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경협기업비상대책위원회와 금강산기업협의회 회원들이 4일 오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후문에서 검정색 옷과 모자를 쓴 채 집회를 열고 생존권 보장 및 남북관계개선을 촉구하고 있다.김봉규 선임기자 bong9@hani.co.kr
‘남북관계 발전과 평화번영을 위한 10·4 선언’(10·4 정상선언) 채택 9돌을 맞은 4일 오전 11시30분께 서울 세종로 정부서울청사 후문 앞으로 100여명이 모여들었다. 대부분 검은 옷 차림에, 머리에는 검은 모자를 썼다. 모자 앞과 뒤에는 흰색과 붉은 색으로 이렇게 씌여 있다. “남북 경협 다 죽었다.” “경협 기업인 살려내라.”
10·4 정상선언을 전후로 절정기를 구가하던 남북관계는 2008년 2월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급속히 얼어붙었다. 남북경협의 운명도 마찬가지다. 2008년 7월11일 금강산 관광객 박왕자씨가 북쪽 초병의 총격으로 사망하는 사건이 벌어져 금강산 관광이 중단됐다. 2010년 천안함 사건(3월26일) 직후엔 남북교역 전면 중단을 선언했다. 이른바 5·24 대북 제재 조처다. 그렇게 세월이 흘러갔다. 남북 경협에 앞장선 기업인들이 “경협기업 생존권 보장 및 남북관계 개선을 위한 평화 큰 행진”이라는 펼침막을 앞세워 이날 ‘상복 집회’를 연 이유다.
“자부심을 갖고 일했다. 하루아침에 길이 막혔지만, 언제든 열리겠거니 참고 기다렸다. 9년 가까운 세월이 흘렀다. 인생의 한 부분이 사라져버렸다.” 이날 집회에 참석한 금강산기업인협의회 신양수 회장은 “남북관계는 더는 기대할 수 없는 상황이 됐다. 더는 외면하지 말고, 경협인들이 제2의 삶을 살 수 있도록 정부가 매듭을 지어달라”고 말했다. 금강산에 진출한 49개 업체의 모임인 이 단체가 추산한 매출 손실만 지금까지 8천억원대에 이른다.
개성공단 이외 지역의 1146개 경협기업의 모임인 남북경협기업비상대책위원회 유동호 위원장은 “개성공단 폐쇄 전까지만 해도 보상이 아니라 경협 재개가 목적이었다. 하지만 이젠 상황이 달라졌다”며 “개성공단과 마찬가지로 정부의 정책으로 경협이 막혔으니, 개성공단 입주기업 수준에서 보상이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현대경제연구원이 2014년 11월 내놓은 자료를 보면, 5·24 조처에 따른 경협기업 직접 피해액은 2010~2013년에만 145.9억달러(약 16조1365만원)에 이른다.
남북경협기업비상대책위원회와 금강산기업협의회 회원들이 4일 오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후문에서 검정색 옷과 모자를 쓴 채 집회를 열고 생존권 보장 및 남북관계개선을 촉구하고 있다.김봉규 선임기자 bong9@hani.co.kr
이날 집회에선 검은 옷 차림의 젊은이들도 눈에 띄었다. 경협기업인 2세다. 아버지가 금강산 관광지에서 ‘황금마차’라는 푸드트럭을 운영했다는 이상영(34)씨는 “기다림은 희망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이씨는 “갑작스레 금강산 관광이 중단돼 짐도 못 챙기고 쫓기듯 나온 뒤, 부모님은 기약없는 기다림에 점점 지쳐갔다. 그 기다림이 독이 돼 어머니는 돌아가시고, 어버지는 뇌졸중으로 쓰러지셨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경협기업인들은 이날부터 정부서울청사 앞에 농성장을 꾸리고 생존권 보장을 요구하며 100일 철야농성에 들어갔다.
집회장 한켠에선 개성공단에 식자재를 납품한 삼우유통 임진석(56) 사장이 손팻말을 들고 1인 시위를 했다. 그는 개성공단에 진출한 유통·서비스·건설 등 65개 업체의 모임인 개성공단 영업기업비상대책위 위원장이다. 임 사장은 “개성공단 입주업체와 달리 영업기업 쪽은 사전에 공단 폐쇄 통보조차 받지 못했다. 재고 물품은커녕 각종 서류와 장부를 챙겨오지 못해 피해 보상도 못받고 있다”고 말했다. 영업기업비대위도 생존권을 보장해달라며 이날부터 청와대 앞과 정부청사 후문에서 1인 시위를 시작했다.
정인환 기자
inhwan@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