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1차 이산가족 상봉행사 1회차 첫날인 20일 오후 금강산호텔에서 이산가족 단체상봉이 열리고 있다. 금강산/공동취재단
아버지는 군인이었다. 전쟁이 한창이던 1952년 “국군포로로 북으로 갔다”고 이달영(82)씨는 전해 들었다. 평생 아버지가 보고 싶었다. “처음부터 상봉 신청을 했어.” 강산이 두번 넘게 바뀌어도 연락은 오지 않았다. 2014년 어머니가 한 많은 세상을 등진 지 4년, 북에 가족이 살아 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꿈에도 그리던 아버지는 돌아가셨단다. 대신 북녘 동생 둘을 새로 얻었다. “아버님이 살아 계셨으면 100살이야. 거기 가신 뒤 소생이 있는 줄 몰랐어.”
이달영 할아버지는 그렇게 20일 오후 금강산호텔에서 생면부지의 동생 둘, 일영·영희씨를 만났다. 아버지가 이어준 끈을 맞잡고 딸·아들이 몇인지부터 세면서 빠르게 서로를 알아갔다. 어쩌면 다시는 못 만날지도 모르니…. 이달영 할아버지는 ‘국군포로’의 아들이다. 최기호(83)씨 등 ‘전시 납북자’ 가족 5명도 이날 북쪽 가족을 만났다. 최기호 할아버지는 북녘의 조카딸 선옥(56)씨가 챙겨 온 생전의 맏형 칠순 기념사진을 받고는 “보물이 생겼다”며 환하게 웃었다. 맏형 사진이 한 장도 없던 터였다.
정부와 대한적십자사는 2차 이산가족 상봉 행사(2000년 11월30일~12월2일, 서울·평양) 때부터 ‘국군포로’와 ‘전시·전후 납북자’ 등 특수이산가족을 일반 이산가족 명단에 섞어 북쪽에 생사 확인을 의뢰해 생존이 확인되면 상봉을 주선해왔다. 2~20차(2015년 10월20~26일, 금강산) 상봉 행사 기간에 특수이산가족 350명의 생사 확인을 의뢰해 112명의 생사 여부를 확인했고, 이 가운데 54명은 상봉에 성공했다. 이번 21차 상봉 행사를 앞두곤 남쪽에서 특수이산가족 50명의 생사 확인을 북쪽에 의뢰해 21명의 생사를 확인했다. 생존이 확인된 8명 가운데 상봉이 가능한 6명이 이번 행사에 참여했다. 북쪽은 공식적으론 ‘납북자’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는다.
금강산/공동취재단, 이제훈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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