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이 남북정상회담을 앞두고 23일 0시를 기해 최전방 지역의 대북 확성기 방송을 전격 중단했다. 2004년 6월16일 경기 파주시 임진강변 인근 최전방초소에서 대북심리전단 소속 1중대 장병들이 2만4천W급 대북방송용 대형 확성기를 해체하고 있다. <한겨레> 자료사진
2018 남북정상회담을 나흘 앞둔 23일 군 당국이 군사분계선 일대 최전방 지역에서 대북 확성기 방송을 중단했다. 북한도 이날부터 대남 방송용 확성기를 순차적으로 끄며 호응하기 시작했다. 27일 정상회담 당일에는 한-미 연합훈련도 이뤄지지 않을 전망이다. 북한이 20일 당 중앙위 전원회의를 계기로 ‘풍계리 핵실험장 폐기’ 및 ‘핵실험과 대륙간탄도미사일 시험발사 중지’ 등 선제적인 신뢰구축 조처를 취한 뒤 남과 북 양쪽에서 잇따라 우호적 선제조처로 호응하는 모양새다.
국방부는 이날 발표문을 내어 “국방부는 2018 남북정상회담을 계기로 남북 간 군사적 긴장완화 및 평화로운 회담 분위기 조성을 위해, 오늘(23일) 0시를 기해 군사분계선 일대에서의 대북 확성기 방송을 중단했다”고 밝혔다. 국방부는 이어 “이번 조처가 남북 간 상호비방과 선전활동을 중단하고 ‘평화, 새로운 시작’을 만들어 나가는 성과로 이어지기를 기대한다”고 덧붙였다.
북한도 이에 화답한 듯 확성기를 활용한 대남 방송을 중단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북한도 남쪽이 대북 확성기 방송을 중단한 23일부터 군사분계선 일대에서 확성기 방송을 단계적으로 끄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는 게 우리 국방부의 설명이다. 국방부 관계자는 “(북한의 대남 확성기 방송이) 상당 부분 줄어든 것이 맞다”고 밝혔다.
국방부의 대북 확성기 방송 중단 조처는 박근혜 정부 때인 2016년 1월 북한의 4차 핵실험 대응 조처로 확성기 방송을 재개한 지 2년3개월 만이다. 대북 확성기 방송은 라디오 FM ‘자유의소리’ 방송을 최전방 지역에 송출하는 대북 심리전의 수단으로, 모두 40여곳에서 방송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대북 확성기 방송 중단 조처는 22일 송영무 국방부 장관의 결정에 따라 유관부처 협의를 거치고 문재인 대통령한테 보고됐다고 국방부는 설명했다. 북쪽에는 사전 통보하지 않았다. 분단 이래 남과 북이 사전 합의 없이 선제적으로 심리전 방송을 중단하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국방부 당국자는 “이번이 처음인 것으로 안다”며 “남북정상회담이 우리 쪽에서 열리기 때문에 (남북 간 군사적) 긴장완화 부분을 고려해 (조처)하게 됐다”고 말했다.
남북이 서로를 향한 선전 방송을 중단하는 것은 2004년 6월 남북 장성급회담에서 채택한 ‘서해해상에서 우발적 충돌 방지와 군사분계선 지역에서의 선전활동 중지 및 선전수단 제거에 관한 합의서’(6·4합의)의 복원을 향한 첫걸음이라는 의미가 있다. 남북은 당시 6월15일부터 군사분계선 지역에서 모든 선전 활동을 중지하는 한편, 같은 해 8월15일까지 모든 선전수단을 제거하며 선전활동을 재개하지 않는 데 합의했다. 남쪽은 당시 군사분계선 인근 대북 확성기와 대형 전광판을 철수했다. 이번에 남북 군 당국이 확성기 선전 방송을 중단하면서, 남북정상회담 합의와 맞물려 확성기 철거 등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2004년 확성기 철거로 중단된 대북 선전 방송은 2010년 천안함 사건 이후 이명박 정부가 취한 대북 제재인 ‘5·24 조치’의 일환으로 군이 ‘자유의 소리’ 방송을 재개해 다시 시작됐다. 5년 뒤인 2015년 8월 비무장지대(DMZ)에서 남쪽 군 장병 2명이 북쪽에서 매설한 목함지뢰를 밟아 크게 다치는 사건이 발생하자, 군은 최전방 11개 지역에서 대북 확성기 방송을 확대 시행했다. 이어진 남북 고위당국자 접촉에서 남북은 대북 확성기 방송 중단 등을 포함한 ‘8·25 합의’를 채택해 다시 방송을 중단했다.
앞서 청와대가 ‘획기적 군사 긴장완화를 포함한 항구적 평화 정착’을 4·27 남북정상회담의 3대 의제 중 하나로 밝힌 만큼 이번 군 당국의 조처는 남북 정상이 군사적 긴장완화 방안을 논의하는 데 윤활유 구실을 할 전망이다.
더구나 이날 시작된 키리졸브(KR)뿐 아니라 이달 말 종료될 계획이던 독수리(FE) 훈련도 정상회담 전날인 26일께 마무리될 예정으로 전해졌다. 정상회담 당일인 27일에는 한-미 연합군사훈련도 잠시 숨고르기에 들어가는 형국이다. 군 쪽에서는 한-미 연합훈련 일정은 남북정상회담과 무관하며, 27일(금요일) 훈련이 없다고 해도 자체 일정에 따른 것이라 예년과 다를 바가 없다고 설명한다. 하지만 어떤 명분으로든 정상회담 당일 한-미 양국 군의 군사훈련 중단이라는 우호적 조처는 회담에 긍정적 영향을 끼치리라 예상된다. 김지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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