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분석_문 대통령 대북구상 삐걱
북 ICBM이 ‘게임체인지’ 가능성
대북정책 ‘한국 주도론’ 시련 직면
문 대통령 오늘 베를린 연설 주목
북한 핵·미사일 도발 비판하되
장기적 안목 대북구상 담을듯
북 ICBM이 ‘게임체인지’ 가능성
대북정책 ‘한국 주도론’ 시련 직면
문 대통령 오늘 베를린 연설 주목
북한 핵·미사일 도발 비판하되
장기적 안목 대북구상 담을듯
“북한에서 미사일도 쏘고, 그 어느 때보다 심각한 안보위기다. 발걸음이 무겁다.”
문재인 대통령은 5일 오전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 참석을 위해 독일로 출국하기 직전 서울공항 귀빈실에서 청와대 참모와 여권 관계자들을 만나 이렇게 말했다. 한-미 정상회담의 성과를 바탕으로 대북정책을 주도적으로 이끌어가려던 문 대통령의 구상이 북한의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아이시비엠) 발사로 출발부터 삐걱이는 것에 대한 고민이 담긴 것으로 보인다.
한·미 미사일부대는 이날 오전 7시 동해안에서 북한 지도부 타격용 연합 탄도미사일 사격을 실시했다. 이번 훈련은 문 대통령이 전날 북한의 아이시비엠 발사에 대응한 ‘무력시위’를 지시한 데 따른 것이다. 문 대통령은 “북한의 엄중한 도발에 성명으로만 대응할 상황이 아니며, 우리의 대응태세를 북한에 확실히 보여줄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분명 쉽지 않은 상황이다. 당장 북이 발사한 ‘화성-14’형을 전날 중장거리탄도미사일(IRBM)로 평가했던 미국이 하루 만에 판단을 뒤집었다. 한민구 국방부 장관도 이날 국회에 출석해 “사거리를 중심으로 볼 때 초기 정도의 아이시비엠으로 본다”고 말했다. 북한은 다섯차례 핵실험을 통해 핵탄두의 ‘소형화·경량화·규격화’에 성공했다고 주장해왔다. 북한이 이를 실어 보낼 ‘운반수단’인 아이시비엠 시험발사까지 성공한 것은 동북아 전략균형을 송두리째 바꿔놓는 ‘게임 체인저’가 될 수 있다. ‘위협’의 수위가 높아지면 대응책도 달라질 수밖에 없다.
문 대통령은 지난 한-미 정상회담에서 ‘제재와 대화를 활용한 단계적이고 포괄적인 접근’을 북핵·미사일 해법으로 제시한 바 있다. 북의 아이시비엠 발사는 이런 문 대통령의 구상에 대한 반발이자, “도발행위를 중단하고 대화의 장으로 복귀하라”는 한-미 공동성명에 대한 정면 도전인 셈이다.
실제 대외적으로 북한의 입장을 대변하는 재일본조선인총연합회(총련) 기관지 <조선신보>는 5일 한국 정부의 ‘주도적 역할’에 대해 “핵 문제에 참견할 처지가 못 될 남조선 당국이 주제넘게 미국의 대리인 역할을 한다”며 “핵 전쟁 위기는 ‘북핵 포기’가 아니라 미국의 ‘대조선 적대시 정책 포기’에 의해 해소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앞서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도 전날 아이시비엠 시험발사를 참관하고 “미국의 대조선 적대시 정책과 핵 위협이 근원적으로 청산되지 않는 한, 우리는 그 어떤 경우에도 핵과 탄도로케트를 협상탁에 올려놓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한 바 있다. 북핵·미사일 문제를 풀기 위해 북-미 간 대화와 협상의 ‘촉진자’를 자임한 문 대통령으로선 곤혹스러울 수밖에 없는 처지다.
미국 쪽에선 “평화적인 방식만으로 한반도 비핵화를 추구할 것”이라면서도, 다시 제재 강화를 벼르고 있다. 렉스 틸러슨 미 국무장관은 4일(현지시각) 성명을 내어 “북한 노동자를 초청하거나 경제적·군사적 혜택을 주고,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 대북 제재 결의를 이행하지 않는 나라들은 위험한 정권을 돕고 방조하는 것”이라고 경고했다. 사실상 중국이 북한에 대한 제재를 강화하도록 미국이 압박에 나서겠다는 경고로 보인다. 5일(현지시각) 유엔 안보리에서 관련 논의가 시작된다. 경우에 따라선 지난 4월 미-중 정상회담 이후 이어진 ‘미-중 대북제재 공조’가 흔들릴 가능성도 있다. “국제사회의 대북제재 틀을 훼손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란 전제 아래 남북관계를 풀어가기로 한 문 대통령에겐 또 다른 악재다.
문 대통령은 6일(현지시각) 독일 베를린 쾨르버재단 초청 연설에서 대북정책 구상을 밝힐 예정이다.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북한이 핵과 미사일을) 포기했을 때 우리가 어떤 방향으로 갈 것이라는 메시지를 던져야 한다”며 “당장 대화의 문을 열기는 어렵지만 언젠가는 시점이 올 것으로 보고, 그런 차원에서 대비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북한의 핵·미사일 도발은 단호하게 비판하되, 압박과 대화를 병행한다는 입장을 유지하겠다는 것이다. 문 대통령의 대북 구상이 난관에 직면했지만 압박·제재만으론 문제를 풀 수 없다는 점을 문 대통령 스스로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정인환 최혜정 김태규 기자, 워싱턴/이용인 특파원 inhw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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