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 북한 노동당 제1비서가 9일 당대회에서 참석자의 발언을 듣고 있다. 북한 당국은 당대회 나흘째인 이날에야 외신 기자들 일부에게 당대회 행사장 취재를 허용했다. AP 연합뉴스
노동당 대회 ‘결정서’ 발표
헌법에 “핵보유국” 서술 이어
결정서도 “경제·핵 병진노선 강화”
북 ‘핵·미사일 이해집단’ 확대
김정은 핵리더십 자율성 저하
한·미·일 “선 핵포기” 반발
헌법에 “핵보유국” 서술 이어
결정서도 “경제·핵 병진노선 강화”
북 ‘핵·미사일 이해집단’ 확대
김정은 핵리더십 자율성 저하
한·미·일 “선 핵포기” 반발
김정은 북한 노동당 제1비서가 7차 당대회 사흘째인 8일 회의의 ‘사업총화 결론’에서 제시한 지침에 따라, “경제 건설과 핵무력 건설을 병진시킬 데 대한 전략적 노선을 항구적으로 틀어쥐고 자위적인 핵무력을 더욱 강화해나갈 것”이라고 명시한 ‘7차 당대회 결정서’(결정서) 전문이 <노동신문>에 9일 보도됐다. 다만 결정서는 ‘경제·핵 병진노선’(병진노선) 강화에 “제국주의의 핵위협과 전횡이 계속되는 한”이라는 단서를 달았다. 결정서는 “핵무기의 소형화·다종화 실현”도 다짐했다. 아울러 결정서는 김 제1비서의 지침에 따라 “실용위성들을 더 많이 제작·발사해야 할 것”이라고 명시해, 유엔 안전보장이사회가 금지한 “탄도미사일 기술을 활용한 발사”를 지속·확대하겠다는 의지를 강조했다. 병진노선의 지속·강화·확대 방침을 당대회에서 공식 결정한 셈이다.
한국 정부는 이날 통일부·국방부 대변인 브리핑을 통해 “북한을 핵보유국으로 결코 인정할 수 없다는 게 우리와 국제사회의 일치된 입장”이라며 “북한이 핵을 포기할 때까지 우리와 국제사회의 강력한 제재와 압박은 계속될 것”이라고 밝혔다.
미국 정부는 김정은 제1비서의 사업총화 보고 내용 공개 직후 <한겨레>의 논평 요청에 8일(현지시각) ‘국무부 동아시아태평양국 오리 아브라모비츠 대변인’ 명의로 “우리는 북한이 그동안 (9·19 공동성명 등을 통해) 밝혀온 약속과 국제적 의무를 충족하는 데 필요한 구체적 조처를 취하는 데 초점을 맞추라고 요구한다”며 “유엔 안보리 결의(2270호 등)는 북한이 핵 및 탄도미사일 관련 모든 활동을 중단하고 이를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불가역적인 방식으로 포기하라고 요구하고 있다”고 밝혔다.
일본 정부 대변인인 스가 요시히데 관방장관은 9일 정례 기자회견에서 “핵을 계속 보유하겠다는 의사 표명을 결코 받아들일 수 없다”고 밝혔다. 다만 스가 장관은 “김정은 노동당 제1비서”라는 공식 호칭을 사용하며 “납치·핵·미사일을 포괄적으로 해결하는 가운데 ‘대화와 압력’ ‘행동 대 행동’이라는 원칙을 견지한다는 데 변함이 없다”고 강조해 ‘북·일 대화’의 여지를 열어뒀다. 북한의 군사당국회담 제안을 “전혀 진정성 없는 선전선동”(9일 통일부 대변인)이라고 맞받은 박근혜 정부와 결이 다르다.
중국 정부는 일단 직접적인 논평을 피했다. 루캉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이날 정례브리핑에서 “(한)반도 핵문제에 대한 우리의 입장엔 어떤 변화도 없다. 우리는 반도 비핵화, 반도 평화안정 수호, 대화·협상을 통한 문제해결이 각국의 이익과 동북아 평화안정에 부합한다고 본다”며 “모든 국가가 시대 조류에 부합하는 노력을 기울이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북한의 병진노선과 한·미·일의 ‘선 핵포기 요구’가 맞선 이런 상황은 새삼스럽지 않다. 북한의 4차 핵실험(1월6일)과 유엔 안보리의 결의 2270호 채택 등 1~4월 한반도 정세의 지속이어서, 질적 변화가 있다고 보기 어렵다. 다만 핵 갈등·대립의 장기 교착 가능성이 더 높아진 측면은 있다.
이번 당대회를 계기로 ‘김정은 리더십’과 ‘병진노선’ 사이의 일체화가 제도적으로 더 강화된 측면이 있다는 점은 눈여겨볼 대목이다.
북한은 이미 헌법 서문(2012년 4월 개정)에 “핵보유국”이라 명시하고 있는데, 김 제1비서의 사업총화와 당대회 결정서를 근거로 당대회 기간 개정될 노동당규약에도 “핵보유국”이라 명시할 가능성이 높다는 관측이 많다. 이번 당대회 집행부로 전진배치된 박도춘(군수담당 비서)·주규창(당 기계공업부장)·조춘룡(제2경제위원장) 등 핵·미사일 개발 책임자들, 핵·로켓 개발 관련 과학기술자들의 위상 강화, 각종 미사일 발사·통제를 맡은 전략군의 존재 등은 이미 북한 내부에 핵·미사일 등 대량파괴무기(WMD)를 ‘존재의 근거’로 삼은 광범한 이해집단이 형성·확대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는 ‘조선반도 비핵화는 김일성 주석의 유훈’이라는 논리를 구사해온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달리, 김 제1비서가 ‘핵 포기’로 정책 선회를 할 수 있는 리더십의 자율성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는 뜻이어서 문제적이다.
이제훈 기자, 도쿄 베이징/길윤형 김외현 특파원 nomad@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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