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성공단 입주기업과 협력업체 임직원들이 지난해 3월16일 오후 개성공단 폐쇄로 인한 피해 보상과 개성공단 재가동을 촉구하며 경기도 파주시 임진각에서 통일대교 남단까지 ‘개성공단 평화 대행진’을 하고 있다. 이들은 ‘개성공단 피해보상 특별법 제정을 위한 청원운동’에 참여해줄 것을 시민들에게 호소했다. 파주/김태형 기자 xogud555@hani.co.kr
통일부 혁신위, 전면중단 과정 공개
박 지시 뒤 통일부 철수대책안 마련
김관진 당시 안보실장은 ‘세부계획’
NSC 상임위, 중단결정 권한 없는데
절차적 정당성 포장하려 회의 열어
당시 여권선 ‘최순실 개입설’ 제기
‘임금 핵·미사일 개발 전용’ 주장은
NSC·관계기관 협의도 없이 발표
탈북자 진술 바탕…직접 증거 없어
박 지시 뒤 통일부 철수대책안 마련
김관진 당시 안보실장은 ‘세부계획’
NSC 상임위, 중단결정 권한 없는데
절차적 정당성 포장하려 회의 열어
당시 여권선 ‘최순실 개입설’ 제기
‘임금 핵·미사일 개발 전용’ 주장은
NSC·관계기관 협의도 없이 발표
탈북자 진술 바탕…직접 증거 없어
통일부 정책혁신위원회(위원장 김종수·이하 혁신위)가 28일 밝힌 개성공단 전면 중단 결정 과정은 충격적이다. 정해진 법 절차를 무시한 채 박근혜 전 대통령의 ‘말’ 한마디에 ‘남북화합의 옥동자’인 개성공단이 하루아침에 문을 닫게 됐기 때문이다. 혁신위는 “전면 중단 결정의 진실이 밝혀져야 재개의 실마리도 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 박근혜 전 대통령 구두 지시 한마디로 ‘철수’ 2016년 1월6일 북한이 4차 핵실험을 실시한 직후에도 통일부는 “개성공단 폐쇄나 철수는 검토하고 있지 않다”고 공언했다. 혁신위는 “(지난해) 2월7일 북한의 장거리미사일 발사 직후 열린 국가안전보장회의(NSC·엔에스시)에서도 개성공단 전면 중단을 결정한 바는 없다”고 밝혔다. 상황이 급변한 것은 이튿날 오전부터다. 김규현 당시 청와대 외교안보수석이 홍용표 당시 통일부 장관에게 “개성공단을 철수하라”는 박 전 대통령의 구두 지시를 통보했다. 오후엔 김관진 당시 국가안보실장이 회의를 소집해 통일부가 마련한 철수대책안을 기초로 세부계획을 마련했다. 이어 박 전 대통령의 ‘구두 지시’ 이틀 뒤인 2월10일 엔에스시 상임위원회에서 개성공단 전면 중단을 협의했다. 사후적으로 절차적 정당성을 부여하기 위한 요식행위였다. 하지만 혁신위 관계자는 “엔에스시 상임위원회는 헌법과 법률에 따르면 개성공단 중단을 결정할 기관이 전혀 아니다. 자문기구에 불과하다”며 “결국 (박 전 대통령의 행위는) 헌법과 법률을 뛰어넘는 초법적 행위”라고 밝혔다. 혁신위는 그러나 “대통령이 누구와 어떤 절차로 (철수) 결정을 내렸는지 확인되지 않았다”며 “이는 다른 절차를 통해 규명돼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혁신위도 진실에 접근하지 못한 만큼, 검찰 수사 등 추가 조처가 필요하다는 뜻으로 읽힌다. 당시 여권 일각에선 ‘최순실 개입설’이 제기됐었다.
■ 근거없는 “개성공단 임금 전용” 주장 입주기업 쪽과 사전 협의나 예고도 없이 2016년 2월10일 개성공단 전면 가동 중단을 발표하면서, 정부는 주요 근거로 개성공단 노동자의 임금이 북한의 핵·미사일 개발 자금으로 전용되고 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통일부는 북한의 4차 핵실험 이후만 해도 “개성공단 임금의 핵개발 전용 연관성은 없다”는 입장을 유지했다.
개성공단 전면 중단 발표 전날인 2월9일 통일부가 작성한 정부 성명 초안에도 관련 내용은 없었다. 하지만 2월10일 엔에스시 상임위 이후 정부 성명문 대통령 서면보고 과정에서 전용 주장이 최종 포함됐다. 근거도, 관계기관의 협의도 거치지 않은 채였다. 개성공단 자금 전용 주장의 근거자료로 사용된 정보기관의 문건이 통일부에 전달된 것은 사흘 뒤인 2월13일이다. 주로 탈북민의 진술 및 정황 등에 근거해 작성된 이 문건에도 ‘직접적인 증거를 확인하지 못했다’고 적혀 있을 정도로 부실한 것이었다.
■ “남북관계도 법을 지켜야” 혁신위는 ‘정책혁신 의견서’에서 “개성공단 전면 중단 조치는 헌법·남북관계발전법·남북교류협력법·행정절차법 등에 근거한 행정행위가 아니라, 이른바 통치행위 방식으로 이뤄졌다”며 “남북관계도 법치의 예외가 될 수 없고, 법을 뛰어넘는 통치행위는 바람직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2008년 7월 관광객 피격 사건 이후 결정된 금강산 관광 중단과 2010년 3월 천안함 사건 이후 남북 교역을 전면 중단시킨 5·24 조치 역시 법·제도를 뛰어넘는 ‘통치행위’였다. 개성공단 전면 중단 결정 이후 인도적 지원을 포함한 남북 민간교류가 전면 통제된 것도 같은 이유에서다.
김종수 혁신위원장은 “민간 교류협력은 민간의 자율성을 보장하고, 인도적 대북지원은 정치·군사적 상황과 별개로 인도주의의 원칙에 따라 추진해야 한다”며 “정치적 당파성에 휘둘리지 않고 국민적 합의를 바탕으로 법률에 근거해 일관성 있게 통일정책이 이뤄지기 위해선 관련 법제의 전반적 정비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정인환 기자 inhw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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