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 긴장 고조 우려
박근혜 정부가 8일 정오부터 대북 확성기 방송을 재개한 것은 북한의 제4차 핵실험 대응 국면에서 ‘전략적 자충수’란 지적이 많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 제재 등 국제 공조를 강화하는 데 전력투구해야 할 한국 정부가 오히려 국제사회의 대북 대응 전선을 교란시키고 있다는 게 비판의 핵심이다.
① ‘북-국제사회’ 구도가 ‘남북 대결’로
남, 군사 충돌땐 분쟁 당사자 돼 외교력 약화 대북 확성기 방송 재개가 ‘전략적 자충수’란 지적은 서로 연관된 두 문제를 중심으로 제기된다. 첫째, 남북 대결 구도에 따른 ‘한국의 분쟁 당사자’화다. 대북 확성기 방송 재개는 남북 간 군사적 긴장을 한껏 끌어올릴 위험이 크다. 지난해 8월 박근혜 정부가 11년 만에 대북 확성기 방송을 재개했을 때 북한은 ‘준전시상태’를 선포하고 포사격을 했다. 이번에도 포격전 등 국지적 충돌 위험이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전망이다. 이렇게 되면 북한의 4차 핵실험 이후 ‘북한 대 국제사회’ 구도로 형성되던 전선에 ‘남한 대 북한’이란 새로운 대치 전선이 중첩될 수밖에 없다. 더욱이 남과 북이 군사적 갈등과 충돌로 치닫게 되면 한국의 위상이 ‘대북 국제 공조의 조직자’에서 ‘분쟁 당사자’로 격하돼버린다. 이 경우 북한의 핵실험 대응 국면에서 한국의 외교 교섭력이 약화될 수밖에 없다. 전직 고위 관계자는 “대북 확성기 방송 재개는 국면의 초점을 북핵 대응에서 남북 대결 위기 구도로 옮기는 전략적 패착”이라고 짚었다. 국제사회도 우려를 나타낸다. 일본을 방문 중인 필립 해먼드 영국 외무장관은 미 해군 7함대가 있는 요코스카항에서 로널드 레이건호를 시찰한 뒤 기자들과 만나 “한국과 지역의 다른 국가들이 자제력을 발휘하기를 촉구한다. 우리는 북한보다 더 커야 한다”고 말했다. ② 대북 국제공조 교란
대북제재 미·일-중·러 갈릴수도 둘째, 대북 국제 공조의 교란이다. 대북 확성기 방송을 계기로 남북의 군사 충돌이 현실화하면, 북한의 4차 핵실험에 따른 국제사회의 대응 기조가 교란될 수밖에 없다. 한국의 유일 동맹국인 미국이나 일본은 북한의 행태를 비난하며 대북 제재 수위를 더 높이자고 하겠지만 중국과 러시아의 대응은 오히려 그 반대일 가능성이 높다. ‘미·일 대 중·러’의 갈등을 증폭시킬 우려가 있는 이런 구도는 한국에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중국 정부는 북핵 문제와 관련해 ‘3원칙’(한반도 비핵화,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 대화와 협상을 통한 평화적 해결)을 일관되게 강조해왔다. 중국 정부는 6일 북한의 핵실험 직후 “북한의 핵실험에 단호히 반대한다”면서도 전과 달리 “관련 각방의 냉정과 절제 호소”라는 표현을 사용하지 않았다. 그렇지만 남북의 군사 긴장 수위가 높아지면 중국이 “관련국의 냉정과 절제”를 공개적으로 촉구할 수 있다. 김연철 인제대 교수는 “비무장지대(DMZ)의 위기가 고조되면 중·러는 한반도 정세 관리를 위해 유엔 안보리의 대북 제재 결의 수준을 낮추려 할 것”이라며 “확성기 방송은 유엔 안보리의 제재 논의에 부정적 영향을 초래할, 자기 발등을 찍는 대책”이라고 말했다. 전직 고위 인사도 “확성기 방송은 유엔 안보리의 대북 제재 논의 지형을 굉장히 뒤엉키게 할 것”이라며 “특히 중국 정부의 협력을 이끌어내는 데 어려움을 가중시킬 것”이라고 짚었다. ③ 출구 없는 외통수
북 핵실험 사과 외엔 중단 못해 대북 확성기 방송 재개는 남북관계 측면에서도 ‘출구가 없는 외통수’에 가깝다는 지적이 많다. 정부는 북한의 4차 핵실험이 “8·25 합의에 대한 중대한 위반”이라며 방송을 재개했다. 이 논리대로라면, 적어도 4차 핵실험에 대한 북한의 ‘사과’가 없으면 방송을 중단할 명분이 없다. 핵실험을 “자위적 권리”라 주장하는 북한이 남쪽에 사과할 확률은 사실상 0%다. 지난해 8월 비무장지대 목함지뢰 폭발 사건을 이유로 확성기 방송을 재개했다가 ‘8·25 합의’에 담긴 북쪽의 ‘유감 표명’을 근거로 방송을 중단한 때와 상황이 근본적으로 다르다. 이제훈 기자 nomad@hani.co.kr
남, 군사 충돌땐 분쟁 당사자 돼 외교력 약화 대북 확성기 방송 재개가 ‘전략적 자충수’란 지적은 서로 연관된 두 문제를 중심으로 제기된다. 첫째, 남북 대결 구도에 따른 ‘한국의 분쟁 당사자’화다. 대북 확성기 방송 재개는 남북 간 군사적 긴장을 한껏 끌어올릴 위험이 크다. 지난해 8월 박근혜 정부가 11년 만에 대북 확성기 방송을 재개했을 때 북한은 ‘준전시상태’를 선포하고 포사격을 했다. 이번에도 포격전 등 국지적 충돌 위험이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전망이다. 이렇게 되면 북한의 4차 핵실험 이후 ‘북한 대 국제사회’ 구도로 형성되던 전선에 ‘남한 대 북한’이란 새로운 대치 전선이 중첩될 수밖에 없다. 더욱이 남과 북이 군사적 갈등과 충돌로 치닫게 되면 한국의 위상이 ‘대북 국제 공조의 조직자’에서 ‘분쟁 당사자’로 격하돼버린다. 이 경우 북한의 핵실험 대응 국면에서 한국의 외교 교섭력이 약화될 수밖에 없다. 전직 고위 관계자는 “대북 확성기 방송 재개는 국면의 초점을 북핵 대응에서 남북 대결 위기 구도로 옮기는 전략적 패착”이라고 짚었다. 국제사회도 우려를 나타낸다. 일본을 방문 중인 필립 해먼드 영국 외무장관은 미 해군 7함대가 있는 요코스카항에서 로널드 레이건호를 시찰한 뒤 기자들과 만나 “한국과 지역의 다른 국가들이 자제력을 발휘하기를 촉구한다. 우리는 북한보다 더 커야 한다”고 말했다. ② 대북 국제공조 교란
대북제재 미·일-중·러 갈릴수도 둘째, 대북 국제 공조의 교란이다. 대북 확성기 방송을 계기로 남북의 군사 충돌이 현실화하면, 북한의 4차 핵실험에 따른 국제사회의 대응 기조가 교란될 수밖에 없다. 한국의 유일 동맹국인 미국이나 일본은 북한의 행태를 비난하며 대북 제재 수위를 더 높이자고 하겠지만 중국과 러시아의 대응은 오히려 그 반대일 가능성이 높다. ‘미·일 대 중·러’의 갈등을 증폭시킬 우려가 있는 이런 구도는 한국에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중국 정부는 북핵 문제와 관련해 ‘3원칙’(한반도 비핵화,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 대화와 협상을 통한 평화적 해결)을 일관되게 강조해왔다. 중국 정부는 6일 북한의 핵실험 직후 “북한의 핵실험에 단호히 반대한다”면서도 전과 달리 “관련 각방의 냉정과 절제 호소”라는 표현을 사용하지 않았다. 그렇지만 남북의 군사 긴장 수위가 높아지면 중국이 “관련국의 냉정과 절제”를 공개적으로 촉구할 수 있다. 김연철 인제대 교수는 “비무장지대(DMZ)의 위기가 고조되면 중·러는 한반도 정세 관리를 위해 유엔 안보리의 대북 제재 결의 수준을 낮추려 할 것”이라며 “확성기 방송은 유엔 안보리의 제재 논의에 부정적 영향을 초래할, 자기 발등을 찍는 대책”이라고 말했다. 전직 고위 인사도 “확성기 방송은 유엔 안보리의 대북 제재 논의 지형을 굉장히 뒤엉키게 할 것”이라며 “특히 중국 정부의 협력을 이끌어내는 데 어려움을 가중시킬 것”이라고 짚었다. ③ 출구 없는 외통수
북 핵실험 사과 외엔 중단 못해 대북 확성기 방송 재개는 남북관계 측면에서도 ‘출구가 없는 외통수’에 가깝다는 지적이 많다. 정부는 북한의 4차 핵실험이 “8·25 합의에 대한 중대한 위반”이라며 방송을 재개했다. 이 논리대로라면, 적어도 4차 핵실험에 대한 북한의 ‘사과’가 없으면 방송을 중단할 명분이 없다. 핵실험을 “자위적 권리”라 주장하는 북한이 남쪽에 사과할 확률은 사실상 0%다. 지난해 8월 비무장지대 목함지뢰 폭발 사건을 이유로 확성기 방송을 재개했다가 ‘8·25 합의’에 담긴 북쪽의 ‘유감 표명’을 근거로 방송을 중단한 때와 상황이 근본적으로 다르다. 이제훈 기자 nomad@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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