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김봉규 선임기자 bong9@hani.co.kr
27일 ‘부산-한겨레 국제심포지엄’이 열린 부산 ‘누리마루’에는 8년 동안 평양에서 인도적 지원 활동에 나섰던 나기 샤피크 전 세계보건기구(WHO) 평양사무소 프로젝트 매니저가 아침 일찍부터 자리를 지켰다. 이날 오후 ‘북한 변화를 위한 유엔의 역할’을 주제로 진행된 두번째 세션에 발표자로 나선 샤피크를 토론에 앞서 만났다.
평양에서 언제 활동했는지 묻는 질문에 샤피크는 “사실 지난 5월말부터 7월초까지 40일남짓 평양에 머물렀다”는 뜻밖의 대답을 내놨다. 현재는 은퇴한 상태이지만, 그는 세계보건기구의 요청에 따라 올해 평양에 머물며 북한 정부 관계자들과 함께 여성·어린이 백신 개발과 보건정책 5개년 계획 수립 업무를 지원했다고 했다.
샤피크는 최근 직접 보고 온 북한의 변화를 생생하게 털어놨다. 그는 “우선 가장 눈에 띄는 변화는 밤에 불이 많이 켜져 있다는 것”이라고 했다. 과거 평양에 살 때는 외국인 거주 지역에만 전등 불빛이 보였다고 했다. “택시도 많아지고 모두 휴대폰을 들고 다닌다. 북한 국내카드만 되지만 모두 신용카드를 써서 놀랐다”고도 했다. 그는 7~8년 전만해도 외국인을 두려워하던 어린이들이 먼저 다가와 인사를 나누기도 했다고 소개하며, 특히 젊은층의 변화가 두드러진다고 말했다. “밖에서 압력을 가하며 변화를 촉구하지 않아도 북한은 변하고 있다. 그들이 바깥세상을 모른다는 것은 옛말이다. 그들도 바깥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정확히 알고 있다.”
샤피크가 처음 평양에 발디딘 것은 지난 2001년말 유니세프 일을 하면서다. 당시 어린이 지원 임무를 마치고 북한을 떠나려고 할 때 마침 세계보건기구에서 새로운 프로젝트 매니저 제안을 받았다. 임산부와 어린이들의 건강을 위해 한해 1300만달러가 지원되는 큰 사업을 맡았던 그는 지난 2009년 정치적 이유로 지원이 지연되며 평양사무소를 떠났다.
‘국경없는 의사회’ 소속으로 젊은 시절 인도적 지원 활동을 시작한 그는 국제사회의 대북제재는 효과가 없을뿐더러 북한의 반발만 불러온다고 말했다. 그는 “내 경험에서 말하자면 일반적으로 제재는 성공하지 못하며 성공한다면 그것은 가난한 사람, 약자들에게만 영향을 미친다”고 비판했다. 샤피크는 대북제재가 시작되면서 생긴 가장 큰 변화는 지원액이 확연하게 줄어든 것이라며, 북한에 인도적 지원을 하는 국제기구의 가장 ‘큰손’은 한국 정부였다는 점도 상기시켰다. 그는 “미국과 한국의 언론·정치권이 정치적으로 북한을 공격하는데, 그들도 우리와 똑같이 가족과 시간을 즐기고 먹고 놀고 노래하며 웃는 사람들임을 세계가 알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부산/김지은 기자
mirae@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