볼턴 ‘빅딜, 빅뱅 방식’ 첫 공개
동결-사찰-폐기 통상절차와 달리
핵폐기부터 역순으로 진행 주장
북-미 양쪽 접근법 크게 다르지만
비핵화-번영 최종목표 공감
“서로 원하는 것 맞춰가는 교환될 것”
존 볼턴 미국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이 13일(현지시각) <에이비시>(ABC) 방송 인터뷰에서 밝힌 ‘북한 비핵화’ 방법론의 핵심은 ‘완전하고도 빠른 비핵화+핵무기의 미국 반입·처리’다. 그는 ‘영구적이고 검증 가능하며 되돌릴 수 없는 비핵화’(PVID)가 바로 “모든 핵무기를 없애고, 그것들을 해체해서 테네시주 오크리지로 가져가는 것을 의미한다”고 밝혔다.
볼턴의 ‘핵무기의 오크리지 이전’ 주장을 국내외 많은 언론이 북한이 거부해온 ‘리비아식 해법’과 동일시하지만, 실상은 다르다. 오크리지 핵시설은 2003~2006년 리비아 핵능력 제거 과정에서 원심분리기와 고농축 우라늄 16㎏을 처리했지만, 1990년대 초반 옛 소련 붕괴에 따른 우크라이나·벨라루스·카자흐스탄의 핵무기 폐기 때도 핵무기 해체를 맡은 곳이다.
문제는 ‘북한 핵무기의 오크리지 이전’ 주장 그 자체가 아니다. ‘완전한 비핵화’ 과정에서 핵무기 이전·폐기의 시기와 순서, 미국의 상응 조처에 따라 북한의 반응이 다를 수 있어서다. 볼턴은 인터뷰에서 “북한이 비핵화를 빨리 할수록, 그들의 원하는 것도 빨리 얻을 수 있다”며 “북한의 전략적 결단에 달린 문제”라고 말했다.
이와 관련해 북-미 협상 과정에 밝은 외교안보 고위 인사는 “볼턴의 주장은 북한의 핵시설·핵물질에 대한 사찰·검증에 앞서 미국이 핵심 안보 위협 요인으로 간주해온 북한의 핵탄두와 대륙간탄도미사일을 먼저 해체·폐기하자는 주장으로 읽힌다”고 짚었다. 이 인사는 “미국 쪽이 북한과 물밑 협상 과정에서 제기해온 이른바 ‘빅 딜, 빅 뱅’ 방식을 볼턴이 처음으로 공개적으로 내비친 셈”이라고 덧붙였다. ‘동결→신고→사찰·검증→핵무기 폐기’로 이어지는 통상적인 핵폐기 절차를 역순으로 진행하자는 주장이라는 것이다.
이는 북한의 전통적 접근법과 간극이 매우 크다. 북한은 “우리가 주장하는 비핵화는 조선반도 전역의 비핵화, 남핵폐기와 남조선 주변 비핵화가 포함돼 있다”(2016년 7월6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정부 대변인 성명)고 밝혀왔다. 무엇보다 북-미 정상회담 준비가 본격화한 이후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밝힌 해법과 거리가 크다. 김 위원장은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다롄회담’(7~8일)에서 “조선에 대한 적대시 정책과 안보 위협을 없애기만 한다면, 조선은 핵을 가질 필요가 없다”며, △북-미 대화를 통한 상호신뢰 △단계적·동보적 조처 △정치적 해결 프로세스 전면 추진 등의 ‘방법론’을 제시했다.
김 위원장은 문재인 대통령과 합의·발표한 ‘4·27 판문점 선언’에서 “완전한 비핵화”와 “핵 없는 한반도”를 다짐하면서도, 이를 한반도에서 “정전체제 종식”과 “항구적이며 공고한 평화체제 구축”(4조)의 세부 항목(4항)으로 제시했다. ‘포괄적·상호적 접근법’이다. 북쪽은 2016년 7월 ‘정부 대변인 성명’에서 ①남한 내 미국 핵무기 공개 ②남한 내 미국 핵무기·기지 철폐·검증 ③한반도와 주변에 미국의 핵전략자산 전개 금지 ④북한에 핵무기를 사용하지 않는다는 약속 ⑤미군 철수 ‘선포’ 등 요구안을 5개로 압축·제시했다. 이는 북쪽이 최근 미국과 사전 접촉 때 제시한 것으로 전해진 △미국 핵 전략자산 한국에서 철수 △한-미 연합훈련 때 핵 전략자산 전개 중지 △재래식·핵무기로 공격하지 않는다는 보장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전환 △북한과 미국의 수교 등의 ‘5대 요구 사항’(<한겨레> 4월13일치 1면 참조)으로 조정·진화했다.
겉으론 간극이 크지만, 북-미 정상회담까지 한달 가까운 협상 시한이 남은 만큼 미리 비관할 이유는 없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김연철 통일연구원장은 “북-미가 ‘비핵화’와 ‘(평화와) 번영’이라는 최종 목표에 상당한 공감을 이룬 상황”이라며 “문제는 서로 원하는 것을 짜맞추는 교환 방식”이라고 짚었다. 전직 정부 고위 관계자는 “북한의 빠르고 완전한 비핵화를 원한다면 미국도 그에 상응할 전략적 결단을 해야 성과가 있을 것”이라고 주문했다. “트럼프 대통령만큼이나 김정은 위원장도 속도를 내고 싶어 한다. 비핵화를 빨리 진척시키려고 (북-미) 정상회담장, 또는 직후에 핵무기 개수나 시설, 대륙간탄도미사일 목록 등을 공개할 가능성도 있다”(이종석 전 통일부 장관)는 낙관적 전망은 이런 맥락에서 나오는 것이다.
이제훈 선임기자 nomad@hani.co.kr[관련 영상] 한겨레TV | 냉전해체 프로젝트 ‘이구동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