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19 공동성명 12주년에 즈음해 미국 워싱턴 카네기 국제평화재단에서 열린 토론회에서 협상주역 가운데 한명인 크리스토퍼 힐 전 미국 국무부 동아시아태평양 담당 차관보가 18일 키노트스피치를 하고 있다(유투브캡쳐)
“협상과 외교적 노력을 두려워하지 말아야 한다.”
2005년 9·19 공동성명의 주역 가운데 한명인 크리스토퍼 힐 전 미국 국무부 동아시아태평양 담당 차관보는 18일(미국시각) 미국 워싱턴 카네기 국제평화재단에서 열린 토론회에서 이렇게 말했다. 9·19 공동성명은 △북한의 비핵화 △한반도 평화체제 수립 △북-미·북-일 관계 개선 △대북 에너지·경제 지원 등의 내용을 뼈대로 하고 있어, 북핵 해법에 가장 근접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9·19 공동성명 12주년에 즈음해 열린 이날 토론회에서 힐 전 차관보는 먼저 북핵 문제를 보는 두가지 극단적인 시각을 비판했다. 먼저 “북한과의 협상은 허상이며, 북한은 절대 핵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란 강경론에 대해 힐 전 차관보는 “역설적으로 이런 주장이 핵을 포기할 필요가 없다는 북한 강경파의 주장을 뒷받침한다”고 지적했다.
“북한의 핵을 용인하고, 현 상태에서 봉쇄하자”는 주장에 대해서도 그는 “북핵 문제는 우리가 알고 있는 것보다 훨씬 심각한 수준”이라고 반박했다. 그는 “최근 몇주에 걸쳐 북이 보여준 것은 북한의 미사일이 더이상 실험용이 아니라 양산 체제에 들어갔다는 점”이라며 “고체연료로켓이나 다단로켓 등 전문가들이 불가능할 것으로 봤던 기술적 진보를 이뤄낸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더이상 방치해선 안 된다는 얘기다.
일부에서 거론하는 대북 선제타격론에 대해 힐 전 차관보는 “선제타격만으론 북한의 핵무기를 모두 제거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더욱 중요한 것은 동맹인 한국이 이를 받아들일 수 있느냐의 문제”라며 “(수도권) 2천만 인구가 북한 방사포 사정권에 있는데, 한국이 그 위험을 감수할 수 있느냐가 중요하다. 선제타격은 가장 어려운 선택”이라고 덧붙였다.
‘중국 역할론’에 대해서도 그는 “(북핵 문제를 푸는 데) 중국을 하청업체 취급 해서도 안 되고, 북핵 문제를 중국에 외주(아웃소싱)를 줄 수도 없다”며 “미국과 중국이 각각 원하는 게 무엇인지에 대한 진지한 대화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한밤중의 트위터 메시지나 공개된 (정상 간) 전화통화는 충분하지 않다. 미-중이 서로를 이해하기 위한 깊이있는 대화를 위한 진지한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힐 전 차관보는 이어 “무엇보다 대화의 가능성을 열어놓는 게 중요하다. 북핵 문제는 궁극적으로 협상으로 풀 수밖에 없다. 언젠가 북한과 협상 테이블을 사이에 두고 마주 앉을 때를 대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힐 전 차관보는 북핵 6자회담 미국 쪽 수석대표와 주한 미국대사 등을 지냈다.
정인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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