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군은 15일 새벽 북한의 탄도미사일 발사에 대응해 곧바로 현무-2 2발을 동해로 발사했다고 밝혔다. 육군 제공
15일 오전 북한의 탄도미사일 시험발사로 한반도 정세가 다시 ‘시계 제로’ 상태로 빨려들고 있다. 북한의 도발과 국제사회의 제재라는 악순환이 끝없이 되풀이되면서, ‘강 대 강’의 대치 국면이 ‘뉴노멀’(새로운 일상·기준)로 굳어지는 모양새다. 핵무장 능력 완성을 향한 북의 질주를 멈추기 위한 국면 전환 노력이 절실하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가 대북 제재 결의 2375호를 만장일치로 채택한 지 사흘 만인 이날 오전 6시57분께 북한은 평양 외곽 순안에서 일본 홋카이도 상공을 지나 북태평양 해상으로 탄도미사일 1발을 발사했다. 합동참모본부는 “(미사일의) 최대고도는 약 770여㎞, 비행거리는 약 3700여㎞로 판단된다”고 밝혔다. 최고고도와 비행거리 등으로 미뤄 지난달 29일 비슷한 궤적을 그리며 일본 상공을 통과했던 중거리탄도미사일(IRBM) ‘화성-12’형(당시 비행거리 2700㎞)일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문재인 대통령은 이날 오전 8시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전체회의를 열어 “북한이 유엔 안보리 결의를 보란 듯이 무시하고 또다시 탄도미사일을 발사했다. 엄중히 규탄하고 분노한다”고 말했다. 문 대통령은 이어 “이런 상황에서는 대화가 불가능하다”며 “북한이 도발해올 경우 조기에 분쇄하고 재기 불능으로 만들 수 있는 힘이 있다”고 강력 경고했다.
이날 북한이 발사한 미사일의 비행거리는 평양에서 괌까지의 거리(약 3400㎞)를 넘어섰다. 북한이 지난달 예고했던
‘괌 포위사격’이 실제 가능하다는 점을 입증한 셈이다. 하지만 데이비드 베넘 미군 태평양사령부 대변인은 이날 성명을 내어
“북미항공우주방위사령부(NORAD)는 북한이 발사한 미사일이 북미와 괌에 위협이 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고 밝혔다. 긴장 국면이 지나치게 고조되는 것을 경계하려는 모양새다.
문 대통령 또한 강력한 대북 경고에도 불구하고 전날 발표한 국제기구를 통한 대북 인도 지원 추진 방침에는 큰 변화가 없다는 뜻을 밝혔다. 문 대통령은 이날 오후 아베 신조 일본 총리와 한 전화통화에서 “원칙적으로 영유아와 임산부를 지원하는 것은 정치적 상황과 무관하게 다뤄야 할 사안”이라고 말했다.
아베 총리의 ‘인도적 대북지원 사업 시기 고려’ 요구에 대한 문 대통령의 이런 답변은, 북의 도발에는 국제사회와 압박 공조를 강화해 강력 대응하면서도 인도 지원은 지속해, 대화를 위한 최소한의 수단은 유지하겠다는 의지가 담긴 것으로 풀이된다. 문 대통령은 이미 전날인 14일 오전 북한의 추가 발사 움직임을 보고받았음에도, 미국 <시엔엔>(CNN) 방송과 한 인터뷰에서 “제재와 압박은 북한을 대화의 길로 이끌어내기 위한 것”이라며 “평화적 해결”을 강조한 바 있다.
렉스 틸러슨 미 국무장관은 이날 성명을 내어 중국과 러시아의 독자적인 대북 압박을 촉구했다. 위협의 수위가 한껏 높아진 상황에서, 당분간 대북 압박 기조를 유지하겠다는 뜻으로 보인다. 하지만 안보리가 당장 대북 추가제재 논의에 나서더라도, 중·러가 반대하는 원유공급 중단 카드를 전면화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틸러슨 장관도 이날 “안보리에서 대북 유류 공급 전면 중단 조처가 나오기는 매우 어려울 게 분명하다”고 말했다.
잇단 압박과 한·미 무력시위에도 북한의 도발이 이어지면서 트럼프 행정부의 선택지는 많지 않아 보인다. 이미 미국 민주당 쪽에선 트럼프 대통령의 대북 정책이 실패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테이블 위에 있다’는 군사적 옵션은 여전히 쓰기 부담스러운 카드다. 협상 역시 북-미가 대화 복귀의 명분에 대한 접점을 찾을 수 있느냐에 달려 있다.
북한은 이른바 ‘국가 핵무력 완성’을 위해 전략 도발을 지속할 뜻임을 분명히 했다. 화성-12형뿐 아니라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과 대륙간탄도미사일(ICBM)급 화성-14형까지 차근차근 완성도를 높여나갈 것이다. 이에 맞서 국제사회는 제재·압박의 수위를 높일 수밖에 없다. 결국 향후 한반도 주변 정세는 고조된 위기 속에 ‘도발-제재’의 악순환을 어떻게 끊어내느냐에 달린 것으로 보인다.
문재인 대통령이 15일 오전 청와대 국가위기관리센터에서 북한 미사일 도발과 관련해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전체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청와대 제공
문 대통령은 오는 18~22일 미국을 방문해 유엔 총회에 참석한다. 문 대통령이 21일로 예정된 총회 연설에서 한반도 위기를 돌파하기 위한 해법을 내놓을 수 있을지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이어 26일엔 10·4 남북 정상선언 10주년 기념식이 예정돼 있다. 이 자리에서 문 대통령이 다시 한번 대북 메시지를 내놓을 가능성이 있다.
문제는 10월 초엔 북한 입장에서 ‘상징적인 날’이 몰려 있다는 점이다. 8일은 김일성 주석 사망 이후 ‘3년 탈상’을 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노동당 총비서에 추대된 지 20주년이다. 9일은 북한의 1차 핵실험 11주년이고, 10일은 노동당 창당 72주년 기념일이다. 12일은 북-미가 평화협정 체결과 수교 직전까지 갔던 북-미 공동코뮈니케 발표 17주년이다. 어떤 식으로든 북이 도발에 나설 개연성이 높아 보이는 이유다.
이 시기를 무난히 넘긴다면, 트럼프 대통령이 한·중·일 방문길에 오르는 11월 초가 한반도 정세의 분기점이 될 수도 있다. 위기의 정점에서 ‘최대의 관여’로 가는 문이 열릴 수 있기 때문이다. 오코노기 마사오 일본 게이오대 명예교수는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북한은 2년 가까이 긴장을 높여 양보를 얻어내려는 정책을 펼쳐왔다. 이 상황에서 대화는 어렵다. 서로 일단 멈춰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북한이 핵무장을 완성했다고 선언하고 핵을 동결할 뜻이 있다는 성명을 어느 순간 낼 수 있다. 이 경우 대화 국면으로 바뀔 수 있다”고 지적했다. 치밀한 위기관리와 함께 대화 국면으로 갑작스레 정세가 전환될 때를 미리 대비해야 한다는 뜻이다.
정인환 정유경 기자, 워싱턴 도쿄/이용인 조기원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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