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오른쪽)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4월27일 판문점 평화의 집에서 첫 정상회담을 하기에 앞서 손을 맞잡고 군사분계선을 넘고 있다. 판문점/사진공동취재단
“남북관계 발전은 북-미 관계 진전의 부수적 효과가 아닙니다. 오히려 남북관계의 발전이야말로 한반도 비핵화를 촉진시키는 동력입니다.”
문재인 대통령의 15일 ‘광복절 73돌 경축사’ 가운데 한반도 정세와 관련해 가장 중요한 메시지가 담긴 두 문장이다. 남북의 ‘9월 평양 정상회담’ 합의 발표 뒤 나온 “남북관계 개선은 북한의 핵 프로그램 문제 해결과 별개로 진전될 수 없다”는 미국 국무부의 논평에 대한 문 대통령의 대답이다. ‘남북관계 발전으로 비핵화를 추동하겠다’는 강력한 의지 표명이다. 문 대통령은 “과거 남북관계가 좋았던 시기에 북핵 위협이 줄어들고 비핵화 합의에까지 이를 수 있던 역사적 경험이 그 사실을 뒷받침한다”고도 강조했다.
문 대통령이 남북관계 발전을 축으로 정세를 돌파하겠다는 강한 의지를 밝히며 △남북 공동번영의 비전과 실천 구상 △가을 평양 정상회담 구상 △동북아협력안보 구상 등 포괄적이고 다차원적인 화두를 던졌다. ‘포괄적 평화 과정의 맥락에서만 (북한) 비핵화를 현실화할 수 있다’는 인식이 깔려 있다.
우선 문 대통령은 “정치적 통일은 멀었더라도, 남북 간에 평화를 정착시키고 자유롭게 오가며 하나의 경제공동체를 이루는 것이 우리에게 진정한 광복”이라며 “평화경제, 경제공동체의 꿈”을 남북 공동번영의 비전으로 제시했다.
주목할 대목은 문 대통령이 “이런 거대 비전을 현실화할 실천 의지를 남북 협력 사업의 구체적 시간표를 제시하는 방식으로 강조한 사실”(이종석 전 통일부 장관)이다. 문 대통령은 4·27 판문점 선언에 명기된 ‘개성 남북공동연락사무소’가 “며칠 후” 개소한다고 밝히면서, “남북이 24시간 365일 소통하는 시대”가 열리는 “매우 뜻깊은 일”이고 “앞으로 상호대표부로 발전하게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아울러 철도·도로 협력 사업과 관련해 “올해 안에 착공식을 갖는 것이 목표”라고 밝혔다. “올해 안 착공식”이라는 시한 설정이 중요하다. 남북 철도·도로 협력은 “끊어진 민족의 혈맥을 잇고 공동번영”(판문점 선언 1조)으로 나아갈 핵심 기반이지만, 유엔·미국의 대북제재에 막혀 공동 조사·연구 수준을 넘지 못하던 터다.
이 문제는 문 대통령이 이날 처음으로 공개 제안한 “동북아 6개국(남북·중국·일본·러시아·몽골)과 미국이 함께하는 ‘동아시아 철도공동체’”와 연결해서 짚어볼 필요가 있다. 문 대통령은, 2차 대전 이후 유럽 평화의 씨앗·기반이라는 평가를 받는 ‘유럽석탄철강공동체’가 “유럽연합의 모체”였음을 상기시켰다. 유럽이 전쟁의 화약고 노릇을 해온 전략물자(석탄·철강)의 공유를 통해 평화의 길로 나아갔다면, 동아시아에서는 19세기말~20세기초 동아시아를 쑥대밭으로 만든 군대의 핵심 이동수단이던 ‘철도’의 공유로 협력안보라는 평화의 길을 열자는 구상이다.
문 대통령이 “개성공단과 금강산 관광 재개”를 언급한 대목도 유의할 필요가 있다. 문 대통령은 이 화두를 “완전한 비핵화와 함께 한반도에 평화가 정착돼야 본격적인 경제협력이 이뤄질 수 있다”거나 “국책연구기관의 연구에 따르면, 향후 30년간 남북 경협에 따른 경제적 효과는 최소한 170조에 이를 것으로 전망한다”는 문장을 앞세워 꺼냈다. 아울러 “군사적 긴장이 완화되고 평화가 정착되면”이라는 전제를 달아 “경기도·강원도 접경지역 통일경제특구 설치”라는 개성공단(경기)과 금강산 관광(강원) 사업의 확대판을 제시했다. 원론적인 수준에서나마 ‘개성공단과 금강산 관광 재개’와 그를 넘어선 경협 비전을 화두로 제시해, 북한에 본격적인 경협 의지를 강조하는 한편으로, 그러려면 북쪽이 비핵화 조처에 속도를 내야 한다는 주문을 한 셈이다.
문 대통령은 ‘9월 평양 방문’과 관련해 “판문점 선언의 이행을 정상 간에 확인하고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와 함께 종전선언과 평화협정으로 가기 위한 담대한 발걸음을 내디딜 것”이라고 다짐했다. 그러고는 “남북 간에 더 깊은 신뢰관계를 구축”해 “북-미 간의 비핵화 대화를 촉진하는 주도적 노력도 함께 해나가겠다”고 강조했다. 2017년 7월 베를린 연설만큼이나 결기가 느껴지는 중요한 연설이다.
이제훈 선임기자
nomad@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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