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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국방·북한

왜 한국인들은 이토록 침착하냐고요? [더(The)친절한 기자들]

등록 2017-08-10 17:57수정 2022-08-19 15:54

[더(The) 친절한 기자들]
2013년 무수단과 2017년 화성의 ‘평행이론’
북 ‘화성-12형’ 괌 폭격…, 4년전 ‘무수단’ 연상케 해
외신 “(이미 여러 번 겪은 일이라서) 심드렁한 한국”

‘화염과 분노(fire and fury)’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 8일(현지시각) 뉴저지주 베드민스터의 트럼프 내셔널 골프클럽에서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언급한 이 발언을 국내 언론과 외신들은 앞다퉈 보도했습니다. 김정은 위원장과 트럼프 대통령이 연일 ‘말폭탄’을 주고 받으면서 한반도의 긴장감은 점차 고조됐습니다. 급기야 북한은 10일 ‘화성-12’형으로 괌 주변 해상을 폭격하는 것을 검토하고 있다며 ‘초강수’를 던졌어요. 문재인 대통령의 취임 석달째에 벌어진 일입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치킨게임’ 양상을 보이며 극단으로 치닫는 북-미 관계. 어쩐지 기시감이 있지 않나요. 가깝게는 4년 전 ‘무수단’ 미사일 배치때가 떠오릅니다.

# 2013년 무수단 미사일

사진은 지난 2013년 평양 김일성광장에서 열린 전승절 열병식 중 모습을 드러낸 무수단 미사일. 연합뉴스
사진은 지난 2013년 평양 김일성광장에서 열린 전승절 열병식 중 모습을 드러낸 무수단 미사일. 연합뉴스

“이 땅에서 전쟁이 일어나겠는가 말겠는가가 아니라 오늘 당장인가 아니면 내일인가 하는 폭발 전야의 분분초초를 다투고 있다.”

2013년 4월4일 북한의 인민군 총참모부 대변인은 당장이라도 ‘전쟁’을 벌일 수 있다는 내용의 담화를 내놓습니다. 박근혜 전 대통령 취임 두달째였습니다. 당시 북한은 한미 합동군사훈련에 미군의 비(B)-52, 비(B)-2 전략폭격기와 에프(F)-22 전투기, 핵잠수함, 구축함 등이 참가한 것을 맹비난했어요.

같은날 국방부는 북한에서 사거리 3000~4000㎞인 무수단급 중거리 미사일이 동해 쪽의 미사일 발사대로 이동한 정황이 파악됐다고 밝혀 실제 전쟁이 일어날 수 있다는 불안감이 극에 달했습니다. 군 관계자는 “중거리 미사일로 추정되는 물체가 한 미사일 기지에서 동해 쪽으로 이동한 정황이 군사·정보 부처에 포착됐다. 무수단급 중거리 미사일로 추정된다”고 밝혔습니다. 무수단급 미사일의 사거리는 최대 4000㎞로 괌의 미군기지를 폭격할 수 있습니다. 괌은 당시 한-미 연합 훈련에 참가한 비(B)-52의 기지가 있는 곳이었죠.

미국은 이러한 북한의 위협에 즉각 대응했습니다. 미국은 북한 총참모부 대변인의 담화 이후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를 괌에 긴급 투입하기로 결정했습니다. 미 국방부는 성명을 내어 “몇 주일 안에 사드를 괌에 배치할 것”이라며 “이는 북한의 탄도미사일 위협에 대한 방어태세를 강화하기 위한 예방적 조치”라고 밝혔습니다. 나흘 뒤인 8일에는 북한이 개성공단 북쪽 노동자들을 철수시키고 남쪽 기업에도 철수를 요구하고 나섰습니다. 한반도 평화의 상징이었던 개성공단이 위기를 맞는 순간이었습니다. 한반도의 긴장국면은 최고조에 접어들었습니다.

일부 외국인들이 전쟁의 위협을 피해 줄줄이 한국을 떠나고 있다는 보도도 쏟아졌습니다. 그런데 우리 국민들은 외신들이 놀랄 정도로 침착했습니다. 일부 전문가들이 우려했던 ‘사재기’ 역시 거의 없었죠. 일종의 학습효과 때문이라는 분석이 많았습니다. 미국과 북한은 앞서 2006년과 2009년에 있었던 북한의 핵실험때도 거친 설전을 주고 받았지만 직접적인 충돌로 이어지지는 않았죠.

# 2017년 화성-12형 미사일

조선중앙통신이 보도한 지난 5월 14일 지대지 중장거리 전략 탄도미사일(IRBM) ‘화성-12’형의 시험발사 장면. 연합뉴스
조선중앙통신이 보도한 지난 5월 14일 지대지 중장거리 전략 탄도미사일(IRBM) ‘화성-12’형의 시험발사 장면. 연합뉴스

10일 북한 전략군의 김락겸 사령관은 “이미 천명한 바와 같이 우리 전략군은 괌도의 주요 군사기지들을 제압·견제하고 미국에 엄중한 경고 신호를 보내기 위하여 중장거리전략탄도로켓 ‘화성-12’형 4발의 동시 발사로 진행하는 괌도 포위사격 방안을 심중히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외신들은 앞다퉈 김정은과 트럼프의 대결을 알렸습니다. 김락겸은 “우리가 발사하는 ‘화성-12’는 일본의 시마네현, 히로시마현, 고치현 상공을 통과하게 되며, 사거리 3356.7km를 1065초간 비행한 후 괌도 주변 30∼40km 해상 수역에 탄착 되게 될 것”이라고 위협해 일본 역시 잔뜩 긴장한 상황입니다.

이러한 북한의 도발은 미국을 협상 테이블로 끌어내려는 벼랑끝 전술이라는 분석도 있습니다. 무엇보다 이번달 말에 예정된 을지프리덤가디언(UFG) 훈련에 대한 시위성으로, 훈련일이 다가올수록 북한의 입장이 더욱 강경해지리라는 전망이 나옵니다.

# ‘(이미 여러 번 겪은 일이라서) 심드렁한 한국

이번에도 외신들은 한반도의 긴장상황을 매시간 보도할 정도로 커다란 관심을 보이고 있습니다. 전쟁의 위협이 가시화됐다는 보도에 주식시장도 몇차례 출렁거렸습니다. 미국 일간지인 로스앤젤레스타임스는 9일 “한국사람들은 방위문제에 대해 놀라울 정도로 심드렁하다. 왜?(South Koreans are surprisingly blase about civil defense. Why?)”라는 제목의 기사를 실었습니다. 64년째 ‘전쟁이 멈춘 상태’에서 휴전선 일대나 서해 북방한계선(NLL) 인근의 국지적 무력충돌을 숱하게 겪었지만 그 충돌이 전면전으로 비화하지 않았음을 알고 있는 한국인들의 ‘슬픈 담대함’이 외국인 기자에게는 놀라웠던 모양입니다. ‘(이미 여러 번 겪은 일이라서) 심드렁한’이라는 의미를 지닌 ‘블라제이(blase)’를 쓴 것이 흥미롭습니다. 기사에 등장한 한 대학생은 “북한의 위협이 계속되고 있지만 나는 실제로 전쟁이 일어날 거라고 생각해본 적이 없다”고 말합니다.

권범철 화백 kartoon@hani.co.kr
권범철 화백 kartoon@hani.co.kr

한반도 상황에 정통한 전문가들은 북한과 미국의 관계를 ‘적대적 공생관계’로 평가하기도 합니다. 대치상황이 양국 최고권력자의 이익에 부합하는 방향이라는거죠.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은 10일 한 라디오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지금의 위기설이 미국의 국방예산 논의와 맞물려 있다고 분석했습니다. 정 전 장관은 “미국은 10월부터 예산년도가 시작된다. 9월 국회에서 끝을 내야 되는데 8월이면 한참 밀고 당기는 시기”라며 “주한미군, 극동지역, 태평양 사령부의 예산이 깎이지 않도록 한반도가 위험하니 절대 이 부분은 손대지 말라는 메시지를 보내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북한과 미국 최고지도자의 위태로운 ‘말의 전쟁’ 속에서도 국민들은 여전히 차분하게 자리를 지키고 있습니다. 일상화된 위협 속의 평화가 아닌 진정한 평화가 찾아오기를 바라면서 말이죠. 언제쯤 그런날이 올 수 있을까요?

이재호 기자 p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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