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왼쪽)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오른쪽). AP 연합뉴스
최근 대북압박 공조에 나선 중국을 겨냥해 북한이 “조-중 관계의 ‘붉은 선’을 넘고 있다”며 원색적인 비난을 퍼부었다. 이에 대해 중국 외교부가 “공정한 입장”에서 북-중 관계를 처리했다고 맞받고, “북한 핵개발은 북-중 상호원조조약 위반”이라는 주장이 중국 언론에 등장하는 등 북-중 간 설전이 위험 수위로 치닫고 있다.
북한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은 4일치에서 ‘조-중 관계의 기둥을 찍어버리는 무모한 언행을 더이상 하지 말아야 한다’는 제목의 개인 명의 논평을 6면 머리에 올렸다. 당의 공식 입장을 전달하는 매체에 전날 밤 관영 <조선중앙통신>이 내보낸 논평을 다시 실은 것이다.
신문은 논평에서 “최근 우리의 핵 보유를 걸고 반공화국 제재와 군사적 압박 소동이 한계를 넘어서고 있는 데 대한 내외의 우려는 매우 심각하다”며 “그런데 미국이 요란하게 불어대는 위협공갈과 전쟁굉음에 심장이 졸아들어서인지 덩치 큰 이웃나라들에서 사리와 분별을 잃은 언사들이 연일 터져나와 현 사태를 더욱 긴장국면으로 몰아가고 있다”고 주장했다. 또 신문은 “파렴치하게도 미국이 외치는 ‘국제사회의 일치한 견해’라는 것을 그대로 따라 외우며 우리를 범죄자로 몰아대고 잔혹한 제재놀음에 매달리는 것은 조-중 관계의 근본을 부정하고 친선의 숭고한 전통을 말살하려는 용납 못할 망동”이라고 비난했다.
신문은 이어 “국가의 존립과 발전을 위한 우리의 핵 보유 노선을 절대로 변화시킬 수도 흔들 수도 없으며, 조-중 친선이 아무리 소중한 것이라고 해도 목숨과 같은 핵과 맞바꾸면서까지 구걸할 우리가 아니라는 것을 똑똑히 알아야 한다”며 “조-중 관계의 ‘붉은 선’을 넘어선 것은 우리가 아니라 중국”이라고 강조했다.
앞서 <조선중앙통신>은 지난달 21일과 지난 2월23일에도 각각 중국을 비판하는 내용의 개인 명의 논평을 내놓은 바 있다. 하지만 당시엔 중국을 직접 거론하지 않은 채 ‘주변국’ ‘명색이 대국이라는 나라’ 등으로 에둘러 표현했다. 통일부 당국자는 “북한이 중국을 직접 거론하며 비난한 것은 대단히 이례적”이라며 “다만 북한이 외무성 등 공식 기구 차원이 아닌 개인 명의 논평 형식을 취한 것은 비난의 수위를 조절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겅솽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4일 정례 브리핑에서 “중국 측은 조선(한)반도 핵문제에 대한 입장이 일관되고 명확하며 조(북)-중 선린우호 관계 발전에 대한 입장도 일관되고 명확하다”며 “오랫동안 중국은 객관적이고 공정한 입장을 가지고 상황의 시비곡직에 따라 관련 문제를 판단하고 처리했다”고 맞받았다.
북한의 격한 반응에 중국 쪽에선 북한과의 관계 설정에 대한 근본적 의문을 제기하는 목소리까지 나오고 있다. 관영 <인민일보> 해외판이 운영하는 사회관계망서비스(SNS) 계정 ‘샤커다오’(협객도)도 이날 “<조선중앙통신>이 격렬한 글을 냈다. 논쟁할 생각은 없지만 몇마디 해야 할 말이 있다”며 반박에 나섰다. 이 글은 “현재 조선(북한)은 핵무기를 경계선 삼아, 반대하면 적이고 지지하면 친구라는 식”이라며 “이렇게 보면 조선은 친구가 없다. 전세계가 적”이라고 지적했다. 아울러 “지난 4개월 동안 미국이 군사적 압력을 강화하는 동안, 중국의 ‘셔틀 외교’는 사실상 조선에 외교적 노선 변경의 기회를 줬다. 조선은 중국 외교 노력에 마땅히 감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글은 “중-조는 전통적인 우호 관계가 이미 아니다”라며 “새로운 시대 정신에서 양자 관계를 새로 정의해야 한다”고도 밝혔다.
<인민일보>의 자매지인 <환구시보>도 이날 사설에서 북한의 핵개발이 ‘중-조 우호협력 상호원조조약’을 위반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신문은 “조약은 침략에 결연히 반대하고 있는데, 조선(북)은 고집스럽게 핵무기를 개발해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 결의를 위반했고, 조-미 군사 충돌 위험을 높였다. 이런 상황은 조약 체결 때(1961년)는 예상하지 못한 것으로 2001년 마지막 연장 때와도 크게 다르다”며 사실상 재검토를 촉구했다.
베이징/김외현 특파원, 정인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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