10-21 21:36

제20차 이산가족상봉 1회차 이틀째인 21일 오후 강원도 고성군 금강산 이산가족면회소 단체상봉에서 림옥례(오른쪽) 할머니를 기다리던 조카가 이모를 반갑게 맞이해 자리로 이동하고 있다. 금강산/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제20차 이산가족상봉 1회차 이틀째인 21일 오후 강원도 고성군 금강산 이산가족면회소 단체상봉에서 림옥례(오른쪽) 할머니를 기다리던 조카가 이모를 반갑게 맞이해 자리로 이동하고 있다. 금강산/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이틀째 개별상봉
“아빠 지금도 그때 부르던 노래 기억해요?” “운다고 옛사랑이 오리오마는 눈물로 달래보는 구슬픈 이 밤…” 북쪽 최고령자 리흥종(88)씨는 넋두리처럼 노래했다. 1937년 가수 남인수가 노래한 ‘애수의 소야곡’이 금강산 이산가족면회소에 낮게 울렸다. 딸 이정숙(68)씨는 하염없이 울었다. 놓치면 안 된다는 듯 리씨의 한 손은 딸의 손을 잡고 있었다. “백마강 달밤에 물새가 울어 잊어버린 옛날이 애달프구나…” 리씨가 이어 부른 ‘꿈꾸는 백마강’도 이산가족의 마음을 읊어냈다. 하늘도 우는 듯 금강산에 비가 흩뿌렸다. 꿈인지 생시인지 알 수 없는 밤이 지난 뒤, 21일 오전 개별상봉과 낮 공동중식 행사를 거쳐 단체상봉이 오후 4시(이하 북쪽 시각, 남쪽보다 30분 느림) 열렸다. 만나는 자리마다 슬픔이 가득했지만 웃음꽃도 피어났다.

■ 눈물로 달래는 구슬픈 밤, 잊어버린 옛날

리흥종씨의 고향은 백마강이 곁으로 흐르는 충남 예산이다. 리씨의 아내는 남편의 생사도 모른 채 35년 전 세상을 떠났다. 이정숙씨는 “엄마가 아빠 생각나면 노래를 불러줬다”고, 긴 세월 얼굴도 떠올리지 못하던 ‘아빠’한테 말했다. 제 목숨보다 귀했을 어린 아내와 걸음마하는 딸을 두고 리씨가 행방불명된 건 1950년이다. 우익과 좌익이, 국군과 인민군이 번갈아 드나들며 많은 아버지들이, 청년들이 자취를 감추던 때다. 딸은 “돌아가서도 아버지의 노래를 기억하겠다”고 했다. 22일 또다시 긴 이별을 해야 한다.

남쪽의 동생들을 만난 리한식(85)씨는 단체상봉장 테이블에 흰 종이를 두고 연필을 집어들었다. 막내 동생 이종인(55)씨는 “헤어지기 전 선물로 그림을 그려달라”고 했다. 리씨는 옛 기억을 되살려 집중하며 ‘옛날 살던 집’을 그려나갔다. 65년 전까지도 온 가족이 어울려 살던 경북 예천의 초가집이다. 리씨의 사촌동생 이천식(76)씨는 “예전부터 워낙 손재주가 좋으셨다. 북에서도 무슨 대회에 나가 2등도 하시고 그랬단다”고 말했다. 다들 헤어질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 노래 기억해요?” 딸 요청에
리흥종씨 넋두리처럼 노래

남 동생 그림 선물 달라하자
북 형님 예전 살던 집 그려줘

“개별상봉 2시간뿐이라 안타까워”
“이따 꼭 와” 북 외삼촌 말에 눈물

■ 65년 만에 나눈 형제의 맥주 한잔

“이렇게 고생만 해서 어떻게 해….” 이날 낮 점심식사 자리에서 남녘 동생 김주철(83)씨는 숟가락도 들지 않았다. 북쪽의 형 김주성(85)씨도 수저 대신 손수건을 들었다. “건강해야 한다, 주철아.” 형제는 꼭 닮은 서로의 눈물을 닦았다. 대동강맥주가 가득 담긴 잔도 부딪혔다. 1950년이었다. 형은 아파 누워 있는 동생한테 살구 3개를 건네고 나갔다. “난 지금 간다. 밥 잘 먹고 있어라.” 마지막 말이었다. 주철씨는 북녘 형의 딸 김성희(43)씨한테 “아버지 잘 모시라”고 당부했다. “그래야 다시 보지….”

북쪽 남철순(82)씨는 남쪽 동생 남순옥(80)씨의 손을 놓지 않았다. 살뜰하던 시절을 되살리려는 듯 옛 사진들을 나눠 보고 또 봤다. 벚꽃 구경 사진을 보이며 동생은 “엄마야, 엄마”라고 외쳤고, 언니는 흑백사진을 꺼내 “결혼사진”이라고 했다. 언니는 한국전쟁 때 학교에 간다고 나간 뒤 돌아오지 않았다. 오순도순 살던 4남매 중 두 동생 남춘자·완효씨는 1985년 브라질로 이민갔다. 철순씨는 “두 동생한테 내 얼굴을 보여주고 싶다”며 남쪽 취재진의 방송 카메라에 영상편지를 띄워 보냈다. “통일이 되면 꼭 다시 만났으면 좋겠다.” 이들처럼 이번 상봉행사에서 만난 96가족 중 형제자매는 80명에 이른다.

■ 울다가 웃다가…거듭되는 이별 연습

이날 오전 8시50분께 금강산호텔 발코니에선 애타는 기다림의 시선이 가득했다. 개별상봉을 기다리는 남쪽 이산가족들이다. 외금강호텔·금강산호텔에 흩어져 묵는 남쪽 이산가족은 북쪽 가족이 버스에서 내리는 모습을 지켜봤다. 96개의 방에서, 긴 밤을 기다려온 개별상봉이 시작됐다. 비공개여서 취재진은 들어갈 수 없었다.

전날에 이어 이틀째 개별상봉까지 마치자, 대부분 마음을 놓은 모습이었다. “오늘 또 보니까 더 가까워진 것 같아요. 마음을 여니까.” 북쪽 삼촌 량만룡(83)씨를 만난 남쪽 조카 양영례(67)씨는 환하게 웃었다. 그렇다고 60여년의 이별이 쉽게 풀릴 리 없다. 외삼촌을 만나러 온 이민희(54)씨는 “개별상봉이 2시간밖에 없어 너무 아쉽다”고 했다. 북쪽의 외삼촌 도흥규(85)씨 마음도 다르지 않다. “이따 꼭 와, 꼭 와.” 이씨는 외삼촌이 여러 차례 같은 말을 했다며 눈물을 찍어냈다.

금강산/공동취재단, 김진철 기자 nowher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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