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창겨울올림픽 여자아이스하키 남북단일팀 선수들이 지난 2월20일 오후 강원도 강릉시 관동하키센터에서 열린 단일팀 마지막 경기에서 골을 넣고 기뻐하고 있다. 강릉/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지난 평창겨울올림픽 여자아이스하키 남북 단일팀에 대해 청년세대가 보인 냉담한 반응을 어떻게 봐야 하나?
흔히 말하듯 젊은층이 보수화되고 민족의식이 약화된 결과로 봐야 할까. 배진석 고려대 평화와민주주의연구소 연구교수는 최근 발표한 ‘대북 및 안보정책 평가의 세대 및 이념요인’ 논문에서 청년세대의 대북인식과 통일에 대한 반응을 일탈적 태도로 규정하거나 보수정권 10년의 여파로 통일교육의 부실로 보는 것은 당파적 접근이라고 비판했다. 배 교수는 지난해 대통령 선거 여론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대북·안보정책에서 세대와 이념이 작동하는 구조를 분석해, 세대균열이란 측면에서 남북단일팀 구성 과정에 보인 젊은층의 비판적 반응의 배경을 설명했다.
평창겨울올림픽 남북단일팀 구성 과정에서 공정성 논란이 불거진 뒤 청년세대가 보수화됐다는 논의가 무성했다. 많은 연구들이 20대를 중심으로 한 청년세대의 특성으로 북한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꼽았다. 이들 세대가 이전 세대와 달리 당위론적 통일인식에서 벗어났다는 것이다. 개인 이익을 중시하는 젊은 세대가 통일 이후의 사회 갈등이나 경제적 득실 등 이해관계를 따지고. 그 결과 소극적인 부정적인 통일인식을 갖게 됐다는 분석 등도 나왔다.
배진석 교수는 “북한에 대한 태도에 따라 구분되던 기존의 진보-보수 접근 방식에 따르면 젊은층이 보수화된 것으로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이들은 자주국방 대신 한미동맹의 유용성을 강조하고 핵과 미사일 실험을 강행하는 북한에 교류협력이 무용하다는 인식에 동조하고 있다.
배 교수는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정작 청년세대는 스스로를 보수적이라고 인식하지 않는다. 주관적 이념평가에서 이들은 스스로를 이전세대보다 진보적으로 인식하고 있다”고 말했다. 동아시아연구원의 2017년 대선 직전 패널조사를 보면, 70년대, 80년대, 90년대생의 절반 이상이 스스로를 진보적이라고 평가했다.
청년세대와 이전세대는 정치사회화 과정이 다르기 때문에 진보-보수 이념성향을 결정하는 요인도 다르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민족주의 담론의 영향을 받은 중장년 세대는 대북 인식으로 자신의 이념을 규정하지만 청년세대는 북한에 대한 태도가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는 것이다. 배 교수는 “고용없는 성장 시대를 사는 청년들은 북한에 대한 태도 대신 분배와 성장 등 복지관련 태도로 자신의 이념을 규정하는 경향을 보인다”고 말했다. 대북 강경책을 지지하지만, 취업난 등에 시달려 성장보다는 복지우선 정책을 지지하는 청년 진보유권자의 출현이 어색하지 않다는 것이다.
배 교수는 “평창올림픽 여자아이스하키 남북단일팀에 보인 청년층의 비판적 반응은 청년세대에겐 복지 확대와 이념, 남북교류협력 사이의 관계가 다른 세대와 다르게 작동한 사례”라고 설명했다. 장년세대는 대북정책과 이념성향이 상관관계가 높지만, 청년세대에겐 영향력이 없다는 것이다.
주한미군의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발사대 차량이 지난해 9월7일 오전 경북 성주군 초전면 소성리 마을회관 앞을 지나자 주민과 시민단체 회원들이 물병 등을 던지며 격렬하게 항의하고 있다. 성주/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
동아시아연구원 패널조사를 보면, 대북교류협력과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는 다양한 의견조합이 나타났다. 전체 응답자 1091명 중 ‘남북교류협력 지지-사드 배치 반대’(ㄱ조합)란 전형적인 진보시각이 33.3%, ‘대북강경책 지지-사드 배치 찬성’(ㄴ조합)이란 전형적인 보수시각은 36.5%.였다. 또 ‘교류협력 지지-사드 배치 찬성’(ㄷ조합)이 21.3%, ‘대북강경책 지지-사드배치 반대’(ㄹ조합)가 9%였다. 대북정책, 안보영역에서 기존 진보-보수 관점과 충돌할 수 있는 태도의 조합(30%가량)이 존재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ㄷ조합(교류협력 지지-사드 배치 찬성)은 70년대생 이전 출생자의 비율이 26.9%로 가장 높았다. ㄹ조합(대북강경책 지지-사드배치 반대)은 70년대 이후 출생자의 비율이 16.9%로 가장 높았다. 70년대 이전 세대와 70년대생은 자기이념 평가가 진보적일수록 교류협력정책을 지지하지만 청년세대는 그렇지 않았다.
ㄷ조합과 ㄹ조합에서는 이념의 영향력이 사라진 대신, 나이가 많을수록 남북교류협력정책을 지지하고, 사드 배치를 찬성했다. 나이가 적을수록 대북 강경책을 지지하고 사드 배치에 반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전통적인 보수-진보 정책이 혼재되면서 이념의 영향력이 사라진 공간에서 연령효과가 이를 대체한 것이다.
흥미로운 것은 70년대생이다. 이 세대는 다른 세대와 달리 2002년 대선부터 지난해 대선까지 4차례 대선기간 동안 주관적 이념 인식에 큰 변화가 없었다. 북한 핵 실험 등으로 지난 5년간 다른 연령대의 대북교류협력 지지율이 급락한 것과 달리 70년대생의 교류협력 지지율은 큰 변동이 없었다. 70년대생은 그 이전 또는 이후 세대보다 대북 교류협력정책을 더 지지하고 사드 배치에 덜 찬성하는 태도를 보였다. 70년대생은 장기적으로 안정적인 주관적 이념인식을 유지하고 있고 대북정책 평가에 미치는 이념의 영향력이 크다. 이게 70년대생이 다른 세대에 견줘 대북 교류협력정책 지지가 높은 배경으로 추론된다.
배진석 교수는 “북한에 대한 태도가 한국사회에서 좌우 또는 진보-보수 구분의 가장 유용하고 확실한 잣대라는 기존 주장은 세대분화에 따라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며 “북한 문제가 이념갈등과 겹쳐 세대간 차이로 표출되었지만, 그 표출양상은 똑같지 않고 연령대별로 다르다”고 주장했다.
권혁철 한겨레평화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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