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오른쪽부터), 강경화 외교부 장관, 고노 다로 일본 외무상이 14일 오전 서울 종로구 외교부 청사에서 한미일 외교장관 공동기자회견을 하고 있다.이종근 기자 root2@hani.co.kr
‘6·12 싱가포르 북-미 정상회담’(6·12 회담) 결과를 공유하고, 북-미 합의 이행에 필요한 관련국 협력 방안을 논의하려고 동북아에 온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은 14일 종일 분주했다. 6·12 회담 이후 미국의 전략과 행보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복심’으로 불리는 폼페이오 장관의 ‘말’뿐만 아니라 ‘동선’을 함께 살펴야 오롯이 드러난다.
13일 오후 한국에 온 폼페이오 장관은 6·12 회담이 마련한 새로운 북-미 관계 수립의 역사적 기회를 강조하며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에 대한 ‘신뢰’를 드러냈다. 아울러 미국이 설정한 ‘비핵화 시한’을 제시했다. 북-미 관계 재설정 의지와 대북 신뢰 강조, 신속한 비핵화 촉구다. 비핵화만 압박하던 이전과 180도 달라졌다. 6·12 회담이 낳은 새로운 대북 태도다.
예컨대 폼페이오 장관은 14일 한-미-일 외교장관 회담 뒤 기자회견에서, 6·12 회담이 “양국 관계를 근본적으로 재설정할 거대한 기회”이자 “역사적으로 미-북 관계에 큰 전환점”이라고 한껏 의미를 부여했다. 그는 이에 앞서 “(북한과 협상한) 모든 것이 최종문서(공동성명)에 드러나 있지는 않다”고 전제하고는, “2년 반 안에 ‘중대한 비핵화’가 달성되기를 희망한다. 그 일을 할 수 있다는 데 희망적”이라고 밝힌 바 있다.(13일 저녁 서울 힐튼호텔 미국 기자 간담회) 2020년까지인 트럼프 대통령의 첫 임기 종료 전에 ‘북한 비핵화’를 사실상 마무리하고 싶고, 북쪽과 아직 공개하지 않은 많은 이야기를 했다는 뜻이다.
그러고는 14일 오전 한-미-일 외교장관 공동회견에서 “김정은 위원장이 비핵화를 마칠 타이밍의 시급성을 알고, 비핵화를 빨리 해야 함을 이해하는 것으로 우리는 믿는다”고 강조했다. 다만 일방적 촉구는 아니다. 그는 “우리는 국제사회에 완전히 편입된 북한의 모습을 그리고 있고, 김 위원장은 싱가포르에서 이런 비전을 공유함을 시사했다”고 전제하고는, “김 위원장이 이를 이루기 위해 다음 단계 (비핵화) 조처를 취하기를 고대한다”고 말했다. 이어 “미국은 역사의 새 장을 열 준비가 돼 있다”고 강조했다. ‘6·12 싱가포르 공동성명’에 명시된 “상호 신뢰 구축이 추동하는 비핵화”라는 문구의 정신에 충실한 언급이다.
폼페이오 장관은 13일 간담회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언급한 ‘한-미 연합군사훈련 중단’과 관련해 “대통령의 의도는 북한 비핵화와 관련해 생산적인 대화를 할 기회를 얻기 위한 차원”이라고 설명했다. 북한의 비핵화를 촉진할 미국 쪽의 ‘신뢰 구축 조처’라는 얘기다. 하지만 그는 14일 한-미-일 외교장관 회견에서는 이 문제를 입에 올리지 않았다. 한국 보수세력을 자극하지 않는 방식으로 ‘북-미 협상 중 한-미 훈련 중단’ 방침을 기정사실화해 문재인 정부를 측면 지원하려는 행보로 풀이된다.
폼페이오 장관의 동선도 중요한 분석 대상이다. 그는 싱가포르에서 한국으로 바로 왔다. 13~14일 이틀에 걸쳐 문재인 대통령 예방, 한-미 외교장관 회담, 한-미-일 외교장관 회담을 소화했다. 14일 오후엔 베이징으로 가서 시진핑 국가주석을 예방하고 양제츠 외사공작위 판공실 주임 겸 정치국원과 왕이 외교부장을 만났다.
하지만 스스로 “강철처럼 견고한 동맹”이라 묘사한 일본엔 들르지 않았다. 일본은 ‘곁가지’다. 고노 다로 일본 외상이 폼페이오 장관을 만나러 한국으로 찾아왔다. 정통한 외교 소식통은 “3국 외교장관 회담은 일본 쪽의 집요한 요청으로 이뤄진 것”이라며 “이 회의의 숨겨진 목적은 일본의 반발을 억제하는 데 있다”고 짚었다.
실제 고노 외상은 회견에서 “북한이 비핵화 약속을 이행하는 게 중요하다” “미국이 아직 체제보장 조처를 하지 않았다는 점에 주목한다” “일-미 안보공약과 주일미군은 변화하지 않을 것”이라며 한-미 외교장관의 발언과 온도차가 확연히 느껴지는 발언을 골라 했다. 올해 들어 대결과 갈등에서 화해와 평화 쪽으로 급선회한 한반도 정세에서 동떨어진 일본의 이런 시대착오적 행태는 한반도 냉전구조 해체 과정의 또다른 걱정거리다.
이제훈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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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보] ‘세기의 담판’ 6·12 북-미 정상회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