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명균 통일부 장관이 21일 오전 서울 세종로 정부서울청사에서 12개 부처 차관과 민간위원 5명이 참석한 가운데 열린 남북교류협력추진협의회(교추협)에서 개회하고 있다. 2017.9.21 연합뉴스
북한의 핵·미사일 도발 속에 끊겼던 국제기구를 통한 대북 인도지원이 18개월여 만에 재개된다. 정부는 21일 북한 영유아와 임산부 등 취약계층에 대한 인도지원 사업을 하는 국제기구에 800만달러를 지원하기로 결정했다. 지원 시기는 확정하지 않았지만, 극한 대치 속에 완전히 끊겼던 남북관계를 잇는 가는 줄 하나가 맺어진 셈이다.
정부는 이날 오전 정부서울청사에서 조명균 통일부 장관 주재로 제286차 남북교류협력추진협의회(교추협)를 열어 유니세프와 세계식량계획 등 대북 인도지원 사업을 하는 유엔 산하 국제기구의 요청에 따라 모두 800만달러를 지원하기로 결정했다. 교추협은 남북교류·협력에 관한 정책을 협의·조정하는 기구로, 이날 회의에는 기획재정부·외교부·법무부 등 8개 유관 부처 차관과 민간위원 2명이 참석했다.
조 장관은 회의에 앞서 “정부는 북한 주민, 특히 영유아·임산부 등 취약계층의 열악한 상황을 고려해 인도적 지원은 정치적 상황과 분리해 추진한다는 방침을 일관되게 밝혀왔다”며 “북한 정권에 대한 제재와 북한 주민에 대한 인도지원은 분리 대처해 나간다는 것이 국제사회가 공유하는 보편적 원칙이자 가치”라고 말했다.
정부가 지원하기로 한 사업은 탁아시설·소아병원·임산부 등을 대상으로 한 세계식량계획의 영양지원사업(450만달러)과 어린이·임산부를 대상으로 유니세프가 진행하고 있는 백신 접종, 설사·호흡기감염병 등에 대한 필수의약품 지원, 영양실조 치료제 사업(350만달러) 등이다.
북한에 상주하는 6개 유엔 기구가 지난 3월 공동으로 펴낸 2017년도 사업계획서를 보면, 북한 주민 2490만명 가운데 식량 부족과 영양 결핍 등으로 지원이 필요한 인구는 약 1800만명에 이른다. 또 1천명당 25명(남한 3명)에 이르는 북한의 5살 이하 어린이 사망 원인 가운데 22%가 의약품만 있으면 치료가 가능한 설사와 급성호흡기질환이다. 정부가 대북 인도지원의 ‘시급성’을 언급한 이유다.
다만 구체적인 지원 시기와 규모는 여론 추이를 봐가며 결정할 것으로 보인다. 통일부 당국자는 “실제 지원 시기와 규모는 남북관계 상황 등 전반적인 여건을 종합적으로 고려하면서 추진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이 당국자는 ‘연내에 지원이 시작될 수 있는지’에 대해서도 “시기를 못박을 수 없다”고 했다. 북한의 핵·미사일 도발이 지속되고 있는 상황에서 대북 인도지원을 재개하는 것에 대한 일부의 비판을 의식했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국제기구를 통한 대북지원은 2015년 12월 유엔인구기금(UNFPA)의 ‘사회경제인구 및 건강조사 사업’에 80만달러를 지원한 이후 이듬해 1월 북한의 4차 핵실험으로 중단됐다.
앞서 카린 훌쇼프 유니세프 동아시아·태평양 지역사무소장은 지난 20일 성명을 내어 “어린이는 어린이일 뿐 정치와는 무관하다”며 “북한 어린이들이 직면한 어려움은 지극히 현실적이며, 이들에 대한 지원은 매우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정인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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