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7일 추락한 ‘마린온’ 헬기가 6월 말 심각한 ‘기체떨림’ 현상 때문에 보름 넘게 정비를 받았고, 그 이후에도 수차례 시험비행을 했으며, 사고는 추가적인 시험비행 과정에서 발생했다는 사실이 확인됐다.
해병대사령부 관계자는 20일 서울 용산구 국방부 청사에서 기자들을 만나 지난 17일 사고 당시 경위를 설명하며 이렇게 밝혔다. 해병대 관계자가 직접 언론에 사고 경위에 관해 설명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 관계자의 말을 들어보면, 사고 원인을 짐작할 만한 대목이 있다. 사고가 난 마린온 헬기는 지난 6월29일께부터 기체가 심하게 떨리기 시작했다. 항공기는 원래 일정한 진동이 있게 마련이지만, 통상적인 진동 수준을 넘는 이상 징후가 나타났다는 게 해병대 쪽 설명이다. 사고 헬기는 지난 1월 운항을 시작했고, 비행시간은 모두 152시간이었다.
지난 7월1∼5일 해병대는 이 기체에 대해 50시간 주기로 하는 정기적인 정비를 실시했고, 그 뒤에는 기체 떨림현상에 대한 정비를 하면서 5∼13일 시험비행을 실시했다고 밝혔다. 이때는 진동을 기준 이하로 경감시킨 뒤 시험비행을 실시했다. 17일 사고는 앞선 시험비행에 이어 추가적인 시험비행 상황에서 발생했다. 해병대 관계자는 “6월 말부터 사고 발생 당일까지 집중적으로 기체를 정비했고, 정비를 마친 뒤 시험비행을 해도 상관없다고 생각해 조종사가 탑승했고, 이륙하다가 사고가 발생했다”고 전했다.
이날 해병대 관계자가 밝힌 사고 당시 구체적인 상황을 살펴보면, 사고 직전까지도 조종사나 정비사 등이 기체에서 이상 징후를 느끼지 못했던 것으로 보인다. 17일 오후 해당 기체는 땅에서 시동 점검을 마친 뒤 4시35분15초에 제자리 비행(호버링·hovering)을 시작했다. 제자리 비행이란 항공기 등이 일정한 고도를 유지한 채 움직이지 않는 상태를 말한다. 기체는 1분 뒤 3.3m 고도까지 올라가서 5분 동안 추가로 제자리 비행을 했다. 이때까지만 하더라도 큰 문제가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해당 기체가 제자리 비행을 하다 4시41분15초에 관제사에게 비행 허가를 받았기 때문이다. 사고 직전 조종사는 “이륙하겠다”고 말했고, 관제사는 “이륙을 허가한다”고 교신했다고 전해진다. 헬기는 10초 정도 더 제자리 비행을 하다 이륙했다. 비행 허가가 떨어지고 23초 뒤 기체는 추락하고 말았다.
해병대 관계자의 말을 들어보면 사고 발생 당시 목격자들은 “‘펑’하는 소리와 함께 화염이 일었다”는 취지로 답변했다고 전해진다. 이 관계자는 “어떤 이유에서 펑 소리가 났는지는 확인을 해봐야 한다”고 말했다. 사고 조사는 모두 6단계인데, 현재 사고조사위원회는 현장 자료수집 및 1차 자료를 분석하는 1∼2단계를 병행하고 있다.
앞으로 해병대는 사고조사위에 감사원 전문가, 유가족과 협의한다는 전제 아래 헬기 제작에 직접 관여한 카이(KAI·한국항공우주산업) 쪽 기술자들을 포함할 계획이다. 2년전 노르웨이에서 발생한 슈퍼 퓨마 헬기 추락 사고 당시 조사에 참여했던 전문가들, 국토교통부 전문가들까지 조사에 참여시키는 방안을 고려하고 있다. 해병대 관계자는 “여기에 유가족이 추천하는 항공 전문가까지 참여시켜서 객관적 결과를 도출할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밝혔다.
한편, 사고 헬기 마린온의 원형인 수리온을 개발할 때 시험비행 등에 관여했다고 알려진 국방기술품질원 전문가들을 사고조사위에 포함할지 여부는 아직 확정되지 않았다. 해병대 관계자는 “국방기술품질원의 사고조사위 참가 여부는 유가족과 협의한 뒤 동의를 구해 결정한다”고 밝혔다. 노지원 기자
zone@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