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정치 국방·북한

박근혜와 시진핑은 사드를 타협할 수 있나

등록 2016-08-26 20:19수정 2016-08-26 20:28

[한겨레] 다음주의 질문
정의길
국제뉴스팀 선임기자

오바마는 메드베데프에게 “이 모든 문제들, 특히 미사일방어망, 이거는 해결될 수 있다. 그러나 그가 내게 여유를 주는 것이 중요하다”라고 귓속말로 말했다. 그러자 메드베데프는 “이해한다. 여유에 대한 당신 메시지를 이해한다. 당신을 위한 여유…”라고 화답했다.

2012년 3월26일 서울에서 핵안보정상회의에 참석한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과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당시 러시아 대통령은 양자 정상회담을 마친 뒤 기자회견을 기다리다가 나눈 귓속말들이 언론에 포착됐다. 두 정상은 마이크가 켜져 있는 줄 몰랐다. 오바마는 “이번이 내 마지막 선거다. 선거 뒤에는 내가 더 융통성을 가질 수 있다”고 말하자, 메드베데프는 “알겠다. 이 말을 블라디미르에게 전하겠다”고 말했다.

오바마가 미국이 동유럽 국가들에 배치하려는 미사일방어망 계획을 타협할 수 있다고 곧 러시아 대통령에 복귀할 블라디미르 푸틴 당시 총리에게 전하는 메시지였다. 2000년대 이후 미국과 러시아가 격돌하는 것처럼 보였던 미국의 동유럽 배치 미사일방어망 계획은 사실 두 나라 사이에서 타협과 양보를 거듭하는 사안이다.

2015년 9월 중국 베이징 인민대회장에서 열린 한-중 정상회담에서 박근혜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악수하는 모습. 청와대사진기자단
2015년 9월 중국 베이징 인민대회장에서 열린 한-중 정상회담에서 박근혜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악수하는 모습. 청와대사진기자단
2001년 조지 부시 행정부에 의해 시작된 미사일방어망 계획은 미국이 2008년 폴란드에서의 요격미사일과 체코에서의 레이더 시설 배치를 해당 국가들과 조약을 맺으면서, 러시아의 반발이 절정에 올랐다. 그러나 오바마는 2009년 9월 이 계획을 철회하고, 이지스함 등 함정에서의 레이더와 요격미사일로 이란 등의 미사일 위협에 대처하는 새로운 계획을 발표했다.

협정에 앞선 2007년 4월 폴란드 여론조사에서 57%가 미사일 배치를 반대했다. 또 2009년 오바마의 철회 결정에 대해서는 56%가 찬성했다. 폴란드와 체코의 관련 지역 주민들의 반대가 우리의 성주처럼 거셌던 것은 물론이다. 무엇보다도 당시 오바마 정부가 새로운 관계를 설정하고 싶던 러시아의 반대와 위협이 영향을 줬다. 보수 우익인 니콜라 사르코지 당시 프랑스 대통령도 “미사일방어망의 배치는 안보에 아무것도 가져다주지 못한다”며 철회를 주장하기까지 했다.

미국은 폴란드 집권세력을 달래려고 수정된 이지스 요격미사일 방어체계의 일환인 SM-3 블록 요격미사일을 2018년까지 배치하겠다고 약속했다. 2012년 오바마와 메드베데프가 귓속말로 나눈 메시지는 새로 배치되는 SM-3 미사일이 배치되는 국가의 영공만을 지키는 제한적인 지역 방공망이고, 그 배치도 속도조절하겠다는 것으로 나중에 드러났다. 러시아의 크림반도 합병과 우크라이나 내전이 격화되며 러시아의 위협이 증대되자, 폴란드 의회는 지난해인 2015년에야 미국의 요격미사일 배치를 위한 기술협정서를 비준했다. 환경영향평가를 승인해준 정도다. 축소된 미사일 배치 계획이 2018년에 가능하리란 전망은 불투명하다.

미국의 미사일방어망의 일환인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사드)의 한국 배치는 어떻게 될까? 안보 사안은 결코 타협하고 양보할 수 없는 문제가 아니다. 안보란 결국 관련국들 사이의 관계에서 나오는 것이고, 그 관계란 양보와 타협의 산물이다.

왕이 중국 외교부장이 24일 도쿄에서 열린 한·중·일 외교장관 회담에서 “사드 체계를 배치하는 데 견결히 반대한다”면서도 “중·한이 협상을 진행해 쌍방이 모두 받아들일 수 있는 해결책을 찾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한국 역시 중국이 내미는 양보와 타협에 공간이 없는 것이 아니다. 박근혜 정부는 사드를 배치할 제3부지 추진으로 속도조절을 할 명분이 생겼다. 박근혜 정부 임기 안에는 사드 배치가 사실상 불가능해졌다. 잘 활용하면 한국은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유용한 패를 쥘 수 있다. 한국이 중국에 사드 배치를 한 템포 쉬어주는 성의를 보이면서, 북핵 해결의 압박을 가할 수 있다. 미국에는 사드 배치를 언제라도 현실화할 수 있다는 가능성도 유지할 수 있다.

연내에 한-중 정상회담이 실현된다면, 박 대통령은 시진핑 중국 주석에게 이렇게 말할 수 없을까? “이제 사드 배치는 늦춰지고 있다. 나에게 여유를 주는 것이 중요하다. 올해가 지나면 오바마 행정부의 임기가 끝난다. 나도 내년 말이면 물러난다. 그러면 한·미는 융통성을 가질 수 있다.” 시진핑은 이를 거부할 수 있을까?

Egil@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평화를 위해 당당한 목소리가 필요합니다
한겨레와 함께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정치 많이 보는 기사

‘부정선거 전도사’ 황교안, 윤 대리인으로 헌재서 또 ‘형상기억종이’ 1.

‘부정선거 전도사’ 황교안, 윤 대리인으로 헌재서 또 ‘형상기억종이’

선관위 “선거망 처음부터 외부와 분리” 국정원 전 차장 주장 반박 2.

선관위 “선거망 처음부터 외부와 분리” 국정원 전 차장 주장 반박

오세훈, ‘명태균 특검법’ 수사대상 거론되자 ‘검찰 수사’ 재촉 3.

오세훈, ‘명태균 특검법’ 수사대상 거론되자 ‘검찰 수사’ 재촉

이재명 “국힘, 어떻게 하면 야당 헐뜯을까 생각밖에 없어” 4.

이재명 “국힘, 어떻게 하면 야당 헐뜯을까 생각밖에 없어”

이재명, 내일 김경수 만난다…김부겸·임종석도 곧 만날 듯 5.

이재명, 내일 김경수 만난다…김부겸·임종석도 곧 만날 듯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