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 “정부 상황관리 중요, 북-미에 평화메시지 보내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북한 완전 파괴” 발언으로 촉발된 북-미 간 ‘말의 전쟁’이 위험 수위를 넘나들고 있다. 상대방 최고 지도자를 겨냥한 거친 막말이 행동으로 이어질 조짐을 보이면서, 한반도를 둘러싼 군사적 긴장감도 정점으로 향하고 있다.
리용호 북한 외무상은 23일 유엔 총회 기조연설에서 트럼프 대통령의 ‘완전 파괴’ 발언에 대해 “전체 미국 땅이 우리 로케트의 방문을 더더욱 피할 수 없게” 만들었다고 맹비난했다. 그는 이어 “우리 공화국에 대한 군사적 공격 기미가 보일 때에는 가차없는 선제행동으로 예방조치를 취할 것”이라며 “자살공격을 시작한 것은 다름 아닌 트럼프”라고 주장했다.
리 외상의 발언은 지난 19일 트럼프 대통령이 유엔 총회 연설에서 “미국과 동맹을 방어해야 한다면 북한을 완전히 파괴하는 것 외에 다른 선택이 없을 것”이란 위협에 대한 맞대응이자,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이 22일 성명을 통해 경고한 “사상 최고의 초강경 대응조치”를 재확인한 것이다. 앞서 리 외무상은 김 위원장의 ‘초강경 대응조치’에 대해 “태평양 해상에서 역대급 수소탄 시험을 할 수 있다”고 언급한 바 있다. 북한은 김 위원장의 성명 발표 이후 대규모 군중집회를 잇달아 열어 반미 열기를 높이고 있다.
북-미 간 갈등은 ‘말’의 영역에서 ‘행동’의 영역으로 넘어갈 조짐마저 보이고 있다. 미국은 23일 밤 이른바 ‘죽음의 백조’로 불리는 B-1B 공중폭격기와 F-15C 전투기를 사상 처음으로 북한 쪽 동해 공역까지 출동시키는 등 군사적 무력시위 수위를 한껏 끌어올렸다. 전문가들이 “작은 불씨가 걷잡을 수 없는 사태를 촉발할 수 있다. 북-미 양쪽에 ‘평화적 해결’을 강조하며 상황 관리에 만전을 기해야 한다”고 지적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조성렬 국가안보전략연구원 책임연구위원은 “미국으로선 실제 군사적 행동을 빼고 나면 무력시위 외에 쓸 카드가 많이 남지 않았지만, 북한은 군사적 위협의 수위를 높일 카드가 아직 여러 가지 남아 있다”고 짚었다. 실제 북한은 김락겸 전략군사령관이 지난달 10일 공언했던 중거리탄도미사일(IRBM) ‘화성-12’형을 동원한 ‘괌도 포위사격’을 실행에 옮기지 않았다. 아직 완성 단계가 아닌 것으로 평가되는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 역시 실전 배치에 앞서 추가 시험발사에 나설 가능성이 있다.
여기에 그간 고각발사 시험만 했던 대륙간탄도미사일(ICBM)급인 ‘화성-14’형을 정상각도로 발사해 위력을 과시할 수도 있다. 조 위원은 “북한이 ‘화성-14’형을 추가 시험발사한다면, 미 본토보다는 태평양사령부가 있는 하와이나 북미항공우주방위사령부(NORAD) 지역통제센터가 있는 알래스카 등지를 겨냥할 수 있는 능력이 있음을 과시하려 들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럴 경우 북이 ‘국가 핵무력 완성’을 전격 선언하고, 북-미 직접 담판에 본격 나설 가능성도 점쳐진다.
미국 <워싱턴 포스트>는 22일치 사설에서 트럼프 대통령을 겨냥해 “미치광이 노릇은 김 위원장에게 맡기라”고 조언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과도한 언사가 상황을 더욱 악화시키고 있다는 얘기다. 그럼에도 트럼프 대통령은 리 외상의 연설 직후 “그(리 외상)가 리틀 로켓맨(김 위원장)의 주장을 되풀이한다면, 그들은 조만간 (주변에서) 사라지게 될 것”이라며 ‘트위터 도발’을 이어갔다.
정인환 기자 inhw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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