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14일 오후 베이징 인민대회당 북대청에서 열린 공식환영식에서 의장대를 사열하고 있다. 연합뉴스
한-중 두 나라는 공통의 위험과 마주하고 있다. 동북아 정세를 송두리째 빨아들이는 북핵이란 ‘블랙홀’이다. 위험에 대한 인식 공유는 부차적인 갈등을 뛰어 넘는 공동의 대응을 가능케한다. 문재인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 배치로 불거진 갈등을 봉합하고, △전쟁불용 △비핵화 △북핵 평화적 해결 △남북관계 개선 통한 한반도 문제 해결 등 ‘한반도 평화와 안정을 위한 4대 원칙’에 합의한 것도 이런 맥락에서다.
‘4대 원칙’은 중국이 기존 정책 방향과 다르지 않다. 중국은 그간 이른바 ‘3대 견지’(비핵화, 평화·안정, 대화와 협상을 통한 해결)를 한반도 정책의 기조로 밝혀왔다. 김연철 인제대 교수는 “한-중 양국은 지난달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동아시아 순방 때도 북핵 문제의 평화적 해법을 강조한 바 있다”며 “두 정상이 공통의 전략적 이해를 확인하고, 이번 정상회담을 통해 이를 재차 분명히 한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발 ‘전쟁불사론’은 실행 가능성을 떠나 지역 정세는 물론 북한의 태도에도 현실적으로 영향을 끼치고 있다. 두 정상이 ‘한반도에서 전쟁은 절대 용납 못한다’고 새삼 못박은 것도 이 때문이다. 이희옥 성균중국연구소 소장은 “이번 정상회담은 북핵 문제에 초점이 맞춰진 ‘주제 중심적’으로 진행된 것으로 보인다”며 “(북핵으로 인한) 한반도 문제를 푸는데 시간이 많지 않고, 적극적인 돌파가 필요하다는데 두 정상이 인식을 같이한 것”이라고 짚었다.
남북 관계 개선을 통한 한반도 문제 해결 역시 중국의 전통적 입장이다. 격해진 동북아 정세 속에 북-중관계마저 삐걱이고 있다. 북핵 문제를 풀기 위한 대화의 ‘입구’로 들어가기 위한 추동력을 만들내기 위해서라도 남북관계 개선이 더욱 중요해졌다.
‘시진핑 2기’에 들어선 중국 역시 북핵 문제가 옥죄고 있는 지역 질서에서 벗어나야 할 정세·외교·경제적 이유가 적지 않다. 수교 25주년만에 한-중관계를 최악으로 몰아갔던 ‘사드 갈등’ 역시 따지고 보면 북핵의 ‘부산물’이다. 동북아 세력균형을 파괴하고, 대중국 억제의 명분이 되고, 군비경쟁을 촉발시킬 위험을 내포한 것도 북핵 문제다. 한국과 중국의 인식이 같을 수밖에 없는 이유다.
청와대는 핵심 관계자는 일단 한-중 정상회담에 대해 “양국관계가 새로운 출발로 가는 좋은 신호로 보인다“고 평가했다. 이 관계자는 두 정상이 합의한 '한반도 평화와 안정을 위한 4대 원칙'이 대북 군사옵션까지 언급해온 미국과의 공조를 깨는 게 아니냐는 우려와 관련해서도 “군사옵션은 외교적·평화적 수단을 뒷받침하기 위한 것이다. 미국도 평화적·외교적 해결이 공식입장이고, 중국과의 4대 원칙 합의가 미국 입장과 다르지 않은 것”이라며 “이런 문제는 한미 간 공조가 중요한 시점에서 충분하게 서로 공조하고 공유했을 것”이라고 답했다.
초점은 ‘국가 핵무력 완성’을 정치적으로 선언한 북한이 언제, 어떤 식으로 ‘방향’을 트느냐로 모아진다. 가능성은 두가지다. 북한이 현 수준에서 ‘도발’을 멈춘 채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이 내년 신년사에서 ‘핵무력 완성’을 재차 선언하면서 평화공세로 돌아설 수 있다. 어렵게 조성된 대화국면을 국제사회가 마다할 이유는 없다.
반면 북한이 ‘국가 핵무력의 질량적 강화’를 내세워 올해 안에 핵·미사일 추가시험을 감행한 뒤 대화를 제의할 수도 있다. 이럴 경우, 당장 대화의 물꼬를 트기는 쉽지 않다. 내년 2월 평창겨울올림픽을 한반도에 짙게 드리운 전쟁의 먹구름을 걷어내는 계기로 삼으려는 문 대통령의 계획도 틀어질 가능성이 높아진다. 2017년의 남은 보름여, 철저한 상황관리가 절실한 이유다.
정인환 노지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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